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스승의 은혜
옛날 스승의 권위는 대단했다. 어원부터 남다르다. 여성 무당이나 승려를 높여 부르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모두 고대 사회에서 큰 권위가 있는 자리였다. 영어 ‘티처(teacher)’는 손으로 지시한다는 고대 영어에서 비롯했다. 13세기엔 무엇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는 검지란 뜻으로도 함께 쓰였다.
한국에서의 스승은 서양과 달랐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다’는 노래 구절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나는 가르친다. 넌 듣기만 하라’는 식의 강압적 모습을 떠올려선 안 된다. 운동장에 줄 서서 하는 경례, 학생보다 교사가 높은 곳에 설 수 있도록 한 교단, 두발·복장 검사에 단체체벌까지. 칼을 찬 교장, 군복 입은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던 일본강점기 잔재다.
조선시대 스승의 진짜 권위는 율곡 이이가 쓴 『학교모범(學校模範)』에 잘 나타나 있다. 선조 15년(1582년) 율곡은 왕명을 받들어 학교생활 전반에 지켜야 할 원칙 16가지를 저술했다. 지금의 교육기본법 격이다. 이 책에선 제자가 스승을 대하는 법을 엄히 정하고 있다. “임금·스승·아버지 덕에 태어나고 살고 배우니 섬기기를 똑같이 해야 한다. 평상시 존경을 다하라”고 말한다. 무조건적인 숭상을 강요한 건 아니다. “스승의 말씀과 행하는 일에 의심나는 점이 있다면 조용히 질문해 그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스승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스승의 자격도 엄격했다. “스승이 알맞은 사람이 아니면 선비의 기풍이 날로 쇠퇴해진다”는 이유에서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부모와 스승을 업신여긴다면 학당에서 쫓겨난다. 자격이 없으면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말라는 경고다.
지난 18일 스물넷 젊은 교사가 세상을 등졌다. 추측이 난무하지만 학부모의 괴롭힘이 원인이란 쪽에 무게가 실린다. 체벌·폭언이 만연했던 교육 현장은 학생인권조례 등으로 몰라볼 만큼 나아졌지만, 교권 침해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학생과 학부모의 폭력에서 교사를 막아주는 실질적 장치가 없다시피 한다.
율곡은 『학교모범』 말미 “스승·제자·학우는 서로 권면(勸勉)하고 경계하고 명심하라”고 이른다. 스승 아래 제자 없고, 제자 아래 스승 없다. 율곡이 400여 년 전 남긴 가르침이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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