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보기 무서워" 한순간에 선생님은 아동학대범이 됐다
“내가 먼저 죽었을 수도 있었는데….”
경기도 파주시의 초등학교 교사 A(43)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서울서이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0년생 여교사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여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유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A교사는 학부모의 ‘갑질’이 있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가 담임으로 지도했던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지난해 9월 아동학대(정서학대)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경험 때문이다.
A교사가 피의자 신분이 된 건 지난해 5월 벌어진 교내 폭행 사건 때문이었다. 그의 반 학생이 다른 반 아이를 폭행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가해 학생 학부모는 “진심 어린 사과 편지를 피해 학생에게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가해 학생은 지도에 불응하며 계속 장난만 쳤다고 한다. 이에 A교사는 제자를 교실 앞으로 불러내 어깨를 잡고 단호하게 “반성문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이 행위는 “목이 졸렸다”는 학생의 진술이 됐다. 고소 사건은 아동보호 사건으로 가정법원에 넘겨진 상태다.
법원 판단을 기다리는 A교사는 조사가 진행되는 두어 달 사이 마음의 병이 생겼다. 두 아이의 아빠임에도 자녀를 등지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가 이틀 만에 눈을 떴다고 한다. 그는 “내 결백을 증명하려면 죽음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부터 다른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그는 “이젠 학생들을 보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하지만, A교사는 “내 방법이 정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학생 역시 앞으로 도덕적인 올바른 지도와 제대로 된 상담을 받는다면 분명 좋은 아이로 자랄 것이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잘 가르치려다 아동 학대범 됐다”
스물세살 2년 차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이 교사들의 한숨과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비슷한 경험을 가진 교사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교사 5000여 명이 교권과 생존권 보장을 호소하며 집회를 했다.
교사들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교권 침해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잘 가르치려던 열정은 아동학대죄라는 비수로 돌아왔다”는 주장이 많다. 학생의 수업 방해, 학부모의 민원, 관리자와 교육 당국의 방관에 대한 하소연도 이어지고 있다.
A교사가 겪은 일에 대해 교사들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경남의 한 고등학교 B교사는 학생을 앞에서 혼냈다는 이유로 2021년 9월 아동학대죄로 신고를 당했다. 경찰, 검찰 조사를 받은 뒤 지난 4월 가정법원에서 불처분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치욕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는 “오죽 답답했으면 내 어머니가 학부모의 직장에 찾아갔다가 경찰에 끌려나가는 일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B교사는 “판사로부터 ‘앞으로 이런 일엔 엮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 소리가 ‘학생의 수업 방해 행위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고 했다.
지난 22일 서이초에서 열린 집회에서 발언대에 선 C교사는 “담임 부임 1시간 만에 아동학대죄로 신고당했다”는 경험을 얘기했다. 그는 “알고 보니 한 학생이 전 담임을 고소하며 빈자리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결국 나도 아동학대죄로 고소당한 후 기간제 교사 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학생의 학부모로부터 ‘지금 사과하면 봐 드린다’는 협박성 발언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부탁’ 뿐”
인터넷 교사 커뮤니티에 자신을 대구의 초등학교 교사라고 밝힌 글쓴이는 “수업 시간에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학생이 있어 교권보호위원회를 신청했는데, ‘ADHD인 아이를 사랑으로 품어야 했지 않냐’ ‘교장, 교감에게 사안 보고는 했느냐’ 등 나를 추궁하는 말만 늘어놓았다”고 했다. 또 다른 글쓴이는 “다툼이 있었던 학생들을 교실에 불러 중재하는 과정에서 피해 학부모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를 두고 가해 학생 학부모가 나를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했다”고 적었다.
지난 5월 교사노조가 교원 1만137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의 87%가 “최근 1년간 이직 또는 사직을 고민한 적 있다”고 답했다. “최근 5년 사이 교권침해로 인해 정신과 치료 또는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는 교사는 26.6%였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네트워크에 따르면 2005년 초·중등학교 교사 명예퇴직자 수는 879명에서 2021년 6594명으로 7.5배가 됐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교사들은 ‘교실을 지키기 위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부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탁 내용은 수업 중 소란하게 하지 말라든지, 친구를 때리지 말라 하는 상식적인 요구들이다. 이게 지금 교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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