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째 근무, 왼손이 안 펴져" 어느 무거운 노동 일지

김홍규 2023. 7. 2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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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개 기록으로 남긴 공장에서의 3년, <미르의 공장 일지> 를 읽고

[김홍규 기자]

▲ 책 <미르의 공장 일지> 표지 김경민이 <미르의 공장일지>라는 책을 냈다. ‘미르’는 그가 글 쓸 때 자주 사용하는 이름이다.
ⓒ 숨쉬는책공장
 
지난달 발간된 책 <미르의 공장 일지>에는 20대 여성 노동자인 글쓴이가 2018년 7월 6일부터 2020년 10월 17일까지, 3년 간 공장에서 일한 내용을 정리한 146개의 일지가 담겼다.

처음에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을 읽었으나 소감을 쓸 엄두를 내기는 더욱 힘들었다.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도 어렵지 않았다. '일지'라는 글쓴이 규정과 달리 책 곳곳에 있는 표현은 유려하고 깔끔하면서도 생생했다.

하지만 벽돌 한 장 만들어본 적 없고, 공장 문턱에도 가본 적 없는 내게 미르의 기록은 너무 무거웠다. 현직 교사인 나와 과거에 만났으며, 현재도 만나는 많은 학생들, 그리고 내 두 아들의 앞날도 떠올랐다.

'용'을 뜻하는 '미르'는 글쓴이에게 잘 어울린다. 체력은 바닥이고 책 읽는 것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내게 그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일주일에 50~60시간씩 일하면서도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다니!
 
"오늘부로 계약이 종료되었다. 2년을 채우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하루를 남기고 퇴사원이 된 것이다. … 주 60시간씩 일하던 내 몸이 주 60시간씩 쉬는 걸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 224쪽) 

영혼을 부패시키는 이런 노동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는 학생들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주겠다며 교육과정까지 바꾸고 수십억 원씩 돈을 들여 관련 기관을 만들고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직업 종류와 직장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철학가 자크 랑시에르(1940년~)는 1830~1850년대 프랑스 노동자들의 일기, 편지들 등 독해를 통해 쓴 <프롤레타리아의 밤>(안준범 옮김, 문학동네)에서 19세기 노동자 고니가 쓴 시를 보며 노동을 "영혼의 밤을 부패시키는 예속"이라고 표현했다(114쪽). 고니는 길고 힘든 노동이 퇴근 후 사유할 시간과 자유를 빼앗아버린다고 비판했다. 미르의 노동도 다르지 않다.
 
"일 마치고 집에만 들어가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바닥과 몸이 하나가 되어 스르륵 아침을 맞이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책, 45쪽)
 
"오늘은 연속 열흘을 일한 마지막 날이다! … 목요일 아침부터 왼손이 잘 안 펴져서 당황했다. 금요일 새벽에는 세 번 넘게 깼는데 잠이 안 와서 자야 한다고 채찍질하면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탄력근로제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기사가 생각나서 힘도 빠졌다. 주 60시간 일하는 건 그냥 일하다가 죽으라는 거다. 돈 벌어서 쓸 시간도 없이 그냥 일하다가 죽는 거다." (책, 100쪽)
 
기업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에서도 사람에 돈을 쓰는 데 매우 인색하다. 로고나 이름을 바꾸고, 일회성 행사나 사업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돈이 들어가는 사람을 고용하는 일에는 강박적으로 계산기를 들이댄다. 사람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학교와 교육청에서도 주휴 수당을 아끼기 위해 일주일에 14시간까지만 계약하는 일이 흔하다.
한국 사회는 살인적 노동 강도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일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은 매장에 들이면서도 정작 시간제 노동자에게 주는 돈을 아끼려고 무급노동도 모자라 각종 수당을 떼먹는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이 사방에 널려 있다.
 
"여기는 정말 사람들을 막 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노동자들이 모두 업체 계약직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즉 업체에 정규직이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한 달 알바거나 10개월 계약직이다. 10개월을 채우면 한 달 쉬고 다시 온다. 웃긴 건 쉬는 중에도 알바로 긴급 투입되곤 하는데 한 달 내리 알바로 일하다가 10개월짜리 계약서를 다시 쓰기도 한다." (책, 29쪽)
 
"1970년대 전태일 열사가 보던 그 공장의 모습과 2019년 내가 보는 공장의 모습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라는 미르의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책, 151쪽). 특히나 미르가 일한 공장은 전자 제품으로 유명한 대기업이다.
 
▲ 산업재해 사망자 수 고용노동부가 매년 초 발표하는 직전 연도 '산업재해 현황' 가운데 사망자 수(2022년 기준 2223명)를 정리한 그래프이다. 그래프 아래 추가 설명은 고용노동부가 매년 발표하는 내용에 담겨 있는 것을 옮겨 온 것.
ⓒ 김홍규
 
위 그래프는 고용노동부가 매년 초 발표하는 직전 연도 '산업재해 현황' 가운데 사망자 수를 정리한 것이다. 매해 2천 명이 훨씬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정부가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한 숫자가 이렇다. 그마저도 출퇴근 중에 당한 사고나 1년이 지난 사고는 포함되지 않은 통계다. 회사가 신고하지 않거나 막은 산업재해까지 포함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집을 나서서 돌아오지 못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은 2019년 10만 9242명, 2020년 10만 8379명, 2021년 12만 2713명, 2022년 13만 348명이다. 정부 통계를 따르더라도,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일터에서 매일 6명이 죽고 323명이 다친 셈이다.

기계에 노동자들이 맞춰야 하는 공장 
 
 전태일 일기장 관리위원회가 2021년 4월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화시장 부근 청계천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 '전태일 일기장 육필 원본 공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공개한 열사의 육필 일기장 모습(전태일 열사 동상과 육필 일기장 다중 촬영).
ⓒ 공동취재사진
 
한국 사회는 노동자를 "시키면 하고 안 시키면 안 하는 마리오네트 같은 존재"로 취급한다(책, 36쪽). 무작정 기계에 맞추도록 요구하며 '부속품'으로 여긴다, 단지 누군가가 돈을 더 벌기 위해(책, 72쪽). 이런 사회에서 매년 수천 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고 수십만 명이 다치는 일은 어쩌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점심시간이 11시 58분부터 12시 58분까지다. 라인이 58분부터 돌기 때문이다. 오늘은 갑자기 11시 35분에 작업반 전체 단톡방에 카톡이 왔다. 설비 문제로 점심시간이 변경되었다는 내용이었다. … 기계가 사람한테 맞춰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기계한테 맞춰서 무작정 생산해야 하는 곳이니까……. 마치 '기계 부속품 인간'인 것 같다." (책, 72쪽)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만큼 일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책 49쪽)"를 희망하는 노동자 미르의 바람은 어찌 보면 너무 소박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수많은 노동자가 바라는 이 간단한 희망조차 자기 생계 전부와 목숨을 걸고 말해야 한다. 하긴 매년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어 나가도 '별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 사회이니, 미르의 바람이 '너무 이상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급 9860원으로 올해 대비 240원 오른 내년 최저임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난방비, 가스요금, 전기요금 폭탄'을 벌써 잊어버린 이들이 <미르의 공장일지>를 꼭 읽어보면 좋겠다.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새로운 쇠사슬'로 바꿔 끼워지듯 150년 전 노동자들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살펴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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