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외교부 순혈주의 여전…개방형 직위에 민간인사 내보냈다
외교부가 최근 민간 개방형 직위 28개 중 5개를 한꺼번에 내부 임용으로 돌리며 외부 인사 채용의 문턱을 높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개방형 직위에 채용돼 성과를 인정받고 지난해 일반직 외무공무원으로의 전환이 내부적으로 결정됐던 민간 인사에게 돌연 퇴직을 통보, 논란도 일고 있다.
━
외부 인재에 문 닫아
23일 중앙일보가 국회를 통해 입수한 '외교부의 개방형 직위 운영 현황'에 따르면 외교부는 "기존 개방형 직위 중 부대변인, 주이집트대사관 공사참사관, 디지털공공외교과장, 녹색환경외교과장, 전략조정담당관 등 5개 직위를 내부 임용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며 "지난 14일 직제시행규칙 개정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개방형 직위는 공직 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외교부의 경우 민간의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는 직위에 대해 외교관 출신이 아닌 민간 전문가에게도 문을 열어뒀다. 당초 28개 직위를 개방형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중 17%인 5개가 무더기로 내부 임용으로 전환된 셈이다.
그간 '무늬만 개방형'으로 인사 시스템을 운영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있는 정황도 드러났다. 외교부의 본부(국립외교원 제외) 고위공무원단 중 개방형 직위는 네 자리인데, 지난 5년간 실제 민간인을 채용한 사례는 지난해 12월 발탁된 외교전략기획관 1명 뿐이다. 또 같은 기간 전체 개방형 직위를 거쳐 간 46명 중 민간인 채용은 11명으로 23%에 그쳤다. 나머지는 전부 외교부 출신 혹은 타 부처 공무원이 임명됐다.
외교부는 2010년 특채 파동 이후 인적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개방형 직위를 확대해 민간의 우수 인력을 영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에도 고질적 조직 문제로 지적돼 온 순혈주의 타파 의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그러나 이번에 아예 개방형 직위 5개를 한꺼번에 내부 임용으로 돌리면서 특유의 폐쇄적 기조를 또다시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환 전 전임자 일방 해고 논란도
외교부는 또 이미 내부 임용으로 전환한 5개 직위에 더해 과장급 정책홍보담당관도 후임자를 내부 채용하기로 가닥을 잡고 기존 인사에 대해 해고를 통보했다. 해당 직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를 통한 정책 홍보를 담당하는 자리로 민간의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개방형으로 운영돼왔다.
2019년 8월 역량평가와 면접 등 개방형 직위 공모 전형을 통해 정책홍보담당관에 채용된 민간인 A 씨는 유튜브 플랫폼을 활용한 '30초 휙터뷰' 등 기발한 방식의 정책 홍보 콘텐츠를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이에 지난해에 일반직 외무 공무원으로 전환하기 위한 내부 절차가 사실상 완료됐다. A씨의 채용 관련 내부 검토 문건은 장·차관 결재를 거쳤으며, "일반직 전환 후 외부 전문가 관점에서 외교 정책 홍보 및 공공 외교 전략 개발에 기여하길 희망한다"는 내용의 참고 자료까지 작성됐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정부 교체 이후 A 씨 인사는 유야무야됐고, 지난 10일 구두로 "4주 내 퇴직하라"는 통보가 이뤄졌다. 정책홍보담당관 직위 자체도 향후 내부 인사를 채용하기로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외교부 안팎에선 "A 씨가 전 정부에서 인정받았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23일 현재 외교부 직원만 접속할 수 있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외교부 페이지에는 "(외교부는) 죽도록 부려 먹고 내동댕이치는 조직" 등 A씨 인사의 부당함에 공분하는 댓글이 100여개 등록된 상태다.
━
"민간인 진출 확대" 정부 기조와도 배치
23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현행 규정에 따라 외교부 장관이 서류 전형 등 경력 경쟁 채용을 통해 개방형 직위에 있는 인사를 일반직으로 채용할 수 있다. 참사관급 직위 이상의 경우 외교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용하도록 하고 있다. 개방형 직위 인사를 일반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법·규정 근거도 명확한 셈이다.
특히 인사혁신처는 '외무 공무원'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민간인 진출 사례를 확대하기 위해 아예 제도적 길을 트고 있다. 지난 4월 민간임용자를 일반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대상에 외무직을 포함하도록 '개방형 직위 및 공모 직위의 운영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당시 인사혁신처는 "민간의 우수한 인력이 외무공무원으로서 공직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개방형 직위를 무더기로 줄인 외교부의 조치가 민간의 우수한 인재를 공직 사회로 적극 편입 시키려는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이날 중앙일보에 "외교적으로 경험과 전문 지식이 더 필요한 자리에 대해서 내부 임용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눈데 와가 사진 찍습니꺼!” 살 떨린 ‘두목 결혼식’ 잠입 | 중앙일보
- "촬영한다며 호텔 성폭행"…성인화보 모델들, 소속사 대표 고소 | 중앙일보
- 이병헌, 옥수동 빌딩 240억 매입…월 8500만 원에 통으로 세놨다 | 중앙일보
- '안경 선배' 라이벌이었던 일본 컬링 선수 근황 | 중앙일보
- “AI반도체의 테슬라는 우리” 엔비디아도 놀란 韓스타트업 | 중앙일보
- '신림동 칼부림' 맨손으로 밀친 여성…피습 당한 남성 구했다 | 중앙일보
- "한국서 죽고 싶었다"…멕시코 간 그녀 '2400만명 스타' 된 사연 | 중앙일보
- 전역 때 챙겨온 실탄 10여발…수십년 뒤 분리수거함에 버린 60대 | 중앙일보
- "시체팔이라니 거참" 서이초 교사 추모한 문천식 분노, 무슨 일 | 중앙일보
- 신림 칼부림 목격자 "30㎝ 칼 피 뚝뚝…여고생들 울며 뛰어와"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