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상습 도핑범인가, 억울한 피해자인가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알렉스 슈바처> 포스터. |
ⓒ 넷플릭스 |
'저도 도핑을 해야만 했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불과 23살 나이로 50km 경보 금메달을 차지하며 일약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우뚝 섰던 '알렉스 슈바처'의 고백이다. 그는 2012년경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반도핑 검사에서 적발되어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고 만다. 눈물을 철철 흘리며 자신의 도핑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기자회견이 크게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알렉스 슈바처는 어떻게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른 경보 선수는 왜 도핑을 해야만 했을까? 이후 그의 삶은 어떤 식으로 흘러갔을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알렉스 슈바처: 나의 진실을 향해>가 저반의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알렉스 슈바처 도핑 사건은 단순히 영웅의 추락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슈바처는 어릴 적부터 오래 걷는 게 좋았고 나아가 내면과의 싸움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11살에 9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 해발 3500m 산을 올랐지만 힘들다기보다 성취감이 더 컸다고 한다.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50km 경보에 출전해 각각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대망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 속임수 안 쓰는 사람이에요"
주지했다시피 알렉스 슈바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0km 경보에 출전해 그야말로 압도적인 차이로 후순위 선수들을 따돌리며 올림픽 신기록을 수립함과 동시에 금메달을 목에 건다. 그는 인터뷰에서 "전 속임수 안 쓰는 사람이에요"라고 항변한다. 자신의 기록을 향한 세간의 의구심을 잠재우기 위한 한 마디였을 것이다. 그의 나이 불과 23세였다.
고국 이탈리아로 금의환향한 슈바처는 일약 스타덤에 올라 국민의 영웅으로 우뚝 선다. 젊고 잘생기고 노력과 재능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도 모자라 당대 최고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카롤리나 코스트너의 남자친구였기에 언론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받기 시작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국민 모두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연예인도 아닌 육상선수가 말이다. 그는 급격하게 지쳐 갔다.
비록 휴식기를 놓쳤지만 다음 대회를 위해 담금질을 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중도 기권하자 언론의 십자포화가 그를 향했다. 세간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것이었다. 알렉스는 다시금 나아가 2010년 바르셀로나 유럽육상선수권대회 20km 경보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슬럼프를 극복했다. 하지만 이듬해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km 경보에서 9위를 차지하며 몰락했다. 이후 그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리고 약물에 손을 뻗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고 말았다.
복귀, 훈련 그리고 복병의 증오
2014년, 알렉스 슈바처는 전격적으로 복귀를 선언한다. 그가 선택한 코치는 산드로 도나티, 다름 아닌 슈바처에게 도핑 혐의를 씌워 그의 도핑 자백을 이끌어 낸 인물이었다. 슈바처는 만인의 신뢰를 얻고자 용기를 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인물에게 다가갔던 것이다. 그들은 합의하길, 슈바처의 몸 상태가 괜찮아 보이면 언제라도 도핑 검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목표는 2016년 로마 경보 월드텁과 2016년 리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및 입상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인물이자 어느 정도 예상이 된 인물 한 명이 끼어든다. 루치아노 바라. 1987년 로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멀리뛰기 결승에서 조반니 에반젤리스티의 기록을 조작해 메달을 따게 하는 데 앞장선 당시 연맹 사무총장이다. 그런가 하면, 도나티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에반젤리스티 기록 조작을 알아채고 기어코 증거를 찾아내 상부에 보고해 메달 발탁까지 나아갔다. 이후 바라는 도나티를 증오했다.
도나티를 향한 바라의 증오는 급물살을 탔다. 도나티가 코치하는 슈바처가 상습 도핑범으로 2012년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도핑을 했을 것이며 그와 함께하는 세력도 있을 거라고 몰아세웠다. 한편 국제육상경기연맹은 러시아 도핑 스캔들로 수뇌부가 대거 물갈이되었다. 그 과정에서 평생 도핑과 싸워온 도나티의 저격이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약물 검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두 번째 도핑을 둘러싼 의문들
국제육상경기연맹 그리고 반도핑기구까지 마피아와 다름이 없었다. 침묵을 지키지 않고 조직의 핵심 정보를 유출하는 이에겐 강력한 철퇴를 내리니 말이다. 산드로 도나티 그리고 알렉스 슈바처에게도 머지않아 철퇴가 들이닥칠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슈바처는 2016년 로마 경보 월드컵에 출전해 2위와의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을 차지해 2016년 리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두 번째 양성 판정을 받아들였다. 즉각적으로 올림픽 출전이 박탈되었고 이탈리아 법에 따라 수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도나티와 슈바처는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이번에는 도핑을 하지 않았으니까. 연구소에 재판독을 요청한 후 힘들지만 훈련을 이어갔다.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슈바처는 2016년 리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재판에선 도핑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당당하게 이 작품에 나와 당시를 자세히 말할 수 있는 것일 테다.
통상 알렉스 슈바처는 2번의 도핑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2012년과 2016년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자진 시인했던 첫 번째 도핑 사건과 극구 부인했던 두 번째 도핑 사건은 차원이 다르다. 결과적으로도 과정으로도 명명백백한 첫 번째와 다르게 두 번째는 그를 둘러싼 비논리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왜 하필 도핑 검사를 1월 1일에 실시했나? 왜 슈바처의 소변 혈액 샘플을 하루 동안 방치했을까? 이전과 이후 검사들에선 테스토스테론이 적게 나왔다는데, 왜 그 한 검사에서만 미량의 테스트스테론이 더 나왔을까? 등등.
도나티와 슈바처가 주장하는 사항이 사실이라면, 국제육상경기연맹과 반도핑기구는 지금 당장 해체되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무능하면서도 파렴치한 집단이다. 전 세계 스포츠계를 뒤흔든 러시아 도핑 스캔들로 물갈이가 되었다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일 거라는 주장에 신빙성이 있고, 나아가 도핑에 관한 핵심 정보를 폭로하는 도나티와 슈바처에게 해를 끼치려 하는 게 사실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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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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