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달 샤베트 먹고 선녀님과 목욕하는 그림책 속으로

한은정 2023. 7.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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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고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는 고양이 남매, 이상한 알사탕을 먹고 아빠의 속마음을 듣게 된 동동이,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마법 같은 이야기로 상상력과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백희나 작가의 판타지 세계와 그 캐릭터들이 그림책을 찢고 나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마련한 전시 ‘백희나 그림책전’은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첫 단독 대규모 개인전이에요. 20년을 한결같이 그림책 작업에 전념해 온 백희나 작가는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아동문학상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ALMA)’을 수상했죠. 지난 5월엔『알사탕』이 이탈리아 대표 아동문학상인 프레미오 안데르센에서 2023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됐고요.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며 한국 그림책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알사탕』의 동동이가 아빠의 속마음을 듣고 사랑을 깨닫는 장면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백희나 작가의 첫 번째 책인『구름빵』에서부터 최신작『연이와 버들 도령』에 이르기까지 창작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최초의 전시인데요.『구름빵』,『달 샤베트』,『어제저녁』,『삐약이 엄마』,『장수탕 선녀님』,『꿈에서 맛본 똥파리』,『이상한 엄마』,『알사탕』,『이상한 손님』,『나는 개다』,『연이와 버들 도령』 총 11개의 그림책을 ‘그래서 가족: 위로와 용기’, ‘기묘한 선물: 성장과 공감’, ‘달달한 꿈: 빛과 어둠’, ‘나만의 비밀: 환상과 시공간’ 총 4개의 주제로 구성해 소개하죠. 그림책 속 다양한 등장인물과 장면을 140여 점의 작품 세트와 함께 실감 미디어 콘텐트로 구현해 캐릭터와 공간을 실제로 감상하고 체험할 수 있게 했어요.

전시장 입구에선 늑대 할머니가 관람객들을 맞아줍니다. 그의 뒤로는 노란 달이 녹고 있어『달 샤베트』속 늑대 할머니가 달 물로 시원한 샤베트를 만드는 장면이 떠오르죠. 반가운 늑대 할머니를 지나면 작품 속 장면들이 본격적으로 눈앞에 펼쳐져요. 스마트폰 앱으로도 사진 편집이 가능한 시대인데, 작가는 종이·점토·천 등으로 등장인물과 배경, 소품을 직접 제작한 뒤 원하는 컷이 나올 때까지 사진으로 찍어 그림책을 만들어왔죠. 20년간 작업해온 작품을 단 한 점도 버리지 않고 직접 보관·관리한 덕에 이번 전시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백희나 작가

이소연 큐레이터는 “‘구름빵’ 종이 인형부터 ‘연이와 버들 도령’ 나무 그루터기까지 그간 작가가 보관하던 모든 캐릭터와 소품을 꺼내고 전시 형태로 만들기 위해 세트를 추가 제작했어요. 전시로 보여주기 위해 보완하는 작업시간도 오래 걸리고 정성도 많이 들어갔죠”라고 설명했습니다. 전시장을 살펴보면 그림책 작업을 위해 쏟아부은 열정과 디테일을 엿볼 수 있는데요. 작가의 손재주로 탄생한 캐릭터와 모형, 세트는 보는 순간 감탄을 부르죠. 이 큐레이터는 “원작이 주는 힘이 대단해요. 지금 공연도 되고 있지만 활용 범위가 더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작업실에만 두면 아무도 모르잖아요. 이 굉장한 콘텐트를 전시로 풀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죠”라고 전시 기획의도를 밝혔습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작품을 낮게 설치한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입니다. 진열장은 성인에게는 낮지만 어린이에게는 보기 좋은 높이로 설치했고,『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작품을 아예 바닥에 전시해 아이들이 어른 관객의 방해 없이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했죠. “작가님이 어린이들을 존중해 주는 전시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보통 어린이 전시라고 해도 성인 위주로 높게 전시돼 부모님이 아이를 들어서 보게 해주고 하는데, 어른들이 조금 불편하면 어린이들이 존중받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을 거라고 그걸 꼭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전시에선 구슬이가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나는 개다』속 구슬이의 가계도를 볼 수 있다.

