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머피의 '헌티드 맨션' 진부한 각본 속 흥미로운 요소들

이학후 2023. 7. 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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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헌티드 맨션> (2003)

넷플릭스, 왓챠,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티빙, 웨이브, 애플TV플러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범람하는 시대입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볼까 막막한 분들을 위해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추천하는 길잡이가 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이학후 기자]

▲ <헌티드 맨션> 영화 포스터
ⓒ 월트 디즈니 픽처스
 
어느 늦은 밤, 부동산 중개업자인 짐 에버스(에디 머피 분)와 아내 사라 에버스(마샤 톰슨 분)는 저택을 팔겠다는 전화를 받는다. 고급 동네에 위치한 저택을 매매하면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한 짐은 사라, 딸 메건(에이리 데이비스 분), 아들 마이클(머크 존 제프리스 분)과 함께 가족 여행을 가는 길에 그곳에 들른다. 

짐의 가족이 저택에 도착하자 집사 램즐리(테렌스 스탠프 분), 하인 에즈라(윌리스 숀 분)와 엠마(디나 워터스 분), 그리고 주인 그레이시(나다니엘 파커 분)가 맞이한다. 바로 떠나려 했던 짐의 가족은 폭풍우가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저택에 하룻밤 묵게 된다. 그날 밤, 짐의 가족 주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그레이시가 사라를 오래 전 죽은 연인으로 믿고 저택에 일부러 불러들였다는 걸 알게 되고 수정구슬에 담긴 마담 레오타(제니퍼 틸리 분)의 도움을 받아 그레이시의 계획을 저지하러 나선다.

1980~1990년대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이끌던 CEO 마이클 아이스너는 <인어공주>(1989)로 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잇따른 성공과 터치스톤 픽쳐스가 제작한 실사 영화들의 흥행으로 '디즈니 르네상스'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 101 달마시안 >(1996) 같은 애니메이션 히트작의 실사화와 저렴하게 제작한 애니메이션 속편 시리즈 등 디즈니 제국의 다양한 상업화 전략을 꾀했다. 

성공한 영화를 바탕으로 한 어트랙션(놀이기구와 놀이시설)을 만드는 일반적인 발상을 뒤집어 디즈니랜드의 인기 어트랙션을 소재로 삼았던 영화 <컨트리 베어스>(2002),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2003), <헌티드 맨션>(2003)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 <헌티드 맨션>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픽처스
 
현재 디즈니플러스에서 서비스 중인 영화 <헌티드 맨션>은 디즈니랜드에 위치한 다크라이드 어트랙션으로 1969년에 개장한 동명의 어트랙션(유튜브에서 간접 체험이 가능하다)에 바탕을 둔다. 각본은 <엘프>(2003), <스파이더위크가의 비밀>(2008)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데이빗 베렌바움이 작업했다. 메가폰은 <라이온킹>(1994), <스튜어트 리틀>(2000)로 유명한 롭 민코프 감독이 잡았다.

<헌티드 맨션>의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는 저택을 둘러싼 과거의 사연을 담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무도회장에 있는 동안에 엘리자베스가 독약을 마시며 목숨을 끊고 그 사실을 안 그녀의 연인 그레이시도 슬픔에 빠져 목을 매고 자살한다. 마치 <오페라의 유령>을 떠올리게 하는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는 내레이션이나 텍스트 없이 오로지 시각적으로 저택의 어두운 과거를 보여주어 근사하다. 그러나 이후 전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창의성이 떨어진다. 소설 <드라큘라>의 고딕풍 저택에 초대받은 사람이 갇힌다는 설정과 영화 <미이라>(1999)의 금지된 사랑으로 괴로워하며 자살한 여인, 그리고 훗날 그녀를 부활시키려는 남자의 계획이란 전개를 게으르게 혼합했다. 설명도 부족하다. 저택의 사는 유령들에 대해선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나 주위 지역에 나타나는 유령들, 살아 있는 흉상, 수정구슬 속 여인에 대해선 어떤 근거도 내놓질 않는다. 그 외에도 지적할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영화의 처음에 나오는 대사 "오너라. 어리석은 인간들아"를 인용하자면 '어리석은 각본'일 따름이다.

