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영웅]①'목숨 건 귀환' 국군포로…'급' 따진 국방부

양낙규 2023. 7. 2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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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자 80명 중 70명에 최하위 3등급 처리
"北 책임 희석시키는 시대착오적 자해행위"
성일종 "모두 몸바쳐 싸워…다시 검토해야"

편집자주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며 한반도에서 포성이 멈췄다. 그러나 수만 명의 국군포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북한의 탄광으로 내몰렸고, 전장으로 뛰어든 젊은 용사들은 조국의 외면 속 '잊혀진 영웅'이 됐다. 70년이 흘러 북한에 억류된 생존자는 90세를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마지막 기회'로 평가되는 이유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국군포로의 희생을 외면한 제도를 살펴보고, 개선책을 모색한다.

정부가 북한에서 목숨을 걸고 자력 탈출한 국군포로에 대해 등급을 나누고, 10명 중 9명에 해당하는 귀환용사에 '최저 등급'을 매긴 것으로 드러났다. 적국에 억류된 포로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현실적 잣대로, 조국을 위해 전쟁터로 나선 군인들의 희생을 깎아내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군포로 그래픽 [이미지출처=연합뉴스]

24일 아시아경제가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귀환 국군포로(등록포로)를 품위 유지, 억류국 협조 여부 등 기준에 따라 1~3등급으로 나눠 관리하고 있다. 살아서 돌아온 국군포로는 80명, 이 가운데 70명(87.5%)에 대해 최하위 등급인 3등급을 매겼다. 1등급으로 예우하는 국군포로는 단 1명도 없다. 관련법이 제정되기 전인 1994년 돌아온 최초의 귀환 국군포로 고(故) 조창호 중위는 '무등급' 처리됐고, 나머지 9명은 2등급으로 산정됐다.

'국군포로 등급제'는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9년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억류기간 행적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급하기 위해서다. 현재 이 법은 2007년 제정된 국군포로의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률로 대체됐지만, 참전용사에 대해 등급을 매기는 방식은 그대로다. '월 지원금' 기준 1등급은 중위소득의 100분의 43의 10배, 2등급은 7배, 3등급은 6배에 해당하는 금액에서 억류기간 행적에 따라 차이를 둔다.

국방부가 내세운 1등급 기준은 이렇다. ▲투철한 희생정신을 발휘해 다른 포로의 귀감이 되거나 ▲국군포로로서 품위를 유지하고 본분을 지킨 경우 ▲억류국(북한)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노역을 비롯한 피해를 당한 사람 등이다. 대부분의 국군포로에게 매겨진 3등급 기준은 ▲억류국 공공조직에 가입해 억류국 정책수행에 협조했거나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강압에 의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한 사실이 있는 사람 등의 경우다.

하지만 등급을 매기는 행위 자체로 적절치 않은 데다, 적국에 억류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잣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1등급 요건이 되는 '투철한 희생정신' 등은 입증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다. 특히 국군포로는 비인간적 박해를 받으며 평생 탄광에서 노역한다는 사실이 익히 알려졌는데도, 이들 대부분이 '간접적 적대행위'를 한 3등급으로 분류됐다. 북한의 행태를 고려하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협조도 하지 말라는 것은 사실상 저항하다 목숨을 바치라는 요구인 셈이다.

평생 탄광 내몰린 국군포로…'죄인' 취급한 국방부

한국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이 국군포로를 이송하는 장면. [이미지출처=책 '그들이 본 한국전쟁1']

포로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경향은 일본 군국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거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상황에서의 항복이나 포로가 되는 사실 자체를 '대역죄'로 여겼다. 작전에 실패한 장교에게 '할복자살'을 명했고, 포로가 된 뒤 살아서 귀환하는 사람은 매국노로 취급했다. 승리하면 영웅, 죽으면 호국영령, 전투에서 이기지도 못했는데 살아 돌아오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실제로 군국주의 시절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서구 사회는 포로 출신에 대해서도 최대한의 예우를 갖춘다. '보훈'을 국가적 가치로 여기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베트남전 당시 포로가 돼 선전용으로 이용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1936~2018)은 훗날 대선까지 출마한다.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한쪽 다리를 절던 그는 '조국을 위해 피해를 감수한 영웅'으로 여겨졌다. 2000년 당내 경선에서 조지 W. 부시, 2008년 대선에선 버락 오바마에게 패했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라 불리며 미국 정계의 거목으로 활동했다.

신희석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법률분석관은 "등급제는 70년간 단 1명의 국군포로도 송환시키지 못한 정부가 그 책임을 국군포로에게 전가하는 처사이자,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자해 행위"라며 "민간인 납북 피해자에 대해서는 억류기간 행적을 따져 급을 나누지 않는데, 오로지 군만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軍, 행적 따라 차등대우…"나라 위해 희생한 용사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정부는 북한에 억류됐을 당시 행적에 따라 예우도 달리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포로 신분으로 북한에 맞선 군인과 살기 위해 적국에 협조한 사람의 대우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취지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군포로의 억류기간 중 행적을 확인하고 그 희생과 공적에 상응하는 보상 및 예우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국민 정서에도 부합한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반면,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포로로 붙잡혔어도 국가를 위해 참전한 사실은 같다는 점을 짚으면서 "국방부는 등급제를 비롯한 국군포로의 처우에 대해 전향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모든 국군포로는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웠던 참전용사들"이라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들에 대한 국가의 보상과 예우는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사단법인 물망초·국군포로가족회·전환기정의워킹그룹 등 국군포로 송환을 지원해온 인권단체들은 오는 27일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생존자를 만나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식 때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국군포로 이규일·김성태·유영복 어르신을 초대한 바 있다. 이규일 어르신은 지난해 8월 별세했다.

양낙규 군사전문기자 if@asiae.co.kr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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