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넘버90%]⑦"국회의원은 엘리트 아닌 시민 대표…'다선·나이'가 무슨 상관?"
이코노미 타고 걸어서 출근하는 국회의원
스웨덴, 10명 중 8명 '정치 신뢰' vs 한국은 절반이 '불신'
스웨덴 국회의사당과 연결된 통로를 통해 걸어가면 349개의 사무실 문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8개 정당 소속 349명의 국회의원이 업무를 보는 공간으로, 우리나라 국회 의원회관과 비슷하다. 각각의 사무실은 두 팔을 벌리면 가득찰 정도로 비좁아 혼자 일하기도 빠듯한 공간이다. 초선이든 다선이든 예외는 없다. 우리나라 의원회관은 국회의원 집무실과 보좌진 업무공간, 접견실 등을 따로 두고 있고 제2의원회관까지 증축한 것과 대조된다.
'일하는 국회'로 유명한 스웨덴은 국회의원이 개인 보좌관을 채용하지 않는다. 각 정당이 보조금을 받아서 보좌진에게 급여를 주는 방식으로 의정 활동을 지원한다. 국회의원들은 출퇴근할 때도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한다. 운전기사는 물론 업무용 승용차도 지원받지 않기 때문이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뚜벅이 의원'을 만나는 것은 흔하다. 해외 출장시 비행기 좌석도 '비즈니스'가 아니라 '이코노미'를 탄다. 스웨덴 국민은 10명 중 8명이 정치를 신뢰한 반면, 한국은 10명 8명이 국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를 바라보는 이같은 인식 차이는 '국회의원 특권'에서 비롯됐다.
보좌관 없는 스웨덴, 국회의원이 직접 손님맞이
스웨덴의 '국회의원 업무를 위한 정당 지원 법률(의원지원법)'에 따르면 '정치 보좌관이란 정당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국회의원 당 한 명의 정치 보좌관에 해당하는 예산을 지원받는다'고 명시됐다. 여기서 예산을 지원받는다는 것이 '보좌관 1인 채용'을 뜻하는 것은 아니어서, 의원들은 입법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만 당에 속한 정책 보좌관의 도움을 받아 입법 활동을 한다. 의원실마다 9명의 개인 보좌진을 채용할 수 있고, 상임위원장 등 보직을 맡을 경우 추가 채용이 가능한 우리나라 국회와 대조적이다.
5선 의원인 사민당 올레 토렐(Olle thorell) 의원은 손님을 맞이는 물론, 인터뷰 일정 잡기와 의정활동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지지자들과 공유하는 일까지 모두 직접했다. 자신의 SNS에 의정활동 등의 보고를 위해 영상을 찍어 올린 것만 2500개가 넘는다. 올레 의원이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 업로드한 영상이다.
올레 의원은 "다른 국가에서는 국회의원을 '정치 엘리트' 혹은 '특권 계급'이라고 보지만, 스웨덴은 349명의 국회의원이 전체 스웨덴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으로 본다"면서 "청소부, 운전사, 의사, 선생님 등 다양한 직업들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대리인으로서 어떤 법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가에 의뢰해 행정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고 강조했다.
스웨덴 의원이 출근하는 방법…비용·시간 중 가장 적합한 수단 선택
스웨덴은 국회의원이 출퇴근하는 방식에서도 특권을 뺐다. 국회의원이 직접 운전한 자차나 지하철과 버스, 자전거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도보가 가장 흔하다. 저렴하고, 친환경적이며, 신속하고 안전해야 한다. 업무용 승용차를 상시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스워덴 정치권에서 총리밖에 없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스톡홀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의원들에게는 숙소가 지원된다. 원룸 수준의 크기다. 제공된 숙소에서 국회의원의 배우자나 가족이 함께 거주하는 경우라면, 임대료의 절반은 지불해야 한다. 국민이 낸 세금은 국회의원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1년 동거인과 거주하면서 숙소 지원금을 전액 수령한 국회의원이 낙마한 사례도 있다.