진부한 각본 속에서도 흥미로운 구석은 존재한다. 바로 인종 차별에 대한 언급이다. 영화에선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집사 램즐리가 백인 남성 그레이시와 흑인 여성 엘리자베스의 결혼을 막은 건 분명 '인종 문제' 때문인 게 명백하다. 실제로 당시 미국의 대부분 주(특히 영화의 배경은 미국 남부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주의 도시 뉴올리언스다)에선 백인과 흑인의 결혼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과거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흑백의 사랑이 현재(2003년)에 이루어진다는 전개는 인종 차별에 대한 디즈니식의 가벼운 코멘트처럼 느껴진다.
 
▲ <헌티드 맨션>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픽처스
<헌티드 맨션>의 진정한 스타는 '세트'와 '시각효과'다. <헌티드 맨션>엔 <클루리스>(1995) 등 1990년대 패션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의상 디자이너 모나 메이, <시카고>(2002), <게이샤의 추억>(2005)으로 아카데미 미술상을 수상한 존 마이어, 특수효과 전문가이자 특수분장계의 전설로 불리는 릭 베이커,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의 촬영으로 명성이 높은 레미 에드퍼러신 등 쟁쟁한 스태프가 대거 참여했다. 

이들은 어트랙션 '헌티드 맨션'에서 영감을 받아 유령이 출몰하는 고딕 양식의 저택, 묘지의 으스스한 분위기, 날아다니는 악기, 노래하는 대리석 흉상들, 움직이는 초상화, 매혹적인 수정구슬 등 다양한 어트랙션 구성 요소들을 화면 가득히 채운다.

<헌티드 맨션>의 주연 배우인 에디 머피는 < 48시간 >(1982)을 시작으로 <대역전>(1983), <비버리 힐스 캅>(1984), <골든 차일드>(1986), <구혼작전>(1988), <너티 프로세서>(1996) 등을 흥행시키며 흑인 배우 역사상 처음으로 출연료 1000만 달러 이상을 받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며 에디 머피는 침체기를 걷는다. <헌티드 맨션>도 그때 나왔던 작품들 중 하나다. 그는 가족 코미디로서 즐거움을 주려고 노력하나 많은 농담은 이전 작품의 것을 재활용한 느낌이 강하고 캐릭터는 단조롭기만 하다.

도리어 눈길을 끄는 건 집사 램즐리 역할로 분한 배우 테렌스 스탬프다. <슈퍼맨>(1978)과 <슈퍼맨 2>(1980)에서 슈퍼맨에 맞서는 악당 조드 사령관으로 친숙한 그는 변덕스럽고 불길한 램즐리 역으로 관객의 눈을 훔친다.
 
▲ <헌티드 맨션> 영화의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픽처스
 
제작비 9000만 달러를 들인 <헌티드 맨션>은 전 세계에서 1억 8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아쉬운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어트랙션을 기반으로 한 <캐리비안의 해적>에 비해 공포, 코미디, 가족이 제대로 섞이지 못했다는 평가(현재 로튼토마토 수치는 무려 19%에 불과하다)를 받으면서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디즈니 어트랙션의 영화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에 디즈니의 어트랙션 또는 테마파크의 영화화인 <투모로우랜드>(2014), <정글 크루즈>(2021)가 나왔을 정도다.

<헌티드 맨션>은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못 만든 영화 또한 아니다. 한 해 만나는 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갖춘 영화일 뿐이다. 어트랙션의 재미를 영화에 잘 옮겼고 공포, 코미디, 로맨스, 미스터리가 '전체관람가' 등급 안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 청소년이나 어른들이 보기엔 지루할진 몰라도 아이들이 보기엔 안성맞춤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더 헌팅>(1963)'이다. 여름날,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온 가족이 함께 보시길 추천한다.

참고로 다가오는 7월 26일 수요일, 디즈니의 어트랙션 '헌티드 맨션'을 모티브로 하는 새로운 영화 <헌티드 맨션>이 개봉할 예정이다. 이번에는 유령들을 내쫓아 달라는 저택 소유자의 요청에 유령 전문가들이 모여든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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