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되찾은 수영 천재, 세계기록도 되찾다
아리안 티트머스(23·호주)는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19세 풋내기 선수였던 그는 자유형 400m 4연패를 노리던 ‘여제’ 케이티 러데키(26·미국)를 꺾고 정상에 올랐다. 러데키가 충격에 빠져 있을 때, 티트머스는 “나 자신이 잘할 거라고 믿었다. 놀랍지 않은 결과”라고 했다.
그 후 4년이 흘렀다. 티트머스는 23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다시 한번 세계선수권 여자 자유형 400m 정상에 섰다. 3분55초38의 기록으로 골인하면서 세계 신기록도 세웠다. ‘신성’ 서머 매킨토시(17·캐나다)가 지난 3월 작성한 종전 기록(3분56초08)을 0.7초 단축했다. 2위로 들어온 러데키(3분35초83)보다 3초35나 빨랐다.
여자 자유형 400m는 이번 대회 최고의 빅 매치로 꼽혔다. 세계선수권 금메달 19개를 보유한 러데키,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 티트머스, 세계 기록 보유자 매킨토시가 동시에 출격하는 무대였다. 올해 400m 기록 세계 랭킹 1~3위는 매킨토시-티트머스-러데키 순이었지만, 큰 경기 경험과 관록은 그 역순이었다. 이들이 나란히 3~5번 레인 출발대에 서자 경기장 안팎은 숨 막힐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티트머스는 그 팽팽하던 흐름을 순식간에 장악했다. 100m 지점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 끝까지 1위를 유지했다. 350m 지점에서 마지막 턴을 할 때는 2위 러데키를 2초 이상 앞섰다. 티트머스가 마지막 50m 구간에서 압도적인 스퍼트로 독주하자 관중의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티트머스는 호주 최남단의 섬 태즈메이니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 14세였던 2015년 브리즈번으로 이사했다. 크리켓 선수였던 아버지와 육상 선수였던 어머니가 “딸에게 좋은 코치와 훈련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트머스는 브리즈번으로 이주한 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강한 체력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워 ‘터미네이터’라는 별명도 얻었다.
첫 세계선수권 출전이던 2017년 헝가리 대회에서 계영 800m 동메달을 땄다. 2019년 광주 대회에선 자유형 400m에서 우승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2021년 도쿄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도 다시 러데키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 5월 호주선수권에서는 러데키의 세계 기록을 6년 만에 갈아치웠다. 더는 이룰 목표가 없어 보이는, 완벽한 상승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그사이 티트머스는 남몰래 지쳐갔다. 반복되는 강훈련과 경쟁의 압박감이 그를 힘들게 했다. 심지어 그는 17세부터 ‘셀리악(celiac) 병’과 싸워야 했다. 아주 적은 양의 글루텐에도 소장이 이상 반응을 일으키는 알레르기 질환이다. 2주 만에 체중이 5㎏이나 줄어든 적도 있었다. 어디든 전담 영양사와 동행하면서 엄격한 ‘글루텐 프리’ 식단을 지켜야 했다.
티트머스를 다시 일으킨 건 17세의 매킨토시가 자유형 400m 세계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뉴스였다. 티트머스는 “세계 기록을 세울 때 많은 선수가 이 기록은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그게 깨진 뒤에야 ‘아, 수영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구나’라고 깨닫는다”며 “매킨토시의 기록이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고 털어놨다.
새로운 자극을 받은 티트머스는 다시 훈련에 집중했고, 이날 4개월 만에 세계 기록의 주인 자리를 되찾았다. 4위(3분59초94)로 골인한 매킨토시는 티트머스의 대관식을 지켜봤다. 티트머스는 “난 그저 과거의 그 어린 소녀처럼, 두려움 없이 경기하겠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그 결과가 이것(세계 신기록)”이라고 했다.
후쿠오카=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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