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과 교권은 같이 가야한다
[안준철 기자]
▲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 인근에서 열린 전국교사 긴급추모행동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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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퇴직교사다. 학교를 떠난 지도 벌써 8년이 되었다. 오늘도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산책도 하고 시도 쓰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들었다. 일상을 사랑하는 나는 웬만해서는 불행해지지 않는 특이체질이다. 하지만 교직 2년차 새내기 교사가 교실에서 사망한 그날 이후 오늘까지 부끄럽고 참담하고 절망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 교육이 중병에 든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그런 중에도 영광은 있었다. 우리가 알 듯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교육을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우리 교육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이만한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국민 개개인의 뜨거운 교육열이 큰 몫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교육과 정치만 바로 서면 꽤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우리나라 교육의 최대의 난점은 입시교육이다. 아무리 교육적 투자를 많이 해도 그것이 삶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면, 오로지 시험 성적만과 상급학교 진학만을 염두에 둔 행위라면 실질적인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이런 의미 없는 교육이 어린 사람인 학생들을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시켜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든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이런 한국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교육운동 일각에서는 '교육불가능의 시대'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런 암담한 분위기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불씨를 일궈낸 것인 이른바 '혁신교육'이었고, 이 혁신교육 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바로 '진보 교육감'이었다. 물론 진보교육감들이 주도한 혁신교육이 우리교육의 고질적 병폐인 입시교육을 체감할 만큼은 해소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미완성의 교육개혁의 성과조차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속수무책으로 지워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거기에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의 갑질로부터 교사를 보호하지 못한 시스템의 미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최근의 비극적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진보교육감에게 돌리고 있어서 우려가 크다. 또한 당연한 시대적 요청이었던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있는 것도 전근대적인 무지의 소치다.
이는 근거가 희박하거나 사실과는 무관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현재 공개된 최신 자료에 의하면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던 지역에서 발생한 교권침해 사례가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 비해 오히려 더 적게 나타나기도 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되며,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것을 유도하거나 선동하는 것은 우리 교육을 두 번 죽이는 가증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초등교사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교육권 보장을 촉구하는 집회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낡아빠진 옛날의 교권이 아니다. 교사에게 권위가 아닌 존중을, 권력이 아닌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촉구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권의 사전적 해석은 '교사로서 지니는 권위와 권력'이다. 그럼에도 거리로 나온 교사들은 권위가 아닌 존중을, 권력이 아닌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지금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인 듯하다. 이 외침이 절박하면서도 조금은 슬프게 들린다. 오죽했으면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최우선으로 삼았을까 싶어서다.
나는 교단을 밟기가 무섭게 사립재단의 무지막지한 횡포를 경험한 바 있다. 초임교사의 신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운이 좋아 그 싸움에서 이겼고, 교사 신분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그 해 전교조 전신인 전교협이 탄생했고, 지역 교권위원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는 교사가 갑이었던 시절이어서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의 위협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재단 혹은 학교당국의 갑질과 함께 교육 자체의 위협이 있었다. 바로 입시교육이다. 내가 근무한 학교가 대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전문계고였지만 당대의 교사로서 우리나라의 교육 전반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는 없었다.
진보교육감이 한 일은 무엇보다도 교사들에게 바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준 것이다. 입시가 아닌 삶을 위한 교육으로 교권(바른 교육을 할 권리)을 지킬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나로서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이런 참된 교육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혜택을 입는 것은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진보교육감 이후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올라간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윤석열 정부의 진보교육감 죽이기는 다시 입시교육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경쟁적이고 살인적인 입시위주교육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학생도 교사도 행복할 수 없다. 더욱이 이미 중병에 든 우리 교육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진단과 처방은 거리로 나온 교사들의 절망을 더욱 심화시키고 우리의 미래를 암담하게 할 뿐이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같이 가야한다. 공교육을 훼방하고 교권을 위협하는 갑질 학부모에 대한 대책은 별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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