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질 듯하더니 쭉 올라버린 美 증시
미국 뉴욕 증시 3대 지수가 15개월 만에 일제히 최고치를 찍었다. 우려했던 은행권이 ‘깜짝’ 실적을 내며 반전을 이끈 덕분이다. 소비 지표는 예상을 다소 밑돌았음에도 미국 경제 ‘골디락스(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딱 적당한 상태)’ 판단에 힘을 실으며 투자 심리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기 침체에 따른 위기론이 무색하게 고공행진을 거듭하자, 투자자의 ‘야성적 충동(애니멀 스피릿)’이 살아났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다우지수는 2년 4개월 최장기 상승
기대 안 했던 은행 ‘깜짝 실적’에 화색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블루칩을 모아놓은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7월 19일(현지 시간) 3만5061에 거래를 마쳤다. 다우지수는 이날까지 8거래일 연속 올라 2021년 3월 이후 최장기 상승세를 나타냈다. 대형주 중심 S&P(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지수는 4565, 기술주 위주 나스닥지수는 1만4358에 장을 마감했다.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모두 지난해 4월 이후 1년 3개월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중소형주 위주 러셀2000지수 역시 최고치다.
최근 상승세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 등 대형 금융회사의 ‘어닝 서프라이즈’ 영향이 컸다. BoA는 올해 2분기 매출액 253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월가 전망치(250억5000만달러)를 뛰어넘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1% 증가했다. 주당순이익(88센트) 역시 시장 예상치(84센트)를 넘어섰다. 특히 대출 금리 상승 덕에 BoA의 순이자 수입은 1년 전보다 14% 급증한 142억달러로 투자자를 놀라게 했다. 모건스탠리 또한 2분기 주당순이익 1.24달러를 벌어들였다. 레피니티브 추정치(1.15달러)보다 많다.
지난 7월 14일에는 JP모건체이스와 웰스파고, 씨티그룹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자금력과 리스크 관리가 탄탄한 대형은행들은 금리 상승기에도 대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
브라이언 모이니헌 BoA 최고경영자(CEO)는 “회복력 있는 고용 시장과 함께 느린 속도로 성장하는 건강한 미국 경제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현재까지 2분기 실적을 발표한 S&P500 기업 중 84%가 월가 애널리스트 순이익 전망치를 웃돌았다.
엔비디아 고공행진…MS 건재
미국 소매 판매 지표 역시 골디락스 경제에 힘을 실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소매 판매는 전월 대비 0.2% 증가했다. 직전 월인 올해 5월(0.5%) 대비 성장세가 다소 줄어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0.5%) 역시 밑돌면서도 석 달 연속 상승세는 그대로 이어갔다.
미국 경제의 70% 비중에 육박하는 소비는 경기를 판단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월가는 이번 통계를 ‘골디락스’로 해석하는 기류가 있다. 향후 연준의 과도한 긴축 가능성을 낮추며 소비가 확 가라앉지는 않는 시나리오를 기대한다. 최근 각종 인플레이션 지표들이 둔화세를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투자회사 에드워드 모야 수석시장분석가는 “휘발유와 건축자재의 수요 약세는 경기 둔화에 대한 분명한 징후”라면서도 “전반적으로 회복력 있는 미국 경제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뉴욕 증시를 끌어올린 또 다른 축은 인공지능(AI)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7월 19일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인공지능이 장착된 ‘MS 365 코파일럿’ 이용료를 시장 예상보다 높은 1인당 월 30달러로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MS 365는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 등을 포함한 MS의 사무용 소프트웨어다. 여기에 AI까지 탑재한 제품을 한국 돈으로 월 4만원이 안 되는 가격에 팔겠다는 것이다. 이 소식에 MS 주가는 7월 19일 당일 4% 뛰었다.
엔비디아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엔비디아는 474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경신했다. 비벡 아리아 BoA 애널리스트가 엔비디아 목표가를 기존 500달러에서 550달러로 상향한 영향이 크다. 그는 보고서에서 “엔비디아가 생성형 AI에 필요한 반도체 시장 75%를 장악하고 있다”며 “모든 기업이 AI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향후 순익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추가 상승 기대감이 크다. 크레디트스위스는 올해 말 S&P500지수 전망치를 기존 4050에서 4700으로 상향 조정했다. 웰스파고는 “지난 17개월 연속 마이너스였던 애니멀스피릿지수가 6월에 플러스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PER 19배로 ‘역대급’ 과열 해석도
‘FOMO’ 심리에 개인 투자 몰렸나
물론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S&P500지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약 19배로 역사적 평균보다 훨씬 높다. 월가 대표 비관론자인 마이크 윌슨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인플레이션 둔화는 향후 기업 이익 증가세도 둔화할 것임을 시사한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아만다 아가티 PNC자산관리그룹 CIO는 “FOMO(자신만 뒤처질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가 너무 커져 개인 투자자들이 시장 바닥이 드러나는 마지막 순간에 몰려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자 비용이 늘어난 것도 위험 요소다. 연준에 따르면 지난 1년여 동안 자동차 대출과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약 3%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신용카드 이자는 연 16%에서 최대 연 22%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는 “글로벌 증시는 향후 수주간 이어질 기업 실적 발표 결과에 따라 상승세를 이어가느냐, 아니면 하락세로 돌아서느냐의 분기점에 섰다”고 보도했다. 이어 “글로벌 증시가 올해 10조달러(약 1경2700조원) 가까운 상승장을 펼쳤는데 앞으로 기업 수익이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재로서는 미국과 유럽 기업 수익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다는 게 블룸버그 평가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 자료에 따르면 S&P500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은 올해 2분기 수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 하락할 전망이다. 이는 2020년 이후 최악의 분기가 된다는 의미다. 유럽도 사정은 좋지 않아 12% 하락이 점쳐졌다. 다만 목표치는 이미 낮고 일부 지표는 내년 수익 회복을 예측한다. 이런 이유로 향후 증시가 어떤 방향으로 반응할지 의견은 분분하다.
24년 만에 최저…신흥국 중 가장 부진
채권 시장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 2월 중국의 느린 경기 회복세에 따른 실망감에 매도세가 커졌다. 중국의 달러채권 투자 수익률(-1.7%)이 78개 신흥국 가운데 11번째로 좋지 않다.
최근 중국 2분기 GDP 증가율(+6.3%)이 시장 전망치(+7.3%)를 밑돌고 느린 경기 회복세 속에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경고음이 커진 탓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은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잡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씨티그룹·JP모건은 전망치를 기존 5.5%에서 5%로, 모건스탠리는 기존 5.7%에서 5%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 부동산 경기가 식으며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이 올해 성장률 목표로 제시한 ‘5% 안팎’ 달성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사이먼 키하노-에반스 젬코프 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초고속 성장기는 지나갔고, 인구 증가가 정체되면서 경제 성장이 잠시 쉴 수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9호 (2023.07.26~2023.08.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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