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경 칼럼] ‘체호프의 총’은 불발로 끝나야 한다
중국의 초고속 부상(浮上)으로 거인(巨人) 미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전체주의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디커플링’(탈동조화) 전략은 같은 자유주의 진영인 유럽연합(EU)의 거부 때문에 ‘디리스킹’(위험제거)으로 완화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는 서로 뗄 수 없는 샴쌍둥이처럼 얽혀 있다”며 “테슬라는 디커플링에 반대한다”고 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도 대중국 수출통제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 공화당 원로인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미국과 서구의 문명이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 의해 압도되고 지배될 수 있는 심각한 위험이 있다”고 했다(『전체주의 중국의 도전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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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초고속 비상에 미국도 고심
북한 미사일 시위 속 미묘한 상황
국방부 전쟁, 통일부 대화 대비를
여야, 보수·진보 ‘최소 합의’ 절실
」
북한 문제도 복잡하다. 핵을 손에 쥐었지만 오랜 제재로 경제난과 식량난이 동시에 깊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올 들어 16번이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남북 간에 일체의 대화 채널이 사라진지 오래고, 위험한 상태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그제 “한반도는 수일 내 전쟁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동시에 미묘한 변화도 감지된다. 김여정은 “확장억제 체제를 강화할수록 우리를 회담 탁(테이블)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뿐”이라고 했다. 이 시점에 ‘회담’이라는 단어를 꺼낸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월북한 주한 미군병사 송환을 위한 교섭이 북미 대화의 단초가 될 가능성도 있다. 기시다 일본 총리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조속히 정상회담을 갖겠다”고 밝히자 북은 외무성 부상 담화를 통해 호응했다.
우리는 갈등하는 북한의 의도와 수순을 정확히 읽고 대비하고 있는가. 신임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김정은 정권 타도”를 주장해 온 학자다. 대화보다는 대북 압박에 힘을 싣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의도가 읽힌다. 문제가 없을까.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보고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국방부의 일이다. 외교부는 북한을 외국의 일원으로 상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통일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엄혹한 대결 상황 속에서도 실낱같은 대화의 가능성, 그 미세한 신호를 제때 포착하는 것이다. 북한이 실존적 위협이지만 숙명적으로 대화해야 하는 모순적 현실이 남북기본합의서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표현에 반영돼 있다. 이걸 외면하면 대화 국면에서 한국만 소외된다. ‘적과 동지’라는 카를 슈미트의 단선적 프레임은 낡았다.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면서도 어느새 ‘샴쌍둥이’가 돼버린 이 시대와 불화를 일으킬 것이다.
체제가 다른 중국과 북한을 다룰 때는 열 배 더 고심해야 한다. 싱가포르는 대표적인 친미 국가지만 중국과도 잘 지낸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막후에서 중재했다. 고(故) 리콴유 전 총리는 심지어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자인 덩샤오핑의 멘토 역할까지 했다. 싱가포르는 체제가 다른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했기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러시아의 문호 안톤 체호프는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지난 70년 동안 ‘체호프의 법칙’을 깼다고 생각한다. “왕과 황제들은 새로운 무기를 획득하면 곧바로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1945년 이래 인류는 그런 유혹에 저항하는 법을 배웠다. 냉전의 1막에 등장한 총은 결코 발사되지 않았다.”(『호모데우스』)
문제는 한반도다. 제2차 세계대전을 막 끝낸 미국과 중국이 다시 총을 들고 싸우게 만든 사나운 지정학의 공간이다. 그러고도 전쟁을 끝내지 못했고, 70년째 휴전 상태다. 만일 두 강대국이 다시 전쟁을 한다면 한반도는 대만과 함께 가장 유력한 전장(戰場)이 될 것이다. 1950년의 한국전쟁이 ‘미니 제3차 세계대전’이었다면 이번에는 핵무기가 날아다니는 진짜 3차대전이 될 수 있다.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도 변수다. “잘사는 한국을 왜 미국이 지켜줘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는 그가 백악관을 다시 차지하면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낼 것이다. 핵도, 미군도 없는 한국이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대적할 수 있을까. 미국은 북한과 협상하면서 과연 한국의 이익을 지켜줄 것인가. 전쟁에서 이겨 나라를 지켜야 하지만 전쟁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화의 가능성을 한 뼘이라도 확장하려면 대화하는 통일부, 협상하는 외교부가 필요하다.
2500년 전 그리스 철학자가 꿰뚫어본 대로 만물(萬物)은 유전(流轉)하고, 우리는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미국도, 중국도, 북한도, 한국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지금처럼 내전(內戰) 수준의 의견대립이 계속된다면 시대의 격랑과 외환(外患)을 감당하기 어렵다. 생존을 위해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최소 합의’가 절실하다. ‘체호프의 총’은 불발로 끝나야 한다.
이하경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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