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와 호리병... 비평준화가 만든 '기이한' 제천의 학교 지형도

충북인뉴스 최현주 2023. 7. 2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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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 고교 대입 실적 차이는 미미... "배추 장사 해도 제고 나와야" 뿌리깊은 명문고 인식 문제

[충북인뉴스 최현주]

ⓒ 충북인뉴스
 
충북에서 유일한 비평준화 지역인 제천의 고등학교들은 타 지역과 달리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현재 제천에는 일반계 고등학교 네 개가 있는데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항아리와 호리병'이다.

제천고등학교와 제천여자고등학교에는 중학교 내신 성적 중상위권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고, 제천제일고등학교와 세명고등학교에는 일부 상위권과 중하위권 학생들이 몰려 있다.

제천고와 제천여고는 항아리 모양처럼 중상위권 층이 두터운 반면, 제일고와 세명고는 호리병 모양처럼 상위권과 하위권 층이 두텁다는 얘기다. 상위권 학생들이 제일고와 세명고에 진학하는 비율이 점점 많아지고는 있지만, 항아리와 호리병은 모양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교사 A씨는 "최근 상위권 학생들이 제일고와 세명고에 많이 진학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공부에 자신이 있는 아이들은 제천고나 제천여고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전교 1등도 내신 등급 1.3~1.4

이에 따라 학교마다 겪는 어려움의 양상도,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다르다.

우선 제천고와 제천여고 학생들은 치열한 내신 성적 경쟁으로 유명하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학교의 커트라인은 중학교 내신 성적 300점 만점 기준으로 260점대다. 270~280점대 학생들이 상당수이고, 성적이 비슷하다보니 학생들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는 것.

교사 B씨는 "등급을 나눠 먹는 식이니까 전교 1등이어도 내신이 1.3~1.4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국사 덕후, 수학 덕후 등 특정 분야에 매우 뛰어난 학생들이 한두 명씩 꼭 있다. 그렇다보니 대입에서 수능 최저는 맞추지만 학교 내신이 낮아 실력 대비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학업중단 사례도 늘고 있다. 제천여고에 따르면 2020년 학업중단 학생은 4명이었고, 2021년에는 10명이다. 학업을 중단한 14명 중 10명이 '학업관련' 때문이라고 답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심화되고 갈등 및 부적응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또 제천고와 제천여고에서는 정시를 위한 수능 대비 프로그램도 별도로 운영되고 있으며 특히 제천고에서는 타 학교에 비해 재수생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제일고와 세명고 상황은 다르다. 중상위권 학생들이 제천고와 제천여고로 빠져나간 탓에 중하위권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진학을 돕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95%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제일고와 세명고에서는 우수한 내신 성적(등급) 확보를 위해 진학한 학생들이 1·2등급을 독차지하고 있고 이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정시보다는 수시에 집중하고 있다.

교사 C씨는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특별 관리를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네 개 학교 대입 실적 큰 차이 없다"

학교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네 개 학교의 대학진학 실적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부 차이는 있지만 소위 '좋은 대학'이라 불리는 16개 대학 진학 성적은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교사 D씨는 "네 개 고등학교 진학성적은 비슷하다. 일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크지 않다. 네 학교 평균 전교에서 22등 정도면 16개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라며 "어느 학교는 30등까지 가능하고 어느 학교는 15등까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교학점제 등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거의 대동소이 하다"고 전했다.

실제 제일고와 세명고 교사들은 "(우리 학교가)제천고와 제천여고 대입 실적에 비해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제일고 성하익 교사는 "제일고의 진학률은 95%이상이다. 제일고 하면 아직도 과거 농고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수도권 학교에도 많이 가는 편이다"라고 강조했다.

세명고 이창희 교사는 "비평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끼리 모아놓아야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섞어놓아야 더 효과가 있다. 지금 대입제도에서는 평준화가 대학가기 훨씬 좋다"라고 말했다 

중학생들이 말하는 고교평준화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하는 중학생들의 의견은 어떨까? 기자가 만난 상당수 학생은 학교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은 잘못됐고 기회가 공평해야 한다고 답했다.

제천중 2학년 학생 3명은 공통적으로 "평준화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그냥 들어온 것처럼 고등학교도 공부에 상관없이 그냥 들어가야 한다. 일단 들어가서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면 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제천동중 3학년 학생 3명도 "고등학교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은데 다 똑같은 학교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반면 하향평준화를 막기 위해 성적에 따라 분리,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중학생의 의견도 있었다.

E학생은 "중학교에서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못하는 아이들이 이미 구분되고 있다. 비평준화를 계속 해서 잘하는 친구들은 잘하는 학교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천고 동문회와 일부 학부모들의 주장처럼 하향평준화와 면학분위기 저하를 우려하는 것이다.

대입 실적도 비슷하고 치열한 내신경쟁으로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제천고 동문회, 일부 학부모는 여전히 비평준화를 고수하고 있다.

제천고 동문회 관계자는 "평준화가 도입되면 다 같이 피해를 보게 된다. 중간 수준의 교육이 이뤄지면 개인별 교육이 어렵게 되고 하향평준화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또 "판검사도 필요하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각자 능력과 재능에 따라서 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비평준화 고수에 대해 일각에서는 제천지역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학벌주의 인식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천에서 20여 년 동안 교사로 재직했다는 F씨는 "제천에서는 배추장사를 해도 제고를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님 세대 중에 제천고를 못 나와서 피해의식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교사 G씨도 "구멍가게를 가도 제천고 교복을 입고 있으면 칭찬과 응원을 해주는 반면 다른 학교 교복을 입고 있으면 차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이 뿌리 깊은 인식은 정말 상상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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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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