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꺾여도 이겨내는 마음: 콜롬비아전 앞둔 조소현-홍혜지의 각오
오로지 한 성별에게만 허락된 스포츠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여성 스포츠를 향한 주목도는 남성 스포츠보다 낮았죠. 여성 선수들의 파워나 스피드, 기술이 남성보다 떨어지리란 편견이 꽤 오랫동안 대중에 자리 잡은 탓입니다. 여성에게 기대됐던 사회적 역할이 스포츠 선수들이 갖춰야 할 덕목과 동떨어져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세상은 느리게라도 진보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성 역할 담론이 힘을 잃고, 모두의 강인함이 동일한 무게로 인정받습니다. 여성 스포츠와 선수들을 향한 관심이 눈에 띄게 증가한 건 이러한 변화 덕입니다. 이제 한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만이 아닌, 여성 스포츠 자체의 매력을 즐길 차례입니다.
20일(현지시각), 6개 대륙 32개 팀이 참가하는 2023 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이 열렸습니다. 이번 대회는 참가국 수도 총 상금도 역대 최대입니다. 또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시리즈 등의 흥행으로 국내 여자 축구의 위상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 여자 축구 '황금 세대'라 불리는 대표팀은 4년 전 월드컵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대감을 업고 그라운드로 향하게 됐습니다.
월드컵 첫 경기인 콜롬비아전을 앞둔 최근, 현재 A매치 최다 출전자인 조소현과 이제 대표팀 8년 차가 된 홍혜지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장난을 주고 받으며 웃음꽃을 피우다가도 화제가 축구로 바뀌면 어느새 눈빛이 달라지곤 했는데요. 이들과 나눈 축구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Q : 콜린 벨 대표팀 감독은 얼마 전 '여자 축구는 남자 축구와는 또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번 여자 월드컵, 여자 축구 만의 어떤 매력에 주목해서 보면 더 재미있을까요?
조소현 거친 매력? (웃음) 여자 축구가 생각보다 훨씬 파워풀해요. 트랜지션이나 속도도 빠르고, 몸싸움도 심하고요. 이번 월드컵 예선 경기들을 봤는데, 볼 경합 과정이 엄청 거칠더라고요. 여자 축구는 공과 부딪힐 경우는 파울이 아니고 심판도 휘슬을 많이 불지 않거든요. 남자 축구에 비해 더 움직임이 조심스럽지 않죠.
홍혜지 '여자니까' 스피드가 늦거나 몸싸움이 약할 거라는 편견을 가진 분들이 여전히 많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오신다고 하면 '오히려 좋아'라는 느낌이예요(웃음). 보여드릴 게 더 많으니까요.
Q :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도 하지만, 적은 상대와 볼을 두고 다퉈야 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월드컵에서 상대 팀과 마주할 때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이 있나요?
조소현 맞붙는 공격수 성향에 따라 도발을 할 때도 있죠. 상대의 판단이 흐려지게끔 만드는 행동도 많이 하고요. 예를 들어 경기 초반 5분에는 상대도 저도 이기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시기잖아요. 그런 상황에선 오히려 차분하게, 요리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감 있게 나가는 편이에요.
홍혜지 다혈질인 나라들이 있어요. 동남아 팀들보다는 유럽 팀들이 그런 쪽인데요. 상대가 쉽게 흥분할 때는 이 상황을 역으로 활용하기도 해요. (벨) 감독님도 그걸 원하시고요. (조소현) 언니가 침착하게 맞서는 걸 잘 해요.
조소현 혜지 말대로, 아시안 팀은 침착하고 감정을 감추는 스타일이라면 서구권 팀은 화난 걸 표출해요. 도발하면 쉽게 넘어 오죠. 유럽 팀은 특히 몸싸움도 훨씬 격하고요. 가끔 매너 없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도 있는데, 대표팀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제가 그 선수만 졸졸 따라다니기도 해요. (웃음)
Q : 남자 대표팀이 출전했던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부터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Imposible is Nothing'라는 말들이 또 한 번 유행했어요. '꺾이지 않는' 정신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수들만의 방법이 있나요?
홍혜지 일단 꺾일 것 같은 상황이 오면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중요해요. 공격수의 경우, 공을 뺏기는 바람에 상대에게 역습을 당해 골을 허용하면 자기 책임이 될 수도 있잖아요. '나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죄책감도 생길 테고요. 그렇기 때문에 꺾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침착하게, 빨리 회복해야 해요.
조소현 (벨) 감독님 오시고 많이 배웠던 것이 멘털 관리였어요. 해외에선 선수들의 멘털이 약해져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각자의 몫'으로 보거든요. 하지만 감독님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시고, 이겨 내고 견디게끔 도와주셨어요. 힘겨운 상황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침착하게 이겨내고, 이겨내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를 배웠어요.
Q : 벨 감독님이 위로와 격려를 많이 해 주시나요?
홍혜지 위로와 격려를 많이 해 주신...다기보다는(웃음). 칼 같으신 분이셔서요. 힘든 상황 속에서 선수 스스로가 이겨내야 한다는 마인드 가질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해 주신달까요? 고난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을 강조하시는 느낌이에요.
Q :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에서, 축구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축구 잘하는 법'을 설명해 준다면.
홍혜지 우선 '계속'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죠.
조소현 자기 스타일을 찾아야 해요. 어릴 때는 누군갈 보고 배우고자 하는 생각으로 있었다면, 크고 나서는 따라하기 보다는 내가 잘 하는 걸 더 잘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죠.
Q : 7월 25일 콜롬비아전을 앞둔 각오를 듣고 싶습니다.
조소현 이번 월드컵 첫 경기니까 진짜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대표팀도 첫 경기에 모든 걸 걸고 있는 상황이라, '뒷 경기 생각하지 말고 하자'고 했고요. 분석도 전략도 콜롬비아전에 맞춰져 있습니다.
홍혜지 (조소현) 언니 말처럼, 승점 3점을 먼저 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16강 진출을 위해 첫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지만, 정말로 진출했을 땐 정말 '미쳐서'(웃음) 어떤 일을 낼 지 모르겠다는 말을 저희끼리 많이 하고 있어요.
Q : 두 선수의 꿈과 목표가 있다면.
홍혜지 모든 면에 있어서 차근차근, 하나씩 가자는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요즘은 사람마다 다 잘 되는 시기와 기간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일단은 해외에 나가고 싶어요. (조소현 : 불가능은 없다!) 해외에 가서 (선배) 언니들이 경험한 걸 겪어보고 싶고, 큰 걸 이뤄보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조소현) 언니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죠.
조소현 몸이 버텨 준다면 A매치 출전 200경기까지 채우고 싶어요. 제가 뛸 팀을 다시 정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번 월드컵에서 어떻게 제 기량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겠죠. 지금 당장의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다음 월드컵까지 출전을 하고 은퇴하는 것, 축구 팀을 창단하는 것. 축구 팀은 프로팀과 유스팀을 세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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