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읽는 삼국지](55) 걱정이 같으면 서로 힘을 합치고, 잇속이 같으면 서로 다툰다

허우범 2023. 7. 24.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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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를 화용도에서 놓아준 관우는 군령장에 쓴 대로 유비와 제갈량에게 죽음을 청했습니다. 제갈량이 군법대로 관우를 처형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유비가 죽음에 처한 관우를 살려줄 것을 간청하자 제갈량이 못 이기는 척 관우를 용서합니다. 그야말로 수어지교다운 멋들어진 연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관우가 조조를 놓아준 것에 대해서 모종강은 이렇게 관우를 치켜세웠습니다.

‘관우가 조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의문을 제기했다. “어째서 허전(許田)에서는 죽이려 하고 화용(華容)에서는 죽이지 않았느냐”고. 내가 말했다. “허전에서 죽이려 한 것은 충(忠)이고 화용에서 죽이지 않은 것은 의(義)다. 순역(順逆)을 분간하지 못하면 충이라 할 수 없고, 은원(恩怨)에 밝지 못하면 의라고 할 수 없다. 관우 같은 사람은 충성이 하늘을 찌르고 의리가 해를 꿰뚫으니 참으로 천고에 하나뿐인 사람이다.” 은혜를 품는 것은 소인의 정이고, 덕을 갚는 것은 열사의 의지다. 비록 그 사람이 크게 간악하고 조정과 천하에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가 나를 해치지 않고 국사(國士)로 대접했다면 그는 바로 나의 지기(知己)다. 내가 나의 지기를 죽이는 것, 이런 일은 의기 없는 장부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열혈남자가 어찌하겠는가? 설사 그날 관우가 공의(公義)를 따라 사사로운 은혜를 접고 “나는 조정을 위해 역적을 참한다”거나, “나는 천하를 위해 흉악한 놈을 없애겠다”고 한다고 해서 누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겠는가. 그러나 관우의 마음은 ’다른 사람이 죽인다면 의가 되겠지만 내가 죽인다면 불의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라리 죽을지언정 차마 못 한 것뿐이다.’

주유는 적벽에서의 승리를 점고하고 여러 사람과 남군을 빼앗기 위한 상의를 하였습니다. 이때 유비가 손건을 보내 승전을 축하하는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주유는 손건에게서 유비와 제갈량이 유강(油江)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 유비를 직접 찾아뵙고 사례하겠다고 했습니다. 노숙이 의아해하자 주유가 유비의 속셈을 알려주었습니다.

유비가 군사를 유강에 둔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남군을 빼앗겠다는 속셈이오. 우리는 그 많은 군마와 자금 군량을 써가며 이제 겨우 남군을 손에 넣게 되었는데 저들은 음흉한 속셈을 품고 거저먹겠다는 것이오. 이 주유가 죽지 않는 한 그렇게 되나 두고 보시오.
주유와 노숙이 유비의 진영을 찾아갔습니다. 유비는 주유가 온 이유를 궁금해 하자 제갈량이 웃으며 ‘남군 때문에 온 것’이라며 유비에게 주유를 대하는 전략을 알려줍니다. 주유는 유비를 만나자마자 직접 본론부터 꺼냈습니다.

유예주께서 이곳으로 군사를 옮기신 것은 남군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십니까?
듣자니 도독이 남군을 빼앗으려 한다기에 일부러 도와드리려 왔소. 만약 도독이 빼앗지 않는다면 내가 반드시 빼앗을 작정이오.
하하. 우리 동오는 오래 전부터 형주를 병탄하려 하였습니다. 이제 남군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는데 어떻게 빼앗지 않겠습니까?
승부는 미리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조조가 돌아가기에 앞서 조인에게 남군 등을 지키라고 했으니 반드시 기묘한 계책이 있을 것이오. 더욱이 조인은 용기가 대단한 자요. 나는 다만 도독이 빼앗지 못할까 봐 걱정될 뿐이오.
만일 내가 빼앗지 못한다면 그때는 공의 뜻대로 빼앗아도 좋습니다.
유비는 주유가 돌아가자 제갈량에게 물었습니다.

금방 선생이 그렇게 대답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이치가 그렇지 않구려. 나는 지금 외롭고 구차하게 되어 발붙일 땅이 없기 때문에 남군이나마 얻어 임시로 우선 용신(容身)이라도 하려는 것인데, 만일 주유에게 먼저 성을 빼앗게 한다면 그 땅은 동오에 귀속될 터인데 어떻게 머무를 수 있겠소?
하하하하. 당초에 제가 주공께 형주를 빼앗으라고 권해도 주공께서는 듣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어째서 갖고 싶어 하십니까?
전에는 유경승의 땅이었기 때문에 차마 빼앗지 못했지만, 지금은 조조의 땅이 되었으니 당연히 뺏어야 할 것이오.
주공께서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먼저 주유에게 나가 싸우도록 한 다음 조만간 주공을 남군 성안에 높직이 앉혀 드리겠습니다.

