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4000개라 사천리…DMZ 구비구비 장병 피·땀 서려있다 [정전 70년 한미동맹 70년]
강원도 최북단 고성의 건봉산 자락. 이곳에 ‘천국의 계단’이 있다.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을 따라 이어지는 철책선 옆으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이다. 지난 1월 찾았던 이곳은 단 스무 계단을 오르기도 쉽지 않았다. 험준한 산세를 따라 계단이 솟구쳤고, 계단도 높아 겨우 스무 계단 만에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천국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정상이 하늘 위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함께 계단을 오르던 제22보병사단(율곡부대) 김지상 중령은 “계단 수가 1000개가 넘어(1265계단) ‘천개의 계단’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알렸다.
천국의 계단은 옆 제12보병사단(을지부대) 사천리로 이어진다. '뱀이 많은 냇가'의 사천(蛇川)리인데, 이곳 역시 험준한 산을 오르는 4000개가 넘는 계단이 이어져 있어 이곳 부대에선 사천(四千)이라는 구전이 내려온다.
사천리 군부대엔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이 남아 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전술 도로가 닦이지 않았을 시절 보급품을 정상 소초로 나르는 생존 시설이었다. 지금도 폭설이 내리면 부대는 보급품을 모노레일로 올려보낸다.
천국의 계단과 사천리는 수많은 국군 장병이 제대할 즈음엔 무릎이 상할 정도로 매일 24시간 걸어 오르면서 휴전선을 지켰던 현장이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갖춰진 지금도 장병들이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며 지키고 있다. 중앙일보는 정전협정 70주년과 한ㆍ미동맹 70주년을 맞아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경기도 파주에 이르는 전방을 답사했다. 1월 동해에서 일출을 맞이한 뒤 지난달 서해에 지는 해를 바라보는 6개월의 여정이었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는 155마일(248㎞)의 휴전선엔 굽이굽이 사연이 새겨져 있다. 장병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사연들이다. 휴전선 경계부대마다 '충혼비'나 '위령비'가 없는 곳이 거의 없었다. 경계 작전이나 대간첩작전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는 기념물이었다.
깎아 세운듯한 산비탈과 깊숙이 파인 계곡을 따라 철책선이 깔린 동부 전선. 태백산맥이 지나는 이곳의 향로봉(고도 1296m) 중대는 구름이 초소 아래로 지나가고 있었다. 중부로 향할수록 지형은 조금씩 완만해지만, 경계 근무는 결코 쉽지 않다.
6·25전쟁 때 가장 치열했던 철의 삼각지대(철원~김화~평강) 전투가 벌어진 철원. 땅이 기름진 데다 교통의 요충지라 결코 낼 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다. 이곳의 철책선 앞에서 정보병으로 경계 임무를 서고 있는 제15보병사단(승리부대)의 이한지 상병은 제주 출신이다. 이 상병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서 정말 낯선 최전방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서 경계병을 자원했다”며 “힘들지만,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눈이 이처럼 많이 오는 걸 군대에 와서 처음 알았다”라고도 말했다.
철원의 민들레 벌판은 DMZ 안의 절경이다. 이곳은 화산 지대라 멍돌(몽돌·현무암)이 많다. 멍돌을 미군이 ‘먼들(Mendle)’로 들었고, 이를 한국군이 ‘민들레’로 옮겼다는 설명이 내려온다.
또 다른 지명 유래가 있다. 북한의 전차 기동로였던 민들레 벌판에 아군이 지뢰를 많이 묻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 “먼 들에 가지 마라”고 했고, 미군은 ‘먼들 필드(Mendle Field)’로 적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절경의 북쪽으론 엄중한 분단의 현실이 자리해 있다. 철원 맞은 편 김화의 오성산(고도 1068m)은 북한의 핵심 군사시설이다. 정상엔 남쪽을 관측하고 전파를 잡는 시설이 있다. 지하엔 탄약과 식량을 쌓아 둔 요새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기도로 접어들면 휴전선의 풍경이 달라진다. 철책선 바로 아래에 논·밭이 일궈진 곳도 있다. 요즘과 같은 농번기엔 민간인 출입통제선(통제선) 안쪽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아져 검문소가 붐빈다.
경기도 파주의 한 초소에서 김포의 한강 신도시가 그리 멀지 않다. 여기서 야간에 경계를 서는 장병들의 시야엔 전방 도심 야경이 눈에 들어온다. 분단이 빗어낸 초현실주의 장면이다.
DMZ 안엔 남북한 모두 감시초소(GP)를 만들었다. 북한이 1963년 DMZ를 무장화하면서 GP를 설치하자 한국도 맞대응했다. 문재인 정부 때 9ㆍ19 군사합의로 남북한은 GP를 11곳씩 철수했다.
남북한은 나머지 GP를 다 없애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며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현재 DMZ 안엔 한국군 60여곳, 북한군 150여곳의 GP가 남아있다.
철원의 군부대 관측소(OP)에서 망원경으로 본 북한 GP는 감시탑처럼 생긴 건물이었다. 북한에선 민경초소라고 부른다. 옥상에 인공기가 걸렸다. 그러나 건물 아래 100m 길이의 지하 갱도가 파여 있다고 한다. 북한은 DMZ 내 GP에 14.5㎜ 고사총과 82㎜ 비반충포(무반동총) 등 중화기를 배치하고 있는데 정전협정 위반이다.
북한 GP는 북한의 또 다른 현실도 보여준다. 북한군이 농사를 짓는 모습이 자주 관측된다. 식량 사정이 안 좋기 때문에 둔전병처럼 북한군은 자급자족해야만 한다. 가끔 북한군이 얼차려를 주는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지난 2월 화천. 훈련소를 마치고 배치를 받은 신병이 전방 대대에 전입신고했다.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목소리는 우렁찼다. 제7보병사단(칠성부대) 이주호 이병은 “떨리고 낯설다”면서도 “몸 건강히, 그리고 성실히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대대장 박세영 중령은 이 이병을 비롯한 신병 한 명 한 명에게 ‘군사경찰 MP’ 완장을 채워줬다. DMZ에 들어가는 민정경찰이다. 이들은 이날부터 결코 긴장을 풀 수 없는 전방 근무에 돌입한다. 박 중령은 “어렵고 힘든 환경이지만, 묵묵히 이겨내는 용사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155마일 휴전선에서 만난 장병들과 얘기해보면 한결같이 나오는 단어가 있다. ‘자부심’이다. ‘내가 대한민국을 지킨다’는 현실 인식에서 나오는 단어다. 그 자부심이 70년간 이 땅에서 평화를 지키고 번영을 이루게 한, 보이지 않는 배경이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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