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극우 파도 '일단 멈춤'…좌우 모두 과반 실패에 정국 혼란
스페인 제1야당인 중도 우파 국민당(PP)이 23일(현지시간) 열린 조기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지 못하면서 좌우 진영 모두 과반을 차지하지 못해 정부 구성에 난항이 예상된다. 극우 성향의 복스(Vox)는 지난 2019년 총선보다 의석수가 30% 정도 줄었다. 최근 유럽 각국의 정계를 흔들던 '극우 파도'가 스페인에선 일단 멈춘 것으로 보인다.
24일 스페인 내무부에 따르면 전날 치른 총선 개표 결과 국민당은 하원 전체 의석 350석 중 136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이어 집권당인 중도 좌파 사회노동당(PSOE)이 122석을 가져갔다. 극우 성향의 복스(Vox)와 15개 좌파 정당이 연합한 수마르(Sumar)는 각각 33석, 31석으로 그 뒤를 이었다. 그 외 카탈루냐공화당(ERC), 바스크정치연합(Bildu) 등 분리주의 정당에서 25석을 가져갔다.
정치 진영에 따라서는 국민당과 복스 등 우파가 169석, 사회노동당과 수마르 등 좌파가 153석을 확보했다. 양 진영 모두 과반 의석(176석)을 차지하지 못해 당분간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치열한 협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스페인 총리는 원내 1당 대표가 맡는 게 관례다. 이를 위해서는 하원 의원 절대 과반에 해당하는 17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선 국민당이 대승을 거두고 복스도 적지 않은 의석수를 보태 우파 진영이 과반을 넘어 정부를 손쉽게 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해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년)의 독재가 막을 내린 이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극우 정당이 정권에 참여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최근 이탈리아·핀란드에서 극우 정권이 들어서고, 스웨덴(민주당)·오스트리아(자유당)·독일(독일을 위한 대안) 등에서 극우 성향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등 유럽 각 국에서 극우 정당이 부상하면서 스페인에서도 우파 돌풍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선거 운동 기간 사회노동당을 이끈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우파에 표를 주면 1975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강경한 극우 세력이 집권할 길을 터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프랑코의 독재 정권 악몽이 있는 스페인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한 남성 유권자는 영국 BBC방송에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극우 정당이 정권을 차지하게 될까 봐 걱정하고 분노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사회노동당은 지난 2019년 총선과 비교해 의석수가 2석이 늘었고, 복스는 19석이나 줄었다.
극우 돌풍은 막았지만 스페인 정국은 한층 혼란스러워졌다. 좌우 진영 모두 집권하기 위해선 25석을 가져간 분리주의 정당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복스는 카탈루냐와 바스크 분리독립을 강하게 반대해 분리주의 정당들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연정 협상에는 시간 제약이 없기에 길게는 몇 달까지도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계속 정부를 꾸리지 못하면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할 수도 있다. NYT는 스페인이 올 하반기 유럽연합(EU) 이사회 순번 의장국을 맡게 됐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크라이나 대반격으로 중요한 시점에 혼란스러운 총선 결과가 스페인을 정치적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례적으로 여름에 치러진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70.33%로 2019년 11월 직전 총선 때보다 4%포인트 높아졌다고 일간 엘파이스가 전했다. 스페인에 섭씨 40도가 넘는 기록적인 더위가 덮치면서 우편으로 부재자 투표를 신청한 유권자가 247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유권자 3700만 명 중 7%에 해당한다.
당초 스페인 총선은 올해 말에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 5월 말 지방선거에서 국민당과 복스 연합이 집권당인 사회노동당을 꺾고 압승을 거두자, 산체스 총리가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며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국민당과 복스의 상승세를 막기 위해 내건 정치적 승부수였는데, 산체스 총리가 일단 '복잡한 체스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CNN은 짚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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