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설국열차’를 통해 본 인류세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
분명한 것은 인류세 이후 기후
재난이 가져올 미래 암울해
인류가 머리 맞대고 공동 문제
해결하기에도 시간 빠듯한데
국가주의 매몰돼 자국 이익만
앞세우는 근시안적 갈등 지속
국가 간 협력이 단절된 냉전은
지구촌에 재앙 가져오는 결과
초래… 인류 화합은 더 이상
외교적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영화 ‘설국열차’는 기후재난 속 인류가 한 기차에 올라탄 운명공동체임을 보여준다. 원작인 1984년 프랑스 만화에서도 황금칸 사람들이 전염병과 엔진 부담을 이유로 꼬리칸을 잘라내면서 계급 차이가 강조되긴 하지만 주요 등장인물들 모두 백인이고 혁명이나 반란의 서사는 없다. 반면 봉 감독은 자신의 방식대로 각색한 영화에서 다양한 인종과 언어를 통해 ‘설국열차’를 인류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지구의 축소판인 열차에서 꼬리칸 사람들은 굶주리고 엔진과 가까운 앞칸 사람들은 수족관, 온실 같은 공간에서 호사를 누린다. 정신적·정치적 리더라고 여겨졌던 인물들은 각자의 논리와 계산 속에 서로 결탁했음이 드러나고, 전체주의적 체제 속에 개인은 한낱 시스템을 떠받치는 일원에 지나지 않음도 폭로된다. 뒷맛 씁쓸하고 암울한 영화지만 인류 역사에 대해 시대를 앞서가는 감독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기후재난, 환경 문제에 관한 한 인류는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다. 지질학적으로 21세기는 신생대 4기인 홀로세에 해당하지만 과학자들과 사회인문학자들은 현재를 ‘인류세’, 즉 ‘인간의 시대’라고 부른다. 인간의 존재가 지구 환경 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의 인류세(anthropocene)란 용어는 네덜란드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천의 영향으로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인류세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한 18세기 산업혁명부터라는 견해도 있고 1945년 2차 대전 종결을 가져온 핵폭탄 투하가 본격적으로 지구 환경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인류세 이후 자연생태계의 많은 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기후재난이 가져올 암울한 미래는 저출산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 중 하나는 백신 분배 속도나 정부의 추적도 사람들의 이동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21세기는 모빌리티의 시대다. 사람, 자본, 노동, 물자 등 모든 것이 국경을 넘나들고 전 지구가 모바일로 연결된 초국가 시대엔 그 어떤 나라도 완전히 고립된 채 살아갈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별 관심 없던 사람들도 그 전쟁으로 밀과 유가가 오르자 어서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질 만큼 지구는 자원, 식량, 생필품, 기술, 재원이 촘촘히 연결된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
기록적인 가뭄과 폭염, 산불, 산사태, 홍수가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면서 인명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쌀, 밀, 설탕, 카카오, 커피 등 식량가격이 급등할 위기에 처해 있다. 면화, 식용유, 석유가격도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화합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전쟁, 이념,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매몰돼 자국 이익만 앞세우는 근시안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 1, 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의 냉랭한 관계 때문에 환경 문제 논의조차 중단된 상태다. 미국의 기후특사 존 케리가 지난주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정부와 기후재난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도했지만 시진핑은 환경 문제는 중국 나름의 방식과 속도대로 알아서 하겠다며 케리를 만나주지 않았다. 낸시 펠로시의 대만 방문이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거대한 인구에 재활용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이 두 나라가 환경 문제 해결에도 미온적인 것은 전 지구의 재앙을 가져올 만한 심각한 문제다. 팬데믹 기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유엔,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환경 문제에 관해 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케리가 베이징에서 한 말대로 환경 문제만큼은 정치적 이념 차이를 떠나 최우선으로 협력해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지구에 빙하기가 닥친 이유는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대기 상층권에 과도하게 살포한 인공냉각제 CW-7 때문이었다. 여기서 CW가 암시하는 것은 콜드 웨더(Cold Weather)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냉전을 의미하는 콜드 워(Cold War)의 은유다. 국가 간 대화와 협력이 단절된 냉전시대는 결국 전 지구촌에 재앙을 가져오고 인류 모두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적 사고에 매몰돼 땅 넓이에 연연해하고 전쟁도 불사하는 독재자들에겐 전 세계 국가들이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인류 화합은 더 이상 외교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미성(연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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