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아", "아내 사랑해"…전사한 러 군인의 33쪽 일기장

英매체, 러시아 군인 일기장 공개
"집에 너무 가고 싶어…울며 쓴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 6개월여간 지속되는 가운데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러시아 군인의 일기가 공개됐다. 일기에는 전쟁의 참혹함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이 담겼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 일요판 선데이타임스는 지난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동원령 발령으로 최전선에 투입됐다가 전사한 한 러시아 군인의 일기를 공개했다. 일기를 작성한 이는 모스크바에 살던 건설 노동자 비탈리 탁타쇼프(31)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018년 결혼한 탁타쇼프는 두 살배기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었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예비역을 대상으로 부분 동원령을 발령해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할 병력 약 30만명을 소집했다. 이에 탁타쇼프는 2달 뒤인 11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州) 토크마크 전선에 투입됐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러 군인 생전 일기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에 있는 파괴된 안토노우스키 다리 앞에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서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무관.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탁타쇼프는 이때부터 올해 1월 초까지 공책에 가족에게 보낼 편지를 쓰며 전쟁터에서의 삶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그가 쓴 기록만 해도 33쪽에 달한다.

탁타쇼프는 징집 첫날이던 11월 29일 "우리는 (체첸군) 근처에 머물고 있는데 밤에도 총소리가 들린다. 드론이 날아다니고 대포가 작동하는 걸 목격했다"면서 "(가족) 모두 너무 보고 싶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썼다.

다음날인 30일 자 일기에는 자기가 곧바로 전투에 투입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두렵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 글을 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족) 모두를 정말 사랑한다"고 했다.

그는 또 "나는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다. 모든 종교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살인하지 않고 그들(우크라이나군)도 우리를 죽이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12월 4일 자 일기에서 탁타쇼프는 자기가 최전선에 끌려가게 됐다고 했다. 이날 탁타쇼프는 아내를 향해 "정말 사랑한다. 당신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 부디 나를 기다려달라"고 썼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로 새해 휴가마저 취소되자 탁타쇼프는 "주변 사람이나 나 자신을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며 "오늘은 나무를 자르던 중 발목을 부러뜨려서라도 당신들(가족) 곁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절망스러운 심정을 털어놨다.

탁타쇼프는 1월 5일 자를 마지막으로 일기 쓰는 일을 멈췄다. 그가 기록을 중단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탁타쇼프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최전선에서 싸웠으나, 결국 이달 첫째 주 그의 시신이 발견됐다. 자포리자 지역 남동부 평원으로 진격한 우크라이나군은 이곳에 그대로 방치된 전사자 다수의 시신을 목격했다. 이 중에는 탁타쇼프의 시신도 있었다. 우크라이나군은 탁타쇼프의 군복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하게 구겨진 일기장을 발견했다.

선데이타임스는 "우리가 찾은 건 푸틴의 전쟁으로 미래가 파괴된 한 가정의 모습"이라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크렘린궁의 거짓말 뒤에 숨은 잔인한 현실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오데사에 연일 미사일 공격…'세계유산'도 훼손

한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오를란-10 무인 정찰기를 들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무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편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중심지인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대한 집중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23일 새벽 공습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오데사 시내 역사지구에 있는 '스파소-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구세주 변용 성당)도 심하게 부서졌다.

BBC는 "성당 지붕 대부분이 날아갔고 건물의 두꺼운 벽은 여전히 서 있지만 불에 탔으며, 기둥들은 걱정스러운 각도로 기울어졌다"고 전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오데사와 관련된 러시아 테러리스트에 대한 보복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들은 보복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만 러시아는 자국 미사일이 오데사 성당을 타격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며, 성당은 우크라이나군의 방공미사일에 의해 파괴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