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을 향한 폭탄 돌리기와 방송의 책무
[하성태 기자]
▲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의 한 장면 |
ⓒ 채널A |
"(금쪽이) 이 아이를 제대로 크게 지도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학부모님들의 신뢰와 지지입니다.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게끔 믿어주고 신뢰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교단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거, 질서를 지키는 거, 싫은 것도 해내는 거,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걸 못 배웁니다. 교단이 단단하고 선생님들이 버텨주셔야 아이들이 사회를 배워 나갑니다. 다시 한번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오은영 박사의 음성이 잠시 떨렸다. 지난 14일 방송된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의 말미, 오 박사는 이처럼 교권의 위기를 언급하며 일선 교사들이 "안쓰럽다"며 일말의 위로를 보내고 있었다. 마침 이날 출연한 금쪽이는 학급 친구들은 물론 담임교사와 교감에게까지 격한 폭언을 일삼고 폭행과 난동을 부리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난동이 지속되자 급기야 담임교사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오 박사는 "선생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많은 방법과 힘을 잃어버렸다. 두 손 두 발을 다 놓은 입장"이라며 "그런데 이런 상황이 생기면 선생님으로서의 위치에 잘 있어야지만 선생님 역할을 해내시는데 그 위치를 여러 아이들 앞에서 위협당하게 된다"고 안쓰러워했다.
해당 방송이 방영되고 불과 며칠 뒤, 서울 서초구 S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24살 임용 2년 차 여성 교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이틀 후부터 S초등학교 교문 앞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추모가 전개됐다. 전국의 교사들이 전례 없는 추모제를 열며 젊은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개탄했다. 며칠 사이 교권 추락을 넘어 교권이 붕괴되어 버린 현실에 대한 분석과 개선 요구가 교계를 넘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빗발치는 중이다.
이처럼 S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방송에서 오 박사는 학부모들을 향해 교사들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당부했다. 그와 별개로, 사망사건 이후 오 박사의 훈육법 등에 대한 찬반 여론을 넘어 직접적인 비난이 출몰했다. 1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오 박사의 소셜 미디어에 교권 추락의 책임을 묻는 비난 댓글이 빗발치고 있다. 예상 그대로였다.
오은영과 금쪽이, 그리고 방송국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의학박사. <요즘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오은영의 금쪽상담소>, <오은영 리포트>, <오케이? 오케이!>, <써클하우스>.'
오 박사가 본인 소셜 미디어 계정에 적은 자기소개다. 출연 프로그램이 무려 4개다. 웬만한 유명 예능인 뺨치는 숫자다. 오 박사는 학급 분위기를 흐리고 학급 친구들의 학습권을 침해해 온 일명 '금쪽이'들의 치료와 상담을 미디어를 통해 전파해 왔다. 학부모를 향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라"거나 "문제 아이는 없다, 양육에 문제가 있을 뿐"이란 오 박사의 주문은 유행이 된 지 오래다.
오 박사가 처음 방송에 출연한 건 무려 2006년부터다.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고정 패널이 시작이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방송인' 오은영의 위상이 달라진 건 그가 종편과 지상파로 보폭을 넓히면서부터다.
이후 오 박사는 <금쪽같은 내 새끼>가 인기를 얻고, 유사 프로그램이 생겨나며, 아동을 넘어 성인이나 부부를 대상으로 한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까지 출연했다. 방송국이 환호할 만한 유형이 맞았다. 반면 오 박사가 출연한 성인 대상 상담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소재가 지적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한 회 한 회 화면 속 문제 아동을, 성인들의 심리를 꿰뚫고 솔루션을 내려주는 오 박사의 '치료'법은 말 그대로 방송에 최적화된 아이템이라 할 수 있었다.
요식업계의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개통령'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와 함께 오 박사를 방송국이 만들어낸 '대한민국 3대 해결사'로 일컫는 이들이 늘어날 만했다. 하지만 요식업계나 애견 훈련과 아동 심리 치료나 상담은 전혀 다른 영역일 것이다. 무엇보다 학부모에 대한 영향력이나 공교육과의 접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9일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도 페이스북에 S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을 안타까워하며 이런 글을 적었다.
"정신과 의사라면 노력해도 바꾸기 어려운 아이가 있고, 상당수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며, 그런 노력에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도 프로그램은 흥행 내지 권위를 위해 의도적인지 아니면 은연중에 그러는지 환상을 유지하려 든다."
더 정확히는 오 박사가 출연하는 방송을 향한 지적이라 할 수 있었다. 서 박사는 "금쪽이 류의 프로그램들이 지닌 문제점은 방송에서 제시하는 그런 솔루션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사안에 대해서 해결 가능하다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매우 심각해 보이는 아이의 문제도 몇 차례의 상담, 또는 한두 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듯 꾸민다"고 부연했다.
