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시위대' 등장한 이스라엘…美바이든 “네타냐후, 서두르지마” 경고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립 정권이 사법부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개헌을 밀어붙이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지도부는 서두르지 마라”고 재차 경고했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매체에 보낸 성명에서 “지금 이스라엘 지도부의 사법 개편은 더욱 분열적으로 돼 가고 있다”면서 “현재 이스라엘이 직면한 여러 위협과 도전을 고려할 때, 지도층이 사법 개편을 서두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합의점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7일 네타냐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도 이런 우려를 전달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에서 민주적 가치는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언제나 있어 왔고, 남아 있어야만 한다”며 뼈 있는 경고를 날렸다. 이튿날 백악관을 찾은 이스라엘의 대외 수반 아이작 헤이조르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철통 같다”고 하는 등 주로 양국 간 전통적인 우의와 안보 공조를 부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1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을 백악관으로 불러 이스라엘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는데, 이 자리에선 정부 공식 자료보다 수위가 센 발언들이 이어졌다. “네타냐후 연정이 국가적 합의라는 표면적인 형식조차 없이, 이스라엘의 행정부에 대한 법원의 감독 권한을 급격히 축소시키는 사법 개편을 향해 돌진하는 것을 중단하길 바란다”면서다. 프리드먼은 “바이든은 모든 이스라엘인에게 보다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 싶어 나를 불렀고, 이 문제에 관해 전례 없는 입장을 밝혔다”고 부연했다.
프리드먼은 바이든이 한 발언을 직접 인용하진 않았지만, 칼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포함됐다. “바이든이 네타냐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했다. 지금 사법 개편을 그만두라는 것, 그가 이것을 계속 강행하면 이스라엘과 미국 민주주의의 관계는 깨질 것이고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올초부터 네타냐후 연립 정부·여당은 사법 개편에 강경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오는 24일과 25일 이스라엘 의회 크네세트에선 사법 개편의 첫 번째 신호탄이 될 법안 통과를 위한 2·3차 독회가 예정돼 있다. 이번 법안은 대법원이 총리를 포함한 행정부 각료의 임명과 행정상 결정 등에 대해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도록 한 권한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스라엘 국민 대다수는 “네타냐후 정권의 사법 개편은 사법 장악”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NYT는 23일까지 수도 텔아비브에서 의회가 있는 예루살렘까지 4박 5일간 약 2만 명이 가담한 행진 시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예루살렘의 크네세트 주변에는 이날까지 반대 시위를 벌이기 위해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이스라엘 최대 노동자 단체인 히스타드루트는 총파업을 예고했고, 예비군들도 1만 명 넘게 복무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예루살렘은 ‘폭풍 전야’의 분위기다.
성문 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은 14개의 기본법이 사실상 헌법 역할을 한다. 대법원이 1990년대에 판례로 이를 확인했다. 지난해 출범한 네타냐후 6기 정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 성향을 띠는 정부로 꼽힌다. 극우 인사들이 주축이 돼 유대교 정통파와 세속주의 간 균형을 맞춰왔던 대법원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구성하겠다는 심산이다. 일각에선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는 네타냐후 총리가 법원 길들이기 차원에서 사법 개편에 동참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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