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교회로 세계여행 떠나볼까

양민경 2023. 7. 2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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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한국정교회 성니콜라스 대성당·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서울 마포구의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내부. 돔 정중앙과 제단 정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콘이 크게 그려져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본격 휴가철이다. 일에서 벗어나 또 다른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낯선 곳으로 떠난다면 그것 자체로 멋진 휴식이 될 것이다. 멀리 여행하는 것도 좋겠지만 도심에서 기독교 영성을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 3회에 걸쳐 ‘여기로 떠나보세요’를 소개한다.

한국정교회(대주교 조성암 암브로시오스) 총본산(總本山)인 서울 마포구 성 니콜라스 대성당은 서울서부지방검찰청 뒤편 골목 안쪽에 있다. 한국정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소속 회원 교단으로 이곳 대성당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 관심 있는 개신교 목회자와 성도가 두루 찾는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택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푸른 돔(dome)이 도드라진 성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968년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된 성당은 그리스 특유의 고색창연한 느낌을 진하게 풍긴다. 성당 주임사제인 임종훈 신부의 안내로 성당이 품은 이국적 면모와 세계사와 맞닿은 정교회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마포구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입구. 입구 위엔 성 니콜라스의 이콘이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그리스와 슬라브 문화 스민 공간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성당 이름에도 반영된 성 니콜라스의 이콘(Icon·성화)이다. 빈곤 아동에게 선물을 준 12세기 주교로 산타클로스의 기원으로 알려졌다. 성당에 들어서면 천장과 벽면의 이콘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돔 천장 정중앙에 그려진 예수 그리스도엔 ‘만물의 주관자’란 한글이 적혀있다.

성경 주요 내용을 그린 여러 이콘을 설명하던 임 신부가 돌연 질문을 던졌다. “정교회는 성경에 나온 내용만 이콘으로 그립니다. 그렇다면 이콘에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대답을 망설이자 그는 “방문객이 올 때마다 질문하는데 다들 어려워한다”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 육신을 입은 예수만 사람 형상으로 그린다”고 답했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 성부 하나님 얼굴을 본 인물이 없어서다. 성령은 예수 세례 당시 나타났던 비둘기 형태나 오순절 기도회에 나타난 불의 혀 형태로 표현한다.

임 신부는 “정교회가 성모 마리아나 성인을 신격화한다는 건 오해”라며 “그 증거가 이콘”이라고 했다. 이콘에서 예수는 붉은 옷에 청색 겉옷을 걸쳤다. 여기서 붉은색은 신성(神性)을, 청색은 인성(人性)을 상징한다. 태생적으로 인간인 성모나 성인은 붉은 옷을 걸칠 순 있지만 입을 순 없다.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지하의 ‘성 막심성당’. 슬라브어권 성도가 예배하는 장소다. 18~20세기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들여온 고서와 성찬용 집기 등이 전시돼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대성당과 마당의 종루가 흡사 그리스나 튀르키예를 방문한 듯한 느낌을 준다면 성당 지하의 ‘성 막심성당’은 슬라브권 향기가 전해진다. 이곳엔 지난 5월 한국정교회가 그리스 예술작품 복원가를 초빙해 작업을 거친 18~20세기 러시아와 그리스에서 들여온 고서와 성찬용 집기 등이 전시돼 있다.

1997년 축성한 이곳에선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슬라브어권 출신 성도가 함께 예배한다. 아직 전쟁 중이지만 두 국가 출신 성도는 한데 모여 평화를 기도하고 있다. 지난해 전쟁 종식 염원을 담아 한국장미회가 입구에 조성한 ‘2022 평화의 장미 정원’도 평화를 갈구하는 두 국가 교인의 기도와 맞닿아 있다. 임 신부는 “국가 분열에도 개의치 않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 그것이 예배의 참모습”이라고 했다.

서울 마포구 한국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전경. 신석현 포토그래퍼

한국정교회는 성당과 예배를 대중에 개방 중이다. 단체 견학을 유선 신청할 경우 임 신부가 직접 안내에 나선다. 그는 “우스개로 우리 성당을 ‘모든 사람뿐 아니라 천사, 악마에게도 열린 공간’이라고 한다”며 “편히 와 이채로운 건물뿐 아니라 4세기부터 내려오는 초대교회 전통도 체험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전경. 신석현 포토그래퍼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는 영국
한옥 기와에 로마네스크 양식이 더해진 서울 중구의 대한성공회(의장주교 이경호) 서울주교좌성당 역시 이국적 자태를 뽐낸다. 관광 명소로도 유명해 2007년 개방 이래로 매년 2만여명이 방문한다. 붉은 벽돌에 화강암이 어우러진 건물은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이 설계한 것으로 1922년 착공해 1996년 완공했다. 자금 조달 등의 문제로 원안대로 지어지지 못해 뒤늦게 완성됐다. 이 때문에 100년 전 지은 내부 공간의 기둥과 96년 증축한 곳의 기둥 색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내부. 반원형 제단의 모자이크 벽화 중앙 상단엔 라틴어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 8:12)라고 적힌 성경을 든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십자가 형태로 설립된 성당에 들어서면 반원형 제단의 모자이크 벽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국 미술가 조지 잭이 제작한 동양 최대 규모의 비잔틴 양식 제단화다. 대제대 옆 딕슨이 설계한 주교좌(主敎座)와 그 옆에 자리한 성가대석은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를 떠올리게 한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성당 익랑(翼廊) 한쪽에 마련된 6·25전쟁 전사 영국군을 위한 추모공간. 신석현 포토그래퍼

성당 익랑(翼廊) 한쪽엔 6·25전쟁에서 전사한 영국군을 위한 추모공간도 있다. ‘하느님은 이들 중 그 누구도 잊지 않으시리라’로 맺는 현판 아래엔 순직 장병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놓여있다. 성당을 안내한 정창진 종신부제는 “1992년 당시 찰스 왕세자 부부가 내한해 제막한 현판으로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도 같은 현판이 있다”며 “매년 11월 둘째 주엔 영연방 국가 대사 등이 이곳에 모여 추모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정 부제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성당 곳곳을 방문객에게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매일 오전 6시와 정오, 오후 6시 3번 울리는 종에 호기심을 보이는 방문객이 적잖다”며 “영국 존 테일러 사가 26년 제작한 종인데 지금껏 제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어 “높은 종탑에 걸린 덕에 일제의 공출도 피할 수 있었다”며 “대한성공회의 강화성당의 종은 일제에 빼앗겼지만 훗날 일본성공회의 지원으로 다시 복구했다“고 부연했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내부. 신석현 포토그래퍼

재단 측 벽에 남은 6·25전쟁 총탄 흔적, 순교자 기념 조형물과 6·10 민주화운동 기념비에선 한국의 근현대 역사도 마주할 수 있다. 정 부제는 “서울주교좌성당은 대한성공회로서도 자랑스러운 건물이지만 도시와 국가적으로도 굉장한 보물이라 생각한다”며 “누구나 편히 들어와 아름다움을 느끼고 평안을 찾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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