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에서 차 한 잔

이민화 2023. 7. 2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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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단편영화 <백차와 우롱차> 를 만들며

[이민화]

"간호사로 1년 8개월 동안 일했고, 지금은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이렇게 나를 소개하면 대부분은 신기해하거나 대단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한동안 꿈을 이루기 위해 직업을 바꾼 것처럼 스스로를 포장했다. 하지만 간호사로 일했던 때를 되돌아보면 언제나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간호사로 일하며 많은 일을 겪었다. 15만 원이었던 첫 월급, 의사와 환자들에게 당한 성추행, 직장 내 괴롭힘의 목격, 간호사 사직으로 인한 2교대 근무, 환자의 폭언, 간호사실에 과도를 들고 난입한 보호자를 막아야 했던 일… 많은 일을 겪을수록 큰 자극에는 무뎌졌고, 사소한 일에는 분노 조절이 어려워졌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얼마 되지 않아 우울감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나는 병원의 통유리만 보면 깨부수고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고, 퇴근길에는 멍하니 차도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망한 환자를 보며 '아, 할 일도 많은데 하필 왜 내 근무 때 죽었지?'라고 생각하다, 갑자기 그 환자의 얼굴 위로 아빠의 얼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몇 년 후 나는 웹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렇게 전직을 한 지 12년이 지난 2018년, 서울아산병원의 신규 간호사였던 박선욱 간호사가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접했다. 한 번도 집회에 참여해본 적 없는 나는 <나도 너였다>라는 이름의 고(故) 박선욱 간호사 추모 집회에 참석했고 얼마 되지 않아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활동가로 일하게 되었다.
 
 다른 일터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서로가 더 함께할 수 있기를. 영화 <백차와 우롱차> 중에서.
ⓒ 이민화
 
열악한 병원 시스템 속 닮아가는 간호사들

병원에 갓 입사한 신규 간호사들은 짧은 기간 교육 후에 한 명의 경력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는 1:1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우리나라 간호사들은 다른 나라보다 교육 기간도 짧고, 담당 환자 수도 2~3배 많다). 경력 간호사가 짬을 내 교육하기에 환자에게 응급 상황이 생기기라도 하면 신규 간호사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그렇게 부족한 교육이 끝나고 나면 신규 간호사는 '독립'해야 한다.

신규 간호사는 '1인분'을 해야 할 위치가 되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환자를 살리려고 간호사가 되었지만, 무능한 자신 앞에서 환자가 잘못될까 봐 무서워지고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취업률 100%'라는 말만 믿고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어 병원을 그만둬 버리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아 매일 죽고 싶은 마음으로 이런 생각들을 한다.

"나도 빨리 '1인분'을 하고 싶어.", "난 왜 이렇게 멍청하지?", "출근길에 차에 치이고 싶다."

각자 살아온 인생도 성격도 너무 다르지만, 열악한 병원 시스템을 거치고 나면 모두가 의기소침해지고 우울해지고 무심해진다. 그들은 과거의 나와 비슷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간호사들의 고통이 녹아있는 통계 자료를 볼 때도, 자포자기 농담을 들을 때도, 매번 돌아가며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활동가의 일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 고립되어 있던 간호사들이 어느 날 연결되어 서로 힘이 되어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조그만 연대를 시작으로 많은 것들을 바꿔낸 간호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그 처음을 기록하고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찻자리를 통한 위로와 연대

2022년 초 우연히 단편 영화 제작 수업을 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간호사가 주인공인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 잘 아는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기도 했다.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간호사의 모습은 현실과 다른 경우가 많았고,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도 간호사들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만든 영화들은 목적이 어떻든 상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시나리오를 쓰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간호사들에게 상처가 될 장면들은 넣지 않기, 간호사 자문을 통해 간호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 만들기'였다.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중환자실에서 일한 지 1년이 되어가는 간호사 '은재'는 독립 직후 있었던 많은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세상과 단절되고 싶은 마음으로 땅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신규 간호사 '지혜'를 보며 '은재'는 자신의 신규 시절을 떠올린다.

이런 이야기는 많은 간호사의 평범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지나온 경력 간호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희망을 떠올릴 수 있다. 어쨌거나 힘든 시기를 버티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간호사 중 일부는 나처럼 병원을 떠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죽음을 택했다. 그리고 '은재'는 여전히 병원에서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렇게 살아남은 '은재'와 같은 존재들이 어쩌면 이 힘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백차와 우롱차>는 찻집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지만, '은재'가 '지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동료를 이해하고 손을 내미는 과정을 넘어 노동자들의 연대가 시작되면, 그때는 정말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지쳐버린 경력 간호사에게 또 하나의 의무를 지어주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동료를 이해해나가는 그 과정이 신규 간호사였던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토닥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나에게도 간호사로 일했던 시절을 토닥이는 시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짧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었지만 아주 많은 스태프가 필요했다. 많은 사람의 애정과 노력이 들어갈수록 감사함과 미안함, 책임감은 더욱 커졌다. 모든 과정을 거치고 나니 이 영화가 완성되어 정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간호사들, 그리고 간호사를 친구나 가족으로 둔 사람들과 이 영화를 같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 그리고 다른 일터에서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많은 간호사들이, 서로에게 연대하고 힘이 되는 장면들을 더 많이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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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민화 님은 유휴 간호사이자 웹디자이너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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