제목과 설명, 작품 재료 및 사이즈 등이 표기되지 않은 것도 인상적입니다. 문새날 학예사가 “시야 방해를 방지하기 위해 명제표를 달지 않았는데, 책을 읽은 아이들이 전시를 보러 오면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 설명이 없어도 부모님께 이건 어떤 장면인지 책 내용을 설명해주죠. 특별한 설명이 없어도 작품을 보면 그 디테일에 놀랄 수밖에 없어요”라고 얘기했어요.

『어제저녁』책 속에서 빈칸으로 남겨졌던 아파트 주민들의 집을 놓치지 말고 찾아보자.

1부에서 소개되는 작품은 가족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나는 개다』,『어제저녁』,『삐약이 엄마』입니다. 스컬피로 만든 캐릭터들과 봉제 인형, 목탄을 활용한 드로잉 작품 등 재료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확인할 수 있죠. 특히『나는 개다』의 주인공 구슬이의 가계도가 눈에 띄었죠. 백 작가는 구슬이의 가계도를 그리기 위해 SNS를 통해 독자들로부터 반려견 사진을 받았다고 해요. 독자들은 개들의 특징과 사연을 보내왔고, 이들이 가계도의 주인공이 됐죠. 문 학예사가 “기본적으로 믹스견이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고 해요. ‘따랑이’, ‘바야바’ 등 이름도 개성 있고 재밌죠. 책에는 딱 한 컷으로 들어갔는데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하나하나 살아있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노란색과 흑백의 컬러 배치가 강렬한 게 인상적인 평면 작품『삐약이 엄마』.

옷·커튼·벽지 등을 비롯해 조명 같은 것도 다 계산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손수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작품을 보는 내내 탄성이 나오는데요. 이 큐레이터가『어제저녁』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을 소개했습니다. “책에서 빈칸으로 남겨졌던 또 다른 아파트 주민들의 집이 추가됐어요. 참새집, 두더지집, 뱀집을 꼭 찾아보세요.” 백희나 작가는 주로 입체작품, 혹은『구름빵』처럼 평면과 입체가 섞인 작품을 주로 했는데,『삐약이 엄마』는 평면 작품으로 노란색과 흑백의 컬러 배치가 강렬한 게 인상적이죠.

입체적인 표정을 가진 캐릭터들을 눈 앞에서 만나볼 수 있는『이상한 손님』.

2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이상한 손님』,『이상한 엄마』,『알사탕』입니다. 입체적인 표정을 가진 캐릭터들과 그림책 속 세트를 실제로 구현한 공간은 관람객들에게 그림책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주죠. 그중에서도『알사탕』의 주인공 동동이가 마법의 알사탕을 먹은 후 아빠의 속마음을 듣고는 ‘나도’라고 말하며 아빠를 뒤로 안아주는 장면을 촬영한 세트장이 눈길을 끕니다. 외로운 동동이가 자신을 향한 아빠의 사랑을 깨닫는 이 장면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촬영이 이뤄진 배경이 우리가 사는 집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어 보는 재미가 있죠. “이 섹션에서 작가님이 아마 제일 공들인 게 아닐까 싶어요. 베란다까지 세세하게 표현돼 인상적이죠.”(문) ‘동동이’의 집은 이번 전시를 위해 에어컨·신문·베란다 등을 추가로 작업해 디테일을 더했어요.

『이상한 엄마』속 선녀님은 아크릴 상자 속에서 구름을 타고 날아가 시선을 뗄 수 없다.

입체감이 살아있는 작가의 책 속 이야기를 진짜 입체로 만나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더 큽니다. 알사탕을 먹고 낙엽의 속삭임을 듣는 동동이,『이상한 엄마』속 선녀님은 커다란 특수 제작 아크릴 상자 속에서 구름을 타고 날아가는 등 시선을 뗄 수가 없어요. “전시 오픈 날 아침까지도 작가님이 저 안에서 구름을 만들고 계셨어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죠.”(이)

조명의 활용을 극대화해 어두운 공간에서 그림책 속 주인공이 되어 볼 수 있게 구성했다.

