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주의 시선] 여의도 ‘제3지대’ 성공의 조건

임종주 2023. 7. 2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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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주 정치에디터


4년 전 이맘때 워싱턴특파원으로 막 부임한 필자는 낯선 취재환경에 적응하느라 꽤 분주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이듬해 2020 미국 대통령 선거 취재 준비는 미뤄둘 수 없는 당면 현안이었다. 각 당 후보와 공약 파일을 하나하나 만들어 자료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때 단박에 눈에 들어온 후보가 있었다.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 혜성처럼 등장한 앤드루 양이었다.

2020 미국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앤드루 양. 연합뉴스


당시 44살, 정치 경험이라곤 하나 없는 테크 기업인 출신에, 아시아(대만)계 군소 후보에 지나지 않던 앤드루 양은 그 무렵 지지율을 매달 두 배씩으로 불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6월 1%에 머물던 지지율은 7월 2%, 8월에는 4% 벽을 차례로 뚫더니 9월 에머슨대 조사에서는 8%까지 치솟았다. 이른바 ‘듣보잡’ 후보에서 4위로 도약하며 조 바이든,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등 쟁쟁한 빅3를 맹추격했다.

‘18살 이상 미국인에게 월 1000달러를 지급하자’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대표 공약으로 내걸고 팟캐스트와 레딧·쿼라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종횡무진 누비며 밈문화를 파고든 전략이 주효했다. 열성 찐팬 ‘양갱(Yang Gang)’의 환호가 선거전을 달군 것도 이즈음이다.

아시아의 오바마로도 불리며 기대와 견제를 동시에 받던 앤드루 양은 견고한 주류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뒤이어 뉴욕시장 도전 좌절도 겪으며 양당제의 뚜렷한 한계를 확인한 앤드루 양은 중도 제3지대로 방향을 틀었다. 극심한 양극화와 이념 갈등, 정책 재탕에 실망한 유권자에게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를 역설하며 대선 이듬해 전진당(The Forward Party)을 창당했다.

2020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격돌했던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과(왼쪽)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연합뉴스


퓨 리서치센터 조사를 보면, 민주-공화 양당에 부정적 견해를 가진 미국 유권자가 1994년 6%에서 2022년 27%로 많이 증가했다. ‘정당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답변도 38%에 달했다. 갤럽조사에서는 ‘양당이 너무 일을 못 해 제3당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62%로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정치 표본을 자처한 미국식 양당제는 이제 비호감 대상으로 전락했다. 앤드루 양의 전진당은 우호적 여론을 뒷배로 올해까지 29개주, 내년까지 50개주 전역에서 유효 정당으로 인정받아 선거 개혁과 전국 정당 건설에 매진한다는 포부를 제시했다.

지나간 기억을 하나둘 재소환해가며 앤드루 양의 정치 행보를 되짚어 본 건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상황이 거울을 비추듯 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이달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제3지대 신당이 필요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7.7%가 ‘그렇다’고 답해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 응답 42.4%를 앞질렀다.(연합뉴스∙메트릭스) 무당층 비율은 32%로 현 정부 출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한국갤럽)

지난해 3월 28일 국회 본관 계단 앞에서 소수 정당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다당제 정치개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인수위 사진기자단


소선거구제로 치러지기 시작한 1988년 13대 총선 이후 거대 양당 독과점 체제는 고착화했다. 패거리 정치가 만연하고 죽고 살기식 진영 대결과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러다 국민 인식에 싸움의 DNA가 각인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들만의 리그에 갇힌 기득권 양당 정치가 4차 산업혁명시대 우리 사회 다양성과 창의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치개혁 차원의 선거제 개편에 대한 희망은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17일 제헌절 경축사를 통해 승자독식 선거제 개편을 여야에 재차 호소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현역 의원의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힌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의 암운이 가시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서 자칫 위성정당이 또 생겨날 수도 있다. 선거구 획정 법적시한(4월10일)은 이미 석 달 이상 지나갔다.

「 승자독식 선거제 개편 제자리
내년에 위성정당 또 나올 수도
제3당 잇단 기치, 차별화가 관건

정치개혁 대상에게 주체 역할을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라는 비판 속에 제3지대가 잇따라 세력화에 나섰다. 고졸 성공신화의 주인공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다음 달 28일 ‘한국의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신당의 깃발을 올린다. 금태섭 전 의원은 수도권 30석을 목표로 ‘새로운당’ 창당에 뛰어들었고, 정의당도 새 진보정당을 기치로 신당 추진을 공식화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제3의 길을 시사했다.

다만, 미국이든 한국이든 제3지대 최대 핸디캡은 성공 사례가 드물고 전망 또한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제3당이 필요하다는 여론과 실제 신당에 표를 주겠다는 지지층 간 괴리가 크다. 미국의 앤드루 양이나 한국판 여러 앤드루 양이 풀지 않으면 안 될 과제다. 양당 체제가 빚어낸 심각한 폐해는 그 생생한 반면교사다.

임종주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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