그러한 환상의 대상은 누구인가. 금쪽이를 자식으로 둔, 혹시 내 아이가 금쪽이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부모이자 학부모들이 주요한 대상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를 넘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비학부모나 예비학부모 또한 '금쪽이'의 주요 시청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환상의 반대편에 선 일선 교사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의 한 장면 |
ⓒ 채널A |
"실제로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많이 하는 말씀이 '우리 아이 마음을 얼마나 읽어주셨어요'(예요).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놀이터에서 새치기를 하려고 했는데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를 밀쳤어요. 거기서 엄마는 아이에게 제대로 '줄을 서야 하는 거야'라고 가르쳐줘야 하는데 '아이고 많이 속상하지' 이걸 마음을 읽어줬다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 지난 21일 <뉴스1> TV, <"우리 애 아빠가 참고 있어요"…진상 학부모 갑질에 멍든 교사들> 중에서
검은색 복장을 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오은영식 솔루션'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사망한 S초등학교 선생님을 추모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 박사와 학부모들의 소위 '인풋'과 '아웃풋'이 다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학부모들은 훈육이 필요한 순간에 마음을 읽고, 교육이 먼저인 상황에 공감부터 내세우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또 다른 교사도 "마음 읽어주는 공감과 훈육과 교육은 구분이 되어야 한다"며 "일방적으로 학부모가 교사한테 자기 자식에 대한 시선을 정해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밝혔다. 교사를 향해 "우리 마음을 얼마나 읽어주셨어요"라고 묻는 학부모 중 오은영 박사의 방송을, 책을 접하지 않은 이가 얼마나 될까.
이렇게 '오은영 솔루션'을 오독한 학부모들에 대한 일선 교사들의 토로는 S초등학교 사망사건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특히 오 박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는 이도 있었다. 한 달 전인 지난 6월 중순, 자신을 교직 경력 10여 년 차라 밝힌 이가 블로그에 적은 "25명의 초등학생으로부터 '탈압박' 해보세요"란 장문의 글이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것이다.
"어느샌가부터 오은영 박사의 말들이 '육아의 바이블'이 되면서 모든 아이는 무조건적으로 이해받아야 하고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가 됐다. 그녀는 아이의 행복과 안정감, 건강한 성장을 방해하는 모든 것이 학대라고 말한다. 진의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학부모들은 저 말을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학교는 아동학대의 온상이 되었다. (어떻게 한 전문가의 의견을 종교처럼 맹신하는지, 신기하다.)"
글쓴이는 자신의 경험이라 밝힌 사례들을 들어 일상적인 교육이, 훈육이 어떻게 아동학대이자 학교폭력으로 번지는지를 실감나게 기술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른바 '진상' 학부모들 행동의 심리적 기저에 오은영식 솔루션이 자리할지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그는 글 말미 "나는 오은영 박사에게, 당신이 만든, 스물이 넘는 소황제를 거느리고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으면서 '교육'을 하는 게 가능한지 묻고 싶다. 답을 구한다"며 이렇게 적었다.
"오은영 박사의 교육, 아니 치료는 철저히 1인용이다. 그 애가 세상을 혼자 살 거라면 그 애의 모든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마음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사회는 그렇지 않다. 그 애는 어떻게든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가야 한다. 금쪽이들의 마음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만 귀한 자식이 아니다. 모든 아이들이 귀하다(...). 그러니 바라건대, 부모들은 오은영 박사가 아픈 아이를 '치료'하는 방법을 교육기관에 요구하지 않길 바란다."
많게는 서른 명, 적게는 스무 명의 아이들을 교육해야 하는 일선 현장 교사의 절절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방송을, 미디어를 등에 업은 오은영식 솔루션이 특히 초등학생 학부모들 사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수년째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진상' 학부모들 역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학부모들이 교사들에게 '우리 아이 마음을 얼마나 읽어주셨어요?'라고 묻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방송을 통한 오 박사의 솔루션과 권위, 영향력이 '진상'의 알리바이를 제공했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아이들에게, 교사에게 돌아간다. 임용 10년 차라는 글쓴이도 바로 그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다.
"더불어 오은영 박사 역시 특수한 아이를 치료하는 방식을 육아의 상식이자 진리인 것처럼 퍼뜨리는 걸 멈춰야 한다. 우리 금쪽이는 이 부분이 힘들었을 거예요, 우리 금쪽이는 예민해서 그런 거예요, 따위의 변명은 필요 없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 예민한 아이를 감당하는 건 또래 친구들의 몫이 아니며 사회의 몫이 아니다. '내 아이가 예민하니 너네가 이해하라'는 궤변이 어디있는가. 예민하든 말든 결국 사회 속에서 살아갈 게 아닌가."
▲ 채널A <금쪽같은 내 새끼>의 한 장면 |
ⓒ 채널A |
교사 사망사건 직후, 원인 규명 와중에 문제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한 폭탄 돌리기가 한창이다. 때 아닌 학생인권조례가, 전교조가 불려 나온다. 또 대통령이 나서서 교권 강화를 지시하자 교육부가 고시 제정과 자치조례 개정 추진에 나설 전망이다. 오은영식 솔루션을 그 책임 떠넘기기의 일환으로 소환하는 이들마저 나타났다.
오 박사 본인이나 방송 제작진들은 억울한 마음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교권 추락이나 빈번한 아동학대 사건을 낳은 주범으로 오 박사의 교육법을 적시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참에 논의를 넓혀 볼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그만큼 오 박사는 권위와 부를 획득했고, 방송국도 이익을 취했다. 그에 책임이 뒤따르는 건 당연지사다.
과연 오은영 박사의 '치료'법이 적재적소의 학부모들에게, 시청자들에게 가닿고 있는지, 또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그 솔루션들이 너무 과하고 범용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건 아닌지 되짚고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도리어 생산적인 일일 것이다. 무엇보다, 일선 현장에서 금쪽이들과 학부모들로 인해 상처받고, 눈물 흘리고, 급기야 교직을 내려놓을까 고민하는 교사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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