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실 감찰로 검수완박 우회, 檢 오송참사 유관기관 전방위 압색
오송지하차도 참사 수사를 위해 구성된 검찰 수사본부(본부장 배용원 청주지검장)가 24일 충북경찰청·흥덕경찰서·충북도청·청주시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충북소방본부 등 지방자치단체와 관계기관을 압수수색했다. 국무조정실이 지난 21일 흥덕서 소속 경찰관 6명을 112 신고 접수 후 초동 대응 부실 등의 혐의로 대검에 수사의뢰한 지 사흘 만이다. 대검은 국조실 수사의뢰 직후 청주지검에 수사본부를 꾸리고 정희도 대검 감찰1과장, 조광환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장을 비롯해 총 17명의 검사를 투입했다.
지난해 9월 시행된 개정 검찰청법에 따라 대형 참사 사건의 경우 검찰의 직접 수사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찰공무원이 범한 범죄의 경우 여전히 검찰청법상 검사의 수사개시 범위에 있어 직접 수사가 가능하다. 이날 검찰이 관계기관에 대해 동시다발 압수수색을 벌인 것도 흥덕서 소속 경찰관 6명의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란 게 대검의 설명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사실상 참사 책임 규명 국면에서 경찰을 대체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국조실은 이날 충북도 본부와 도로관리사업소 관계자 5명과 전·현직 행복청 관계자 7명 등 다른 기관에 대해서도 “재난 대응과 하천점용허가 등 감독 관련 중대한 직무유기 혐의가 발견됐다”며 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청법 시행령인 ‘검사 수사개시 규정’에 따르면, 개별 법률에서 국가기관으로 하여금 검사에게 고발하도록 하거나 수사를 의뢰하도록 규정된 범죄의 경우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직무유기 혐의는 검찰 수사개시범위에 일단 포함된다”고 말했다.
관련 수사팀을 꾸린 경찰은 난감한 처지가 됐다. 경찰은 앞서 지난 17일 충북경찰청에 수사관 88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차린 데 이어, 지난 19일 본부장을 김병찬 광역수사단장으로 교체하고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인력 40여명까지 충원해 100명이 넘는 수사관을 투입했다. 같은날 국조실도 동시에 감찰 조사에 돌입하면서 사고 원인에 관한 진상 규명은 투트랙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는 동안 경찰은 관계기관 어느 한 곳도 압수수색하지 못한 채 참고인 조사 등 저강도 수사만 진행해 왔다.
국조실은 지난 21일 흥덕서 경찰관 6명을 검찰에 수사의뢰하며 아예 경찰을 정조준했다. 이들은 충북경찰청 상황실이 신고 위치로 지정한 궁평2지하차도로 출동하지 않았는데도 10여분 뒤 도착 종결 처리하고, 이후 국무총리실의 당시 상황 파악 과정에서 ‘궁평지하차도에 출동했다’는 취지로 허위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직접수사에까지 나서면서 경찰 조직 내에선 당혹스런 분위기가 감지됐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수사권 조정 이후 대형 참사는 기본적으로 경찰의 수사 관할”이라며 “국조실 수사의뢰 직후 검찰이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속도감 있게 압수수색을 한 건 짜여진 각본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내부망에 “충북청장, 충북청 반부패수사대는 뭐하나. 경찰은 대형참사 사건을 수사할 수 없느냐”며 “비만 와도 책임만 면하려고 비상소집 걸지 말고, 압수수색 당장하라”고 썼다. 다만,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수사 주체는 검찰과 협의해서 결정할 문제”라며 “할 말은 있지만 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검찰 수사를 받게 된 당사자 중 한 명인 오송파출소 이모 경장은 전날(23일)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직접 반박에 나섰다. 이 경장은 “당일 태블릿 오류 얘기는 쏙 빼놓고 사실관계를 정정해 바로 잡은 걸 허위보고라고 한다”며 “당시 근무했던 경찰관 3명은 순찰차 1대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근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 때도 대형 참사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없어 경찰 특수본이 송치한 뒤에야 서울서부지검이 보완수사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 수사 초기부터 경찰의 ‘셀프 수사’ 비판이 일었고, 이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 장관은 “상설특검을 대형참사 관련 초동 수사 단계에서 도입하는 건 진실 규명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특검을 발동하지 않았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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