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좋은 노동시간을 위한 여성노동자 투쟁 발자취

조건희 2023. 7. 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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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건강 ON] 여성노동자 투쟁으로 살펴본 노동자의 노동시간 통제권 확보

[조건희]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 조합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로 서울파이낸스센터앞에서 '저임금 여성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여성 노동은 싸구려가 아니다"며 차별적인 저임금 해소를 요구했다.
ⓒ 최윤석
 
오랜 시간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이는 노동시간의 절대적인 길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야근·특근, 불규칙 노동, 이동·준비시간의 노동시간 산정 문제, 노동이라 인정받지 못하거나 저평가되는 노동의 문제, 일과 돌봄의 이중 부담 등 다양한 측면의 노동시간을 발굴하고 투쟁해왔다. 여성노동자들의 현장 투쟁 사례들을 돌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기려 한다. - 기자 말

저임금·장시간 노동 굴레에 맞선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굴레는 시대를 가로지르며, 특히 여성노동자들을 압박했다. 여성노동자들은 민주노조 설립·사수 투쟁으로 문제를 드러냈고, 임금 인상과 연장 노동 폐지, 떼인 수당 지급 등을 쟁취했다.

1969년 삼익직물 분회는 생리 유급휴가 실시와 함께 연장노동 수당 지급을 합의로 만들어냈다. 1974년 반도상사 노동자들은 관리자의 폭언·폭행, 12시간 교대근무·철야 작업에 맞서 가해자 처벌과 강제 잔업 철폐 등을 내걸며 투쟁했다. 투쟁 당시 요구를 회사는 대부분 수용했으나, 이후 회사는 어용노조를 통한 노조 활동 방해에 나섰다. 여성노동자들은 굴하지 않고 꾸준히 투쟁을 이어갔다.1) 

해태제과 노동자들은 18시간 노동 철폐 투쟁, 30분 휴식 시간 서명운동, 도급제 폐지 투쟁을 거쳐 1979년 8시간 노동제 쟁취 투쟁을 진행했다. 노조는 오전 8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하는 '8시간 노동 후 퇴근 행동'을 펼쳤다. "불황이 끝나면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자"는 회사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비스킷 생산부를 시작으로 여러 부서로 퍼졌다.

그러자 사측은 대의원과 노동자들에게 온갖 폭력을 자행했다. 퇴근하려는 여성노동자들을 가로막거나 공장 밖에 철조망을 둘러치고, 대의원의 남성 가족들을 동원해 사표를 쓰게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태제과 노동자들의 8시간 노동 투쟁은 9개월가량 지속되며 불매운동과 해고자 복직 투쟁으로 이어져, 8시간 노동 및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투쟁에 힘입어 1980년에는 해태제과를 비롯한 전 식료품 업계에서 8시간 노동제가 적용되기도 했다.

'노동자'가 아니라 여겨지는 노동자의 노동시간 드러내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정 긴축과 노동 유연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정리해고와 파견제가 도입됐다. 그렇게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직 노동자 다수는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확대되는 유연화의 흐름은 고용 형태 다양화라는 명목으로,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등의 호칭으로 드러났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장시간 노동·실적압박 등으로 인해 노동자가 세상을 떠나도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 산재 불인정 사유로 작용했다. 2004년 구몬학습에서는 이정연 교사가 관리자의 폭언·영업 강요 등 심각한 업무적 스트레스, 휴식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노조는 교사에게 가해진 부당업무에 대한 사과 및 실적 강요 폐지,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등을 내걸며 투쟁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 신청을 계속 기각했다. 농성투쟁 등을 거쳐 2007년에서야 구몬이 유족에게 사과하며 교섭이 타결됐다.

한편, 가사 및 돌봄노동은 오랜 시간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노동'이라 인정받지 못한 대표적인 노동이다. "대량 정리해고의 물결에서 우선적으로 해고된 여성들에게도 가사서비스업은 그나마 남지 않는 몇 개의 선택지"2) 인 상황에서, 여성단체와 노동자들은 돌봄 노동 저평가와 노동자 불인정에 맞서 2004년 전국가정관리사협회를 설립했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휴식 시간 없이 엄청난 강도의 노동에 내몰리는 상황,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등을 폭로하며 투쟁해왔다.

여성노동자 투쟁으로 좋은 노동 시간을 드러내기

2000년대 초반 우후죽순 생긴 대형마트는 24시간 365일 영업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마트 노동자들은 영업시간 제한과 주 1회 폐점을 내걸며 파자마 입고 쇼핑하기 등의 투쟁으로 휴일에 쉴 권리, 밤에 잘 권리 등을 의제화시켰다.

그 결과 2011년,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 규제와 월 2회 의무휴업을 지자체별 조례로 규정하는 성과를 쟁취했다. 마트 노동자들은 현재 대구와 청주 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무휴업일을 주말에서 평일로 바꾸려는 시도에 맞서 주말 의무휴업 적용을 통한 쉴 권리 확보, 의무휴업 대상을 백화점 등 모든 매장으로의 확대를 내걸며 싸우고 있다.

한편, 2017년 마트 자본은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하는 과정에서 추가 인력을 고용하지 않고,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시간이 아니라 노동 준비시간으로 분류되는 시간(대기, 마감 시간 등)을 단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마트 노동자들은 이로 인한 노동강도의 증가, 공짜 노동의 발생 등을 폭로하며 투쟁하기도 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시급 400원 인상, (중략)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투쟁으로 거리에 나서야 하는가. 유연근무는 자본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노동자에게만 일자리가 주어지고,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여성을 일자리에서 쫓아낼 것이다. (중략) 역대 최대규모로 노동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가 여성을 중심으로 확대된 지금, 여성노동자의 일자리는 어느 때보다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올해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서 발표된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 투쟁결의문이다. 150만 명을 훌쩍 넘긴 초단시간 노동자, 특히 여성에게 부과되는 무급노동의 시간3), 만연한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굴레 등 여전히 바꿔야 할 문제가 많다.

여성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여성에게 특히 과중하게 부여된 노동시간의 다양한 측면을 발굴하고 바꿔왔다. 모두에게 좋은 노동시간을 고민하기 위해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와 관점을 부각하며 함께 투쟁하는 게 더욱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참고자료)

1)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1974년 1979년] 반도상사, 투쟁 속에 스스로의 숨을 끊다>
2) "이주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방안" 국회토론회. 2023.06.16.
3) 2022년 기준 한국 남성의 무급 일일노동시간은 49분, 여성은 21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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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건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7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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