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백선엽 친일' 문구 삭제됐다…보훈부 "불순 의도 의심"
고(故) 백선엽 장군의 안장 기록에 표기된 ‘친일’ 문구가 삭제됐다. 해당 문구가 국립묘지법에 위배되고, 사자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는 유족 측의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국가보훈부는 24일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에 게재된 백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이날부터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진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비고에 ‘무공훈장(태극) 수여자’라는 사실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년)’이라는 문구가 기재돼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활동한 반민규명위의 판단을 근거로 안장식 다음날인 2020년 7월 16일부터 당시 보훈처는 해당 문구를 기재하기 시작했다.
보훈부에 따르면 해당 문구 삭제 검토는 지난 2월 백 장군 유족이 탄원서를 제출하며 시작됐다. 유족은 해당 문구 기재가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에 위배되고, 사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문구 삭제를 요청했다.
검토 결과 보훈부는 해당 문구 기재가 법적 근거 없이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보훈부는 우선 안장자격이 된 공적 외의 문구를 기재하는 건 국립묘지법이 규정한 국립묘지 설치의 목적에 부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립묘지법 1조는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사람을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장성급 장교’로서 백 장군은 국립묘지법에 따라 적법하게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며 “공적과 관계 없는 문구가 기재된 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명예훼손을 주장한 유족의 요구도 수용됐다. 안장자의 명예를 선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안장자 검색 및 온라인 참배’란이 오히려 안장자의 명예를 훼손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안장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 요소였다고 보훈부는 밝혔다. 다른 안장자에 대해선 범죄경력 등 안장 자격과 관계없는 정보를 기재하지 않으면서 특정인에 대한 특정 사실만 선별해 기재한 건 문제라는 의미다. 보훈부 관계자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백 장군을 욕보이고 명예를 깎아내리려 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밖에 보훈부는 문재인 정부가 친일 문구를 명시할 당시 유족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등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했다고 봤다. 고인뿐 아니라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 소지도 있지만, 관련해 면밀한 법적 검토를 거치지 못했다는 점도 절차적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백 장군의 친일 행적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유족 측 주장에 동의한 바 있다.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객관적 자료가 나오지 않았다”는 게 박 장관의 주장이다. 박 장관은 지난 18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도 “백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한 반민규명위 회의록을 보면 친일파란 근거가 없어 ‘자료 보완’ 의견이 달려 있다”며 “친일의 근거는 백 장군이 스스로 쓴 책에 나온 대목이 전부고, 이마저도 백 장군이 부인하면서 근거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백 장군을 친일파로 보는 건 반민규명위 내에서 다수로 밀어붙인 내용일 뿐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다.
박 장관은 “백 장군은 6·25전쟁을 극복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 받은 최고 영웅”이라며 “앞으로도 법적 근거 없이 국립묘지 설치 목적에 맞지 않는 사항을 임의로 기재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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