3부에서는『꿈에서 맛본 똥파리』와『달 샤베트』를 만날 수 있어요. 조명의 활용을 극대화하여 어두운 공간 속에서 관객들이 직접 그림책 속 주인공이 되어 볼 수 있게 구성했죠.『꿈에서 맛본 똥파리』는 물속 올챙이와 개구리의 이야기라 책 작업을 할 때 연못의 색감을 내려고 노력했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바닥에 조명을 설치하고 투명한 아크릴판에 그린 그림을 올려 물속을 바라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습니다.

백희나 작가는『달 샤베트』를 위해 12가구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아파트 세트를 직접 만들었다.

이 큐레이터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다며『달 샤베트』섹션을 소개했어요. 무더운 여름날 늑대들이 사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기 위해 백 작가는 6층 높이의 아파트를 직접 만들었죠. 12가구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아파트 세트는 그 규모와 섬세함에 놀랄 수밖에 없죠.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입주민들 모습을 보다 가깝게 보여주기 위해 가구마다 CCTV를 설치해 세트 좌우 모니터를 통해 각자의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게 구성했어요. 3층의 늑대는 록가수라서 거실에 큰 스피커가 있었죠.

전시장에 마련된『장수탕 선녀님』의 공간에 들어서면 주인공이 돼 직접 만나는 것 같다.

4부는 작가의 판타지적 세계관과 독특한 연출 기법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장수탕 선녀님』,『구름빵』,『연이와 버들 도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장수탕 선녀님』은 실제 목욕탕처럼 연출돼 관람객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죠. “작가님이 책을 만들 때는 옛날 목욕탕을 이틀 동안 빌려서 사진을 찍으셨거든요. 그래서 세트가 없으니까 직접 만들었죠.”(이)

전시장에 마련된『장수탕 선녀님』섹션. 그림책 속 세트를 실제로 구현한 공간은 관람객에게 그림책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준다.

구슬발이 늘어진 공중목욕탕 입구를 지나면 요구르트를 마시며 목욕을 즐기는 거대한 ‘장수탕 선녀님’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늘색 타일로 둘러싸인 목욕탕에선 수증기도 보글보글 피어오르죠. 마치 내가 이야기 주인공 덕지가 돼 할머니를 만난 느낌까지 들어요. 할머니 옆으로는 앉는 공간이 마련돼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백희나 작가를 있게 한 데뷔작『구름빵』원작도 놓칠 수 없는 섹션이다.

지금의 백 작가를 있게 한 데뷔작『구름빵』옆에는 지난해 펴낸『연이와 버들도령』이 있어 최근까지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실감 미디어 콘텐트로 새롭게 구현한 ‘연이와 버들 도령’ 영상은 고립과 단절의 시간을 딛고 일궈낸 연이의 성장 이야기를 감성적인 이미지들로 새롭게 보여주며 책과는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죠.

실감 미디어 콘텐트로 새롭게 구현한『연이와 버들 도령』은 책과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이 밖에 그림책 속 캐릭터와 세트를 확장한 포토존, 작가가 직접 그림책을 읽어주는 영상, 지금까지 소개된 책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공간인 ‘이상한 책방’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문 학예사가 “작가님 그림책을 먼저 보고 와야 감동을 두 배로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못 보신 분들은 ‘이상한 책방’에서 보시는 것도 꿀팁입니다”라고 관람 포인트를 알려줬죠. 이 큐레이터는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갖고 와서 하나씩 넘기면서 작품과 비교해봐도 재밌을 거 같아요. 또 작가님이 팬들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는 영상이 나오는 공간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본인 작품을 직접 읽어주시니까 너무 재밌더라고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은 책에만 갇혀있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부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죠. 소중 독자 여러분도 ‘백희나 그림책전’을 보고 뭔가 만들고 싶다는 창작 의욕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 ‘백희나 그림책전’

「 기간 2023년 10월 8일(일)까지(월요일 휴관)
장소 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전관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어린이 1만5000원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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