숙소 지원을 받는 의원들은 대부분 걸어서 국회로 출근한다. 국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해야 하는 경우, 본인이 비용을 부담하는 선에서 자차를 이용한다.
스웨덴 민주당의 재선 의원이자 국회 산업혁신위원회 위원장인 토비아스 안드레손(Tobias Andersson) 의원도 '뚜벅이'다. 그는 스톡홀름 국회의사당 내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원래 업무 관련해 이동하면 교통비 등이 나오는데, 산업위원장을 맡은 이후 아파트를 지원받아 걸어올 수 있는 거리에서 출퇴근하고 있다"며 "20분씩 걸어 다닌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중요 인물이라 (특권 같은 혜택이 주어지는 등) 다를 수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국회의원도 그냥 (여느 근로자처럼) 일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1996년생으로 올해 27세인 스웨덴 민주당의 토비아스 의원은 이미 2018년(22세)부터 금배지를 단 '재선 의원'이다. 16세 때 정당 활동을 시작, 18세였던 2014년 스웨덴 민주당의 시의원으로 선출됐다. 19세에는 스웨덴 민주당 청년연합회(SDU) 의장을 역임했다. 20대 중후반에 이미 정치 경력 11년 차인 그는 '스웨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토비아스 의원이 산업혁신위원장으로서 상임위원장을 맡은 스웨덴 정치권에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는 "스웨덴 의원들의 평균 연령은 40대"라며 "최근 청년 정치인은 더욱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선수와 나이를 중심으로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국내 정치와 가장 큰 차별점이다. 토비아스 의원은 "이른 나이에 국회의원에 선출됐지만, 당에서 신임해준 덕분에 국회 상임위원장에 오르게 됐다"면서 "스웨덴서 상임위는 정당 협상을 통해 정해지며, 배분된 이후에는 당에서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출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는 8월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하는데 내가 대표라는 것을 보면 놀라는 분들이 많을 수 있겠다"며 웃었다.
韓-스웨덴, 국회 신뢰 20% vs 63%, 정치 신뢰 56% vs 85%
특권을 없앤 스웨덴 정치는 국민들의 신뢰로 이어졌다. 정치인을 '엘리트 집단'이라고 보는 국내와 달리, 스웨덴에서 만난 의원들은 의회를 '스웨덴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표현했다. 국회 신뢰도 63%, 정치 신뢰도 85%가 나올 수 있는 까닭이다.
5년마다 실시되는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 응답자를 대상으로 '국회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20.7%(매우 긍정 2.2%·약간 긍정 18.5%)에 불과했고,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79.3%에 달했다. 부정 응답 중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긍정 응답자의 합을 훌쩍 넘어선 27.0%였다. 반면 스웨덴은 10명 중 6명꼴인 63.3%(9.0%·54.3%)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부정 응답 비율은 34.4%에 그쳤다.
'정치 신뢰도'에서는 양국의 차이가 더욱 컸다. 한국 응답자의 56.6%가 국내 정치를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스웨덴은 85.8%가 자국 정치에 대한 신뢰감을 나타냈다. 부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13.7%에 그쳤다. 한국에서 정치에 대해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이 43.5%에 이르는 것을 상기하면, 양국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 덴마크도 국회 신뢰도는 46.3%, 정치 신뢰도는 87.6%에 달해 한국과 상반된 결과를 나타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정치인'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는 어려운 구조로 꼽힌다. 지난 2019년 영국의 시장조사 기업인 입소스가 세계 23개국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정치인'은 전세계 공통적으로 신뢰도가 가장 낮은 직업으로 꼽혔다. 그러나 국가별로 차이를 보였는데, 한국은 69%가 부정적으로 답해 평균(67%)보다도 높았던 반면 스웨덴은 57%였다.
스톡홀름=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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