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방은행 실적 '어닝 서프라이즈'…사고 잦은 한국 금융사에 주는 시사점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2023. 7. 2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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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전환점을 맞아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는 속에 국내 언론조차 크게 다루지 않는 뉴스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임종룡 우리 금융그룹 회장이 금융사고 내부 고발자에게 10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는 소식이다. 잇따른 금융사고에 따른 자구책 성격이 짙지만 우리 경제의 대외위상을 높이고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의미가 크다.

국내총생산(GDP) 규모, 무역액, 시가총액 등으로 본 우리 경제 하드웨어 위상은 세계 10위(G10)권을 다투는 경제 대국이다. 각종 선거철이 되면 세계 7대 대국(G7)을 뛰어넘어 세계 5대 대국(G5)도 가능하다는 공약이 남발해 일부 국민은 마치 선진국 국민이 된 것처럼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하드웨어 위상은 국제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금융권에서 그렇다. 지난 3월 세계채권지수(WGBI)에 선진국 편입이 불발됐다. 곧이어 6월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낼지수(MSCI) 연례평가에서는 선진국 예비명단 재진입에도 실패했다. 세계 3대 평가사의 국가신용등급은 2016년 이후 정체됐다.

가장 큰 이유는 하드웨어 위상에 맞게 소프트웨어 위상이 뒤따라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는 경제발전단계에 비해 가장 뒤떨어지는 국가로 분류된 지 오래됐다. 정치인을 중심으로 기득권층은 경제적 지대를 추구하는 고질병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들어서는 금융사고가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대외위상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점이다. 디스커버리, 라임, 옴티머스 사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직간접적으로 관련자들이 버젓이 대형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오랫동안 꿰차고 있다.

대형 그룹사의 오너의 일탈 행위가 터져 나오고 상장사 임직원의 횡령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테라, 루나 등 김치 코인 사태로 투자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정작 그 책임자의 해외 도피 생활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의 코인 거래 사태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2분기 미국 은행의 실적을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비롯된 은행위기가 5월까지 지속된 점을 감안하면 2분기 미국 은행들의 실적은 어닝 쇼크가 예상됐었다. 하지만 결과는 위기 주체였던 지방은행 조차도 예상을 뛰어 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14년 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맞아 버락 오바마 정부는 정책대응이 미숙했다. 가장 중요한 초기 대응이 “미국에서 과연 위기가 발생할 것인가”는 안이한 자세로 때를 놓쳤다. 위기 원인인 복잡한 파생기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위기 극복도 구제금융으로 일관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

오바마 정부 시절 각각 부통령,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으로 근무했던 바이든 대통령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리먼 사태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 은행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초기 대응부터 달랐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선봉에 서서 국민에게 ‘금융위기’라는 불명예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예금인출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위기 대응도 최대 난제였던 시스템 위기로 전염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도덕적 해이 방지와 자가책임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나갔다. 위기 발생 은행은 조기에 파산시키거나 과감히 인수합병을 유도해 추가 자산손실을 막았다. 반면 예금자를 확실하게 보호하는 데 주력해 은행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지켰다.

모든 금융위기의 뿌리인 금융사고는 사전대책이 중요하다. 사후 대책은 이미 많은 예금자와 투자자에게 손실이 발생한 이후의 대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많은 예방 대책 가운데 내부 고발자 제도가 가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임종룡 회장의 금융사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포상금제가 눈에 띤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금융사고 피해액을 감안하면 포상금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 다른 금융사들도 금융사고 내부 고발자 포상금제를 시급히 도입해야 할 때다. 정책당국은 금융사고 직간접 관련자를 발본색원에 다시는 금융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동시에 금융사고자는 미국처럼 중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미국의 은행위기 대처는 우리 통화당국에게는 어떤 시사점을 주나? 은행위기를 맞아 미국 중앙은행(Fed)은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오히려 은행위기가 지속됐던 5월 Fed 회의 때까지 인플레만을 방지하기 위해 금리를 올림에 따라 2년물 금리와 10년물 금리 간의 역전 폭이 확대되면서 실물경기 침체 우려를 증폭시켰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기대 가설’, ‘분할시장 가설’에 따르면 수익률 곡선이 음(-)의 기울기(단고장저)를 나타내면 경기가 차입비용 증가로 침체국면에 접어들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수익률 곡선이 양(+)의 기울기(단저장고)를 나타내면 투자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되 경기가 회복될 확률이 높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미국경제연구소(NBER)는 2분기 연속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한다. 하지만 ‘선제성(preemptive)’를 중시하는 Fed는 NBER식으로 지나간 성장률 추이로 경기를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유효성 문제가 있긴 하지만 Fed가 경기를 판단하고 예측하는 기법으로 ‘수익률 곡선 스프레드’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60년 이후 15차례 걸쳐 장단기 금리 간 역전, 즉 단고장저 현상이 발생했고 대부분 경기침체가 수반됐다.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워런 버핏 등과 같은 투자의 구루들은 뉴욕 연방은행이 매월 확률 모델을 이용해 발표되는 장단기 금리 차의 경기 예측력을 각종 투자판단 때 가장 많이 활용해왔다.

확률 모델이란 장단기 금리 차의 누적확률분포를 이용해 12개월 이내에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을 확률로 변환하는 모델이다. 동 모델로 추정한 결과 마이너스 장단기 금리 차가 경기침체를 예측한 확률은 지금과 상황이 비슷한 1981∼82년 스테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98%까지 치솟은 적이 있다.

수익률 곡선의 이론대로라면 미국 경제는 그레이트 리세션, 즉 대침체에 빠졌어야 한다. 하지만 종전의 경기순환이 무너졌다는 ‘노 랜딩’에 이어 기다리는 경기침체는 언제 오는 것이냐는 ‘고도 침체(아일랜드 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빗댄 Godot recession)’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큼 견실하다.

실물과 금융 간 따로 노는 이분법 현상을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정책당국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는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20년 전 Fed는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신화로 발생한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으나 중국의 국채 매입으로 왜곡된 수익률 곡선을 잘못 파악해 ‘금융위기’라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Fed가 왜곡된 수익률 곡선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가장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수단은 금리를 내려 정책의 민감한 단기금리를 낮추는 일이다. SVB 사태로 불거진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 즉 거시적으로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미시적으로 발생하는 파산 등을 막기 위해서도 금리를 내리거나 유동성을 공급해 줘야 한다.

문제는 최근처럼 인플레가 잡히지 않는 여건에서는 ‘볼커의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볼커의 실수란 1980년대 초 스테그플레이션을 맞아 당시 폴 볼커 의장이 장고 끝에 금리를 올려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으나 그 후 성급하게 피봇(pivot). 즉 금리를 내려 인플레가 재발한 사건을 말한다.

오히려 만기가 10년 이상인 장기채를 대상으로 양적긴축(QT)를 규모를 늘려 장기금리를 높여주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최근 들어 Fed가 수익률 곡선 통제(YCC)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화당의 반대로 조 바이든 정부가 디폴트 위험에 몰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추진할 때는 상당한 난항이 따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보다 심하지 않지만 한국의 수익률 곡선도 평준화되거나 역전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미국과 다른 것은 수익률 곡선 이론대로 경기침체로 보고 있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금리를 동결하거나 낮춰 수익률 곡선의 정상화시켰서야 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미국과의 금리차 축소와 인플레를 안정시키기 위해 매파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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