장흠. 출처=예슝(葉雄) 화백


주유는 장흠을 선봉으로 삼고 서성과 정봉을 부장으로 삼아 정예병 5천명과 함께 남군을 공략하게 하였습니다. 남군을 지키는 조인은 조홍에게 이릉을 지키게 하여 기각지세(掎角之勢)를 만들었습니다. 동오의 선봉대가 오자 조인은 성을 지키며 수비에 치중하였습니다. 그러자 우금이 흥분하여 나가 싸울 것을 진언했습니다. 우금은 5백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웠지만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조인이 이를 보고 우금과 군사들을 구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바탕 혼전이 벌어지고 결국 동오의 선봉대는 크게 패했습니다. 화가 난 주유는 장흠을 죽이려고 했지만 여러 장수가 말려 용서해주었습니다. 감녕이 주유에게 계책을 말했습니다.

도독! 성급하게 싸워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인은 조홍에게 이릉을 지키게 하면서 기각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가 정예병 3천 명을 이끌고 곧장 이릉을 빼앗겠으니 도독께서는 그 뒤에 남군을 빼앗으십시오.

주유의 군사와 싸우는 조인. 출처=예슝(葉雄) 화백


주유는 이 말을 따랐습니다, 감녕을 조홍을 물리치고 이릉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조인이 보낸 군사들에게 포위되었습니다. 주유는 감녕을 지원하기 위해 능통에게 남군 지휘를 맡기고 이릉을 포위한 조조군을 물리쳤습니다. 조인과 조홍은 이릉을 잃자 사태가 매우 위급해졌음을 알고, 조조가 위기가 오면 열어보라던 계책을 뜯어보았습니다. 조인은 조조가 남겨둔 계책을 읽고는 즉시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경에 밥을 지어 먹고 새벽에 대소 군사는 모두 성을 버리고 떠나라! 성 위에 깃발을 둘러 꽂아 많은 군사가 있는 것처럼 꾸며 놓고 군사들은 세 개의 성문으로 나누어 나가야 한다.
주유는 조인이 도망칠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세 방면에서 남군을 공격했습니다. 조인과 조홍은 몇 번 싸우다가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성 밖으로 달아났습니다. 주유는 군사도 없고 성문도 활짝 열려 있는 성을 빼앗기 위해 군사들과 함께 성안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조조의 계책이었습니다. 성안에 군사들과 매복해있던 진교는 주유가 직접 성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징을 크게 울렸습니다. 그러자 양쪽에서 화살과 쇠뇌 살이 소나기처럼 날아들었습니다. 주유는 황급히 말머리를 돌렸습니다만 한 대의 쇠뇌 살이 날아와 왼쪽 옆구리에 꽂혔습니다. 주유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도망쳤던 조인과 조홍의 군사가 반격해오자 동오군을 또다시 패했습니다. 능통이 조인의 군사를 막아준 덕분에 우금과 서성, 정봉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겨우 주유를 구해내었습니다.

남군성으로 들어가려다 매복군의 화살을 맞는 주유. 출처=예슝(葉雄) 화백


주유는 살촉을 뽑고 치료를 받았지만 독이 묻어 있어서 안정이 필요했습니다. 조인은 주유가 화가 치밀어 독이 온몸에 퍼지기를 바라며 매일 군사들을 시켜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주유는 이를 역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독이 퍼져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상복을 입게 했습니다. 조인은 기쁜 마음에 대군을 이끌고 동오 군영을 기습했습니다. 그런데 동오의 군사들이 보이지 않자 계략에 빠진 것을 알았습니다. 동오의 군사들은 사방에서 조인과 조홍의 군사를 공격했습니다. 조인과 조홍은 크게 패하여 남군으로도 가지 못하고 양양으로 도망쳤습니다. 주유는 군사들과 함께 남군을 차지하기 위해 성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성은 이미 조자룡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주유가 공격하려 하자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졌습니다. 형주와 양양을 빼앗은 뒤에 남군을 다시 공격하기로 하고 군사들을 돌리려는데 척후병이 달려와 두 곳도 이미 유비의 손아귀에 들어갔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제갈량이 조인의 병부(兵符)를 이용해 두 곳을 기습 점거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주유는 외마디 고함을 지르더니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이번엔 충격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모종강은 유비가 형주를 차지한 것을 두고 이렇게 평했습니다.

‘조조를 무찌르게 되어 북군(北軍)이 돌아간 뒤에는 형주의 아홉 개 군을 유비도 갖고 싶어 했고, 손권 또한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갈량은 유비를 위해 빼앗으려고 했고, 주유와 노숙은 손권을 위해 빼앗으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조조를 무찌른 생색은 유비에게 내고 사례할 것을 요구하며 그 보상을 형주에서 찾으려 했다. 그래서 손권과 유비는 끝내 서로 좋게 지낼 수 없었으니 매우 한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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