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위기와 아이 유산, 그럼에도 꿈을 놓지 않은 이유

문종필 2023. 7. 2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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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그래픽 노블 <낯선 시간-신혼일기>

[문종필 기자]

"그림과 시가 접목된 만화, 그러니까 그래픽 포엠(시)을 해보고 싶어요."

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100년 전에 만들어진 '등단'과 같은 발명품(제도)이 작가를 탄생시키는 것일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책을 출간하면 작가가 되는 것일까. 요즘 시대는 등단과 같은 제도가 아니어도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거나 글을 잘 쓰면 문인이 될 수 있고,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책을 출간할 수도 있으니 앞서 이야기된 두 조건이 작가를 탄생시키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닐 것이다.

책을 출간하거나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해 누군가에게 호명받거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런 손쉬운 잣대 하나만으로 작가라고 칭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작가라면 무엇인가 '멋'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을 뽐내기 위해 치장하는 '멋'이 아닌, 자신만의 진정한 '멋'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작가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라면 몰라도, 작가라 함은 무엇인가 진득하고 험난한 여정을 돌파해야만 할 것 같다. 장 자끄 베넥스 감독의 영화 〈베티블루 37,2〉(1988)의 주인공 조르그처럼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소설가가 되는 것처럼, 큰 아픔을 딛고 일어나야만 소설가의 작품과 소설가를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라. 나와 큰 차이가 없다면 대상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이 생기겠는가. 따라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믿음직한 것들이 존재해야만 할 것 같다. 문학 제도와 책 출판 자체를 다소 비판한 감이 없지 않지만, 작가라는 사람에 한정해서는 이런 기대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낯선 시간-신혼일기> 표지
ⓒ 김다명
이번에 소개할 김다명 작가의 그래픽 노블 <낯선 시간-신혼일기> (2022)도 이 범주에 들어온다. 이 텍스트는 작가탄생 서사를 담고 있다. 첫 번째 텍스트의 경우 어느 작가이든 자연스럽게 작가탄생 서사가 담겨 있을 텐데, 독자들은 왜 하필 이 책을 선별해 소개하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다.

"갈수록 체념이 늘어난다"는 작가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선, 이 텍스트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고통과 힘듦을 선과 색과 칸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이를 감상하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수 있다. 예술에서 차이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만화가들의 경우, 칸과 선을 활용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면을 표현할 수밖에 없으니 특별할 것은 없지만, 고통을 표현하려 노력했다는 점에서 고유한 그만의 표정을 느끼고 싶어진다.

김 작가의 경우,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을 오래도록 품고 있었으나, 심각한 결핵으로 세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지워지지 않는 수술 자국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픈 몸으로 인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 전공을 살려 먹고살 궁리를 한 탓에 일찌감치 꿈과 멀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결혼 생활은 연애와는 매우 달랐다. 식기를 놓는 순서부터 청소하는 것까지 닮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자주 다투고 서로 실망했다. 이러한 이유로 만화 그리기는 더욱더 어려워졌다.
 
"갈수록 체념이 늘어나요. 짬짬이 시를 쓰지 않고선 견디지 못하겠어요.
 
마치 나뭇잎의 그림자들이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는 내 모습 같다.
 
첫 만남을 되새겨야 잠이 들 수 있는 하루하루가 아직은 낯설다."

이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 김다명 작가는 시를 쓰며 자신을 치유하자고 했고, 연애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다툼으로 인해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탓에 첫 만남의 설렜던 기억을 떠올려야만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절히 원하던 아이를 유산하기도 했다. 보수적인 부모님은 어떠한가. 이들은 자신의 신앙만을 앞세울 뿐 딸의 처지를 공감하려 들지 않았다.
 
  <낯선 시간-신혼일기> 본문
ⓒ 문종필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도 그녀는 그림 그리기를 내려놓지 않는다.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문학과 만화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 결과물이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든 받지 않든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목표와 꿈을 위해 걸어 나갔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그림이라는 선과 색으로 표현했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런 삶을 읽음으로써 자신과 견주게 된다. 당신도 나도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니 조금은 더 나은 삶을 향해 힘내보자고 말이다. 그래서 이 만화의 내용도 값지게 다가온다. 
다소 무거운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텍스트가 땅끝까지 주저앉는 것은 아니다. 용기 있게 자신을 고백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지 자신을 치유하는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작가는 텍스트 말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는다. 
 
"이러다가도 힘들어지면 싸우고 이혼하고 싶고 그렇겠지.
 
그래도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내 두가지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거야."

작가가 꾼 두 가지 꿈 
 
▲ 본문  <낯선 시간-신혼일기> 본문
ⓒ 김다명
 
김 작가는 결혼 생활이 생각처럼 쉽지 않지만, 그래도 좋은 기억을 자주 만들겠다고 말한다. 힘들 때면 이 순간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힘을 내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두 가지 꿈은 그래픽노블 작가로 살아가는 것과 그토록 원하던 아이를 갖는 것이다.

사후적으로 봤을 때, 이미 <낯선 시간-신혼일기>라는 책을 출간했으니 하나의 꿈은 이룬 셈이고, 이 텍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흑두루미를 쳐다보고 있으니 두 번째 꿈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인생은 새옹지마인가. 살아가다 벽을 만나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힘이 될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텍스트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 자체가 우선 무겁다. 독자들을 위해 종이 질량을 조금만 낮추어 주면 어땠을까. 그리고 작가 스스로 시가 접목된 '그래픽 포엠'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 의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시의 영역을 조금은 더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그려 놓았으면 어땠을까.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처럼 내용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으면 하는 바람을 숨길 수 없다. 하지만, 김다명 작가는 힘든 과정속에서 자신의 작품 행위를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간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향후엔 지금보다는 조금은 더 편안한 작업 환경 속에서 작업이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그녀의 후속 작업을 한 명의 독자로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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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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