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장마에 '휴포족'까지…피서 특수 사라진 '7말 8초' 비상
본격적인 ‘7말 8초’ 여름 휴가철에 접어든 지난 23일 오후. 동해안 최대 규모 백사장을 품은 강원도 강릉 경포해수욕장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붉은색 파라솔 수백개가 펼쳐진 해변은 눈에 띄게 한산했다. 간간이 우산을 쓴 피서객 사이로 몇몇만 바닷물에 몸을 담갔다. 인근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모(54)씨는 “해수욕장은 여름 한 철 장사인데 요즘처럼 날씨가 궂으면 장사를 공칠 수밖에 없다”며 “다음 주에도 종종 비가 예고돼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어진 집중 호우와 여름 휴가철이 겹치면서 한국 경제가 시름에 빠졌다.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성장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내수 소비마저 집중 호우로 움츠러들 조짐을 보이면서다. 특히 정부가 지난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전 종식을 선언한 뒤 처음 맞는 여름 휴가인 만큼 ‘보복 소비’를 기대한 유통업계에 먹구름이 끼었다.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국교통연구원이 국민 1만여명의 국내 하계휴가 계획을 설문한 결과 7월 29일~8월 4일 이동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19.3%로 가장 많았다. 전형적인 ‘7말 8초’ 여름 휴가다. 이어 8월 19일 이후(16.6%), 7월 22∼28일(11.5%), 8월 12~18일(11.4%) 순이었다. 여행지는 동해안권(24.2%), 남해안권(19.6%), 서해안권(11.1%), 제주권(10.1%)을 꼽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일제히 개장한 주요 해수욕장은 전국적인 폭우로 ‘피서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 강원도 속초의 한 게스트하우스 대표 박모(45)씨는 “여름 성수기 매출이 연 매출의 절반인데 갑작스럽게 숙소 예약을 취소한 경우가 많다”며 “위약금만 받고 새 손님을 받지 못해 방을 놀렸다”고 털어놨다. 충남의 한 캠핑장 관계자는 “캠핑장은 강이나 계곡 근처에 있는 경우가 많아 ‘비가 많이 올 것 같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며 “비가 안 온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캠핑장을 비울 수도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각종 지역 축제도 줄줄이 취소됐다. 경기 양평 ‘2023 제9회 양평 물빛축제’(7월 28일), 경북 안동의 여름 물 축제 ‘수(水)페스타’(28일), 전북 진안 ‘제13회 진안고원 수박 축제’(29일), 충북 옥천 포도·복숭아 축제(29일) 등이 일정을 취소했다. 대부분 폭우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애도하는 취지에서 축제를 취소했지만, 장마가 예고돼 축제 흥행이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문을 연 식당은 폭우 영향으로 배추가격이 지난달보다 2~3배 오르는 등 채소류 가격이 많이 올라 고심에 빠졌다. 가뜩이나 최근 지역 축제 ‘바가지 물가’ 이슈로 시선이 곱지 않아 메뉴 가격을 올려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다. 서울 송파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률(43)씨는 “장마철마다 물가 부담을 겪지만, 올해는 장마가 유독 길어 식재료값이 전반적으로 많이 올랐다”며 “삼겹살에 상추는 필수인데 상추 때문에 고깃값을 올려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여름 휴가마저 포기하는 ‘휴포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름철 호우와 폭염 특보가 번갈아 오가는 ‘날씨 변덕’ 때문이다. 고물가 추세에 따른 휴가비용 부담도 영향을 미쳤다. 휴가를 떠나더라도 해외로 향하는 인구가 늘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일본 노선 이용객 수가 김포-제주 노선 이용객 수를 4년 만에 추월했다.
여름 휴가철 국내 소비는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에 저조하고 하반기에 반등)’ 경제 전망으로 넘어가는 3분기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3%(잠정치) 성장했다. 투자·수출이 동반 감소했지만, 내수는 성장했다. 구체적으로 민간소비가 오락·문화, 음식·숙박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늘어 성장에 0.3%포인트 기여했다. 내수 소비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경제가 뒷걸음질했을 거란 얘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계속된 폭우와 해외여행 증가로 휴가철 ‘보복 소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하반기 유일한 버팀목인 소비가 가라앉을 경우 경제의 성장 엔진이 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관광지 물가부터 안정시켜 해외 관광 수요를 최대한 국내로 붙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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