[여의춘추] 국민의 검증, 이럴 때만 필요한가
정보공개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이지만
중앙부처나 권력기관은 소극적이라는 지적
이번 공개를 정치적 논란 돌파 위한 일회성 쇼가
아닌 정책 투명성 높이는 계기로 삼길
국토교통부가 23일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국민이 검증해 달라며 7년 치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2017년 서울∼양평고속도로가 ‘고속도로 건설계획’에 반영된 시점부터 지난달 전략환경영향평가 초안 공고 때까지 모든 자료를 담았다고 한다.
이번 자료 공개로 논란이 어느 정도 해소될지는 판단하기 이르지만 겉돌던 공방 과정에서 전기가 마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괴담이나 의혹은 비밀이 많고 불투명한 환경에서 번성한다. 이렇게 공개할 자료였다면 평소 공개하거나 논란 초기에 공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본다.
정보공개에서 한국은 선진국이다. 김영삼정부 때인 1996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98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2006년 노무현정부에선 인터넷 정보공개시스템을 도입했고 2013년 박근혜정부에선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대한 법률’을 제정해 민원인의 신청이 없어도 비공개 정보가 아닌 이상 원문을 공개하게 했다. 다른 나라보다 정보공개의 대상기관도 훨씬 많다. 상당수 국가가 중앙행정기관으로 한정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입법부와 사법부, 헌법기관 등도 모두 정보공개 대상이다.
하지만 중앙부처나 권력기관일수록 정보공개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정보공개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원문정보공개비율은 시·도교육청이 78.0%, 공공기관이 57.9%, 지방자치단체 57.0%, 중앙행정기관 43.0%였다. 중앙행정기관 중에는 경찰청 15.9%, 국방부 10.4%, 감사원 7.7%로 공개비율이 낮았고 대검찰청은 아예 1%에도 미치지 못하는 0.1%에 그쳤다.
중앙행정기관 전체의 원문정보공개비율도 2021년 50.4%에서 2022년 47.4%로 해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국토부 상황은 더 심하다. 국토부의 원문정보공개율은 2021년 73.5%, 지난해 70.4%에서 올해 상반기 45.0%로 급감했다.
정보공개법은 법률에 의해 비밀이나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 진행 중인 재판 관련 정보, 개인정보, 경영상·영업상 비밀, 공개되면 부동산 투기와 매점매석 등으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은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절반가량을 비공개로 분류하고 사유도 명확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비공개 사유가 있어도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 공개하는 게 입법 취지에 부합한다.
국토부는 개발 관련 정보를 많이 취급한다. 이 중에는 투기에 이용되거나 이해관계인의 저항을 부를 수 있는 민감한 정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발 정보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는 대부분 정보를 공개해서가 아니라 공개하지 않은 정보가 비공식 내지 불법 유출돼서 발생했다.
정보는 공개되는 즉시 소수의 손을 떠나 다수가 공유하게 된다. 투기에 악용되는 정보는 다수가 공유한 게 아니라 소수가 독점한 정보다. 비밀리에 추진한다고 이해관계자의 반발이나 저항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책 추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참여와 의견을 구하는 게 사회 통합적 의사결정에 바람직하다.
미국이 정보공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정보자유법(FOIA)을 제정한 것은 린든 존슨 대통령 재임 때인 1966년 7월이다. 지금도 미국 민주주의와 시민권리 증진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램지 클라크 당시 미국 법무부 장관은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67년 이 법을 시행하면서 “진실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려면 국민은 정부 활동을 상세하게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가장 큰 적은 비밀이다”라고 천명했다.
미국 법무부의 ‘2022회계연도 연례 FOIA 요약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간 120개의 연방정부기관에는 92만8353건의 정보공개가 청구됐다. 이들 기관은 이 업무에 총 5268명의 상근 전담 직원을 배치했고 5억4380만 달러를 집행했다. 미국 정부가 정보공개를 겉치레가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토부의 서울∼양평고속도로 관련 자료 공개가 정치적 논란을 돌파하기 위한 일회성 쇼는 아니길 바란다. 민주주의가 유지되려면 국민의 검증과 감시는 늘 필요하다.
송세영 편집국 부국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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