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3법’ 3년…제약바이오 업계, ‘원유’ 데이터 활용 제약 여전
그러나 여전히 기관들 데이터 제공 꺼려
정부도 계속 고심 중
2017년 설립된 유전체 분석 기업 아이크로진은 최근 유전체 분석 기술로 만성질환을 정확하게 예측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병의원을 통해 간단히 검체 채취 후 회사에 분석을 의뢰하면, 4~6주 안에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건강정보를 제공한다.
A 제약사는 고혈압·고지혈증 등 만성질환 치료제의 시장조사를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시장경향조사’ 데이터를 청구했다. 하지만 경쟁사 치료제의 매출액 등을 담은 데이터는 받지 못했다. A사 관계자는 “(이 때문에) 많은 제약사들은 공공 데이터보다 수십배 비싼 민간 데이터 서비스 기업이 제공하는 솔루션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데이터 3법’ 시행 3년…바이오헬스 산업계 온도차 극명
데이터는 4차 산업혁명의 ‘원유’로 불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오헬스 등 신(新)산업에도 데이터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정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이 시행 3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활용 측면에서 온도차가 극명하다. 데이터 3법은 가명 정보의 경우 정보 주체 없이도 과학적·산업적 연구에 활용할 수 있게 한 법이다. 제약업계에서는 건강보험 청구자료, 건강검진, 병원 진료기록, 처방전, 의약품 매출액 등을 총망라하는 보건의료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보건의료 데이터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제약사가 신약을 개발할 때 데이터를 통해 기존 의약품 부작용 분석이 가능해 더 좋은 의약품을 내놓을 수 있다. 또 희귀질환 치료제 임상 과정에서 보건의료 데이터가 환자 대조군을 대체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의료 인공지능(AI), 의료기기 개발에도 보건의료 데이터가 쓰인다. 결과적으로 미래의 국민 의료비 절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제약업계에서는 “보건의료 데이터를 현장에 적용하기 어렵게 하는 장벽이 지금도 너무 많다”고 말한다. 보건의료 데이터는 정보 제공 주체가 크게 공공기관(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질병관리청 등)과 민간기관(병원)으로 나뉜다. 이들은 산업계가 보건의료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양질의 데이터를 주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의약품 개발에 중요한 임상시험 데이터는 개별 병원들이 상당수 갖고 있는데, 데이터가 산업계에 쓰이는 걸 꺼린다. 데이터 제공을 위해 투입되는 병원 인력 등에 따른 비용과 환자 소송 우려 대비 얻는 기대효과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다. 또 임상 데이터의 형태도 병원마다 제각각이어서 표준화된 모델 없이는 산업계에서 데이터 활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보건의료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9개 기관의 보건의료 데이터를 제공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통합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지만, 데이터를 받기까지 시일이 오래 걸린다. 제약사가 데이터 이용 신청을 하면, 통합사전검토→연구평가위원회 및 제공기관 심의→데이터 결합 및 추가 비식별처리→반출 적정성 심의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끝내는 데 9개월이 걸린다는 말이 나온다. B 제약사 관계자는 “제약 환경은 급변하는데 시장조사를 위한 데이터 확보에만 1년 가까이 걸린다. 수많은 심의과정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바이오헬스 산업=제2반도체…데이터 산업계 활용 방안 고심
정부도 보건의료 데이터가 산업계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정부는 지난 2월 바이오헬스 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육성하기 위한 구상으로 갖가지 장벽을 해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데이터 등을 활용해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낮춰 한국이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세계 6대 강국 반열에 오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먼저 100만명 규모의 보건의료 데이터 구축을 목표로 한 국가 통합 바이오 빅데이터 사업을 내년부터 추진하고, 데이터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으로 관련 가이드라인을 연내 개정하기로 했다. 또 앞으로는 공공기관이 보건의료 데이터를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업 등에 제공해야 할 수 있다. 공공기관 평가 기준에 가명정보 제공 관련 항목이 신설되면서다.
당장엔 보건의료 데이터 민간 제공자인 병원과 산업계를 연결할 수 있는 중개플랫폼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병원이 어떤 종류의 보건의료 데이터를 갖고 있는지, 데이터 형태가 산업계에 적용될 수 있는지 데이터 이용자로서는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해 보건의료데이터가 산업계에 활발하게 쓰여야 한다”며 “산업계 활용에 걸림돌이 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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