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플랫폼 전쟁
싸움은 초거대기업에 유리한
승자의 게임이 될 가능성 커
영화감독인 고향 친구와 지난주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넷플릭스를 놓고서는 유독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20년 전 연출부에서 기본기를 쌓으며 성장해 6년 전 큰상을 받았고, 대형배급사에서 유통될 신작 개봉을 준비할 만큼 자리를 잡았다. 이런 그 앞에 나타난 넷플릭스는 그동안 익혀온 영화의 공정(工程)을 바꾼 혁신과 같았다.
“영화와 드라마가 관객에게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다른 판이거든. 서로 침범할 수 없는 선을 그어놓고 영역을 구분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안에 촬영해야 하는 분량과 현장의 진행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돼. 서로의 시스템으로 넘어가면 적응할 시간이 상당히 필요하지. 그러니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이 함께 일할 기회도 많지 않았어. 그 둘을 완전히 섞어놓은 게 바로 넷플릭스야. 아직은 과도기지만, 앞으로 모두가 적응해가겠지.”
디지털 영상 콘텐츠 구독 플랫폼을 통칭하는 OTT는 ‘셋톱 박스를 넘어섰다’는 의미를 담은 ‘오버 더 톱(Over the top)’의 줄임말이다. OTT의 선두주자인 넷플릭스의 성장 과정은 그야말로 ‘넘어서기’의 반복이었다.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코츠밸리에서 우편물을 발송해 DVD를 대여했던 넷플릭스는 2007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했고, 때마침 찾아온 스마트폰·태블릿PC의 보급을 타고 OTT 시장을 선점했다.
넷플릭스가 또 한 번 ‘넘어서기’에 성공한 것은 2016년 한국 영화계를 만난 뒤부터였다. 제작비 이상의 거액을 선뜻 내밀면서도 연출에 관여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투자는 그전까지 한국 영화계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넷플릭스에서 봉준호 감독이 2017년 ‘옥자’를 독점 공개한 뒤에도 한국 영화인의 숱한 도전이 계속됐다. 그렇게 2021년 히트작 ‘오징어 게임’이 탄생했다.
애플·아마존닷컴 같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월트디즈니·파라마운트 같은 할리우드 영화계 강자들이 OTT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아직은 넷플릭스의 후발주자일 뿐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20일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589만명의 신규 가입자를 추가해 세계 구독자 수를 2억3839만명으로 늘렸다. 영업이익은 18억2700만 달러(약 2조3000억원)로 1년 전보다 15.8%나 늘어났다.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도 넷플릭스의 위협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 시청률 조사업체 닐슨 리서치 조사에서 지난달 현지 최다 시청 시간을 기록한 미디어 플랫폼은 38%를 차지한 온라인 스트리밍이다. 그중 유튜브가 8.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넷플릭스는 8.2%로 2위였다.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유튜브를 0.6% 포인트 차이로 추격한 셈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지난 3년간 우리의 생활상을 바꾸며 비대면 콘텐츠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낸 넷플릭스를 영화 플랫폼의 승자로 올려세웠다. 승자가 어디 넷플릭스뿐일까. 제너럴모터스, 포드, 볼보, 닛산 같은 내연기관차 시장의 전통적 강자들은 시가총액 기준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인 미국 테슬라의 충전 규격을 일제히 채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00억 달러(약 13조원) 투자를 받은 ‘챗GPT’와 구글에서 개발된 ‘바드’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동안, 아이폰 제조사 애플과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플랫폼스는 확장현실(XR) 장비 시장의 문을 열고 있다.
플랫폼 전쟁에서 누구든 표준을 먼저 장악하면 최후의 승자로 올라설 수 있다.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싸움은 초거대기업에 유리한 ‘승자의 게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승자의 플랫폼 안에서 기회를 얻으려는 ‘을(乙)’들의 경쟁도 치열할 텐데, 보상이 만족스럽게 배분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오징어 게임’의 지식재산권을 독점한 대가로 1조원 이상의 수익을 독식한 넷플릭스가 이미 증명한 일이다.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경북 이재민들, 국격 맞게 호텔이나 모텔로 모셔라”
- [단독]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박정 등 민주당 의원, 수해 속 베트남 출국
- “도박빚 5천만원”…‘신림 흉기난동범’ 지인 추정 글 등장
- 신림동 흉기난동범 “난 쓸모없는 사람…반성하고 있다”
- ‘수심 67㎝’ 무인 키즈풀 카페 2살 여아 물 빠져 숨져
- ‘원신축제’ 폭발물 트윗 200명 대피…“엄벌” 요구 빗발
- 신림동 칼부림 피의자 “펜타닐 복용?”… 횡설수설 진술
- “배관 막혀 물난리”…고양이 화장실용 모래가 굳어있었다
- “독극물 의심 소포는 중국서 발송…대만은 경유만”
- “당근이세요?” 롤렉스 들고 튄 10대…닉넴 뒤져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