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연대인가, 록스타의 무책임인가?

이현파 2023. 7. 2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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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국가에서 동성 키스한 The 1975 보컬 매티 힐리

[이현파 기자]

 The 1975의 보컬 매티 힐리
ⓒ The 1975 소셜 미디어
 
지난 7월 21일 말레이시아 공연에 나선 영국 록밴드 The 1975가 예기치 못한 논란에 휩싸였다. The 1975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 '굿 바이브스 페스티벌(Good Vibes Festival)'에 올랐다. 첫날 헤드라이너(간판 공연자)로 공연한 The 1975의 보컬 매티 힐리는 공연 도중 말레이시아 정부의 반동성애 정책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The 1975를 초청한 국가에서 누구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말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욕설을 했고, 동성애를 혐오하는 국가에서 공연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I Like America & America Likes Me'를 연주하는 도중 베이시스트인 로스 맥도널드와 키스를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이제 우리는 쿠알라룸푸르에서 금지되었다"며 외친 후 무대를 떠났다.

The 1975는 "현재 여건상 공연을 계속 진행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다음 일정인 인도네시아와 대만의 공연도 취소했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보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허용한 국가다.

중단된 것은 The 1975의 공연 일정만이 아니었다. 말레이시아 통신 디지털부 측에서 이 공연을 '논란의 여지가 있는 콘서트'로 간주했고, 페스티벌의 잔여 일정 역시 취소했다. 3일 중 2일의 일정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굿 바이브 페스티벌의 주최측은 "매티 힐리의 논란이 된 행동과 발언으로 인해 페스티벌의 남은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발표하게 되어 유감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무슬림 국가인 말레이시아에는 LGBT 금지법이 법제화되어 있다. 무슬림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시아에서 동성애는 불법으로 간주되며, 현행법상 최대 징역 20년형에 취해질 수도 있다.

떠난 록스타, 남은 퀴어 시민들
 
  행사 취소 소식을 알린 'Good Vibes Festival'의 성명문
ⓒ Good Vibes Festival
 
'문화의 상대성'을 감안한다 해도, 말레이시아의 LGBT 금지법은 합리화될 수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사랑과 정체성을 이유로 처벌받아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티 힐리의 행동에 박수를 보낼 수도 없다. 그의 돌발 행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여럿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피해자는 아티스트다. 공연을 앞두고 있던 키드 라 로이(The Kid Laroi), 스트록스(The Strokes) 등의 아티스트는 말레이시아 땅을 밟기도 전에 공연 취소 소식을 들어야 했다. 티켓을 구매한 관객, 그리고 굿 바이브스 페스티벌을 준비한 주최 측의 충격과 손해는 더욱 크다.

말레이시아의 퀴어 커뮤니티 역시 이번 사태의 피해자다. 이들은 매티 힐리의 퍼포먼스를 '연대'나 '운동'으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의 한 성소수자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매티 힐리는 잃을 것이 없는 부유한 백인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정부 여당은 이 사건을 빌미로 더 많은 법률을 추진할 것이다. 더 많은 증오가 우리를 겨냥할 것이다"라는 우려를 드러냈다.

매티 힐리는 자신의 행동이 불러올 파급 효과를 생각해야 했다.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를 규탄한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처럼 특정 국가의 공연을 보이콧하는 방법도 있었다. 공연을 순탄하게 마치고, 말레이시아의 퀴어 커뮤니티에 기부를 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스타인 그는 다른 나라로 떠나서 공연을 이어가면 그만이지만, 이 땅에서 무게를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밴드 The 1975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The 1975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팝스타를 자처한 이들은 브릿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고,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도 올랐다. 보컬 매티 힐리는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연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유명해졌다. 록스타의 명성과 별개로, 최근 매티 힐리의 행보는 유독 문제적이다.

2019년 내한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는 팬이 선물한 태극기를 밟고 사진을 찍었다가 논란이 되었다. 최근에는 술에 취한 채 무대에 오르는 일을 거듭한다. 팟캐스트에서 여성 래퍼 아이스 스파이스를 중국인 여성에 비유한 인종 차별적 언행으로 비판받았다. 이후 일본 출신의 팝스타 리나 사와야마가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무대에서 그를 직접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매티 힐리는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육성을 자신의 앨범에 삽입하고, 동성애 금지 국가에서 키스 퍼포먼스를 하는 등, 사회적 의제에 대한 메시지를 나름의 방식으로 설파하고자 한다. 그러나 단순히 몇몇 행보만으로 의식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록스타'라는 이름으로 하는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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