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음악 물결, 어떻게 탈 지 고민해야죠"…AI 편곡 공모전 여는 작곡가 김형석
2000년대 초반 크게 흥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감독 곽재용)의 주제곡 ‘아이 빌리브’(I Believe)가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스타일로 각각 바뀌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현악 4중주 악단이 편곡된 악보를 보고 곧바로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지난달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AI(인공지능) 편곡 서비스 '지니리라' 기자간담회에서 원작자인 작곡가 김형석(57)은 “(편곡 악보를) 내가 만들려고 하면 이틀은 걸린다”면서 놀라움을 나타냈다.
“과거엔 제 곡을 누가 도용하나 감시하며 꽁꽁 싸매고 있었죠. 이제는 사람들이 제 곡을 자유롭게 갖고 놀아야 하는 시대가 됐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형석은 AI가 가져올 한국 음악 시장의 변화를 이같이 바라봤다. 30년 넘게 몸담은 업계에 닥친 큰 변화가 신기한 듯 “창작자도 수용자도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 같다”며 “이럴 때일수록 미리 고민·예측하고 경험하고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큰 물결이 일었을 때 ‘젖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것보다는 ‘이 물결을 어떻게 타야 하지’를 고민해야 한다”면서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음악만 1400곡이 넘는 그가 자신의 대표곡을 AI로 편곡하는 공모전을 여는 이유다. 김형석은 8월 중 음원 지식재산권(IP) 플랫폼 '뮤펌’을 통해 공모하는 ‘아이엠 리본’(I am Re-Born)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대상곡은 논의 중이다. 선정된 곡은 실제 음원으로 발매하고 유통까지 추진한다.
이제껏 해 온 공모전과의 차이는 AI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음원 플랫폼 지니뮤직이 국내 최초로 출시한 AI 기반 편곡 서비스 '지니리라'로 먼저 편곡 초벌 작업을 한 뒤, 지원자가 직접 음악 작업을 통해 완전히 재해석한 곡을 응모하는 식이다. 김형석은 “아직 AI 기술이 초기여서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진 못하기 때문에, 기술의 작은 도움을 받아 자기가 만들고 싶은 창작물을 완성한다는 취지”라면서 “이를 시작으로 AI와 함께 기존의 좋은 곡들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I 시대, 음악 창작 문턱 낮출 것”
AI와 음악의 만남에 대해 김형석은 “누구나 작곡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창작의 문턱이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충 사진을 찍어도 포토샵 기술로 취향에 맞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각자의 영감 혹은 상황 만으로 AI가 '내 음악'을 만들어준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이라면서 “결혼식, 돌잔치 같은 중요한 기념일이나 연애 감정 등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누구나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도레미'를 배우지 않아도 내 감정과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치유의 의미도 굉장히 커질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요, 클래식, BGM(배경음악) 뿐 아니라 기능성 음악까지, AI를 통한 음악의 장르적 가능성도 무궁무진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대학 시절 대중음악으로 전향하기 전 클래식을 전공했던 그는 “바흐와 같은 고전 클래식은 음악이 수열 조합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AI가 분석하기에 용이할 것”이라고 했다. 2000년대 들어 그가 활발히 참여한 영화·드라마 음악 분야에 대해선 “영화·드라마 배경음악은 작업 분량이 너무 많아 짧은 기간 내에 작업하기 버거운 측면이 있다”면서 “BGM처럼 상황의 분위기만 잘 살려주면 되는 음악은 AI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기술이 음악의 폭은 대폭 넓혀줄 수 있겠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김형석은 “AI가 제시하는 모든 경우의 수가 인간에게 늘 감동을 줄 수 있을지는 창작자로서 회의적”이라면서 “결국 아이덴티티(정체성)와 스토리가 훨씬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과 관련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유 영역은 이론에서 벗어난 파격, 기존 데이터에서 엇나간 불완전성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분석업체 마켓닷어스에 따르면, 전세계 음악 생성 AI 시장 규모는 지난해 2억 2900만 달러(약 2978억원)다. 2032년에는 26억 6000만 달러(약 3조 4593억원)로 11배 이상 성장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김형석은 “지금은 초기지만 향후 데이터가 쌓이면서 AI가 인간처럼 음악을 자연스럽게 재해석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했다.
최근 화두가 된 AI 창작물의 저작권 인정 여부에 대해선 “시간을 갖고 제도화시켜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AI 편곡 공모전 역시 “AI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경험과 과정 중 하나로서, 제도 재정비를 위한 트리거(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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