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양평고속도로의 운명

문병주 2023. 7. 24.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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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주 논설위원

팔당대교 근처에서 양평에 이르는 ‘6번 국도.’ 멋진 풍광을 선사하지만 길에서 버려야 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다. 나들이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양평 주민의 불편은 오죽할까. 이를 해소하기 위한 서울~양평고속도로가 건설 예정이었다는 소식을 접한 건 최근이다.

며칠 동안 매일 지도를 들여다봤다.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에서 출발해 양평군 양서면을 종점으로 하는 애초 계획안과 종점이 양평군 강상면으로 바뀐 노선의 차이가 궁금했다. 6번 국도 일대의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게 본래의 목적이었다는 주장대로라면 양서면 종점안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 일가의 땅이 위치한 이유 때문에 종점을 변경했다는 의혹이 더해지니 양서면 쪽에 힘이 더 실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관련 의혹을 ‘괴담’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사업 백지화 카드를 뽑아 들었다. 2008년부터 양평군민이 숙원사업으로 추진해 오던 고속도로 건설은 이제 언제, 어떤 식으로 다시 추진될지 알 수 없다.

정쟁화된 고속도로 노선 변경에 얽힌 진실은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가려질 것이다. 2019년 4월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해 2021년 통과했는데, 지난 5월 8일 국토부가 발표한 ‘전략환경영향평가항목 등의 결정내용’에서 종점이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변경된 사실이 공개됐다. 바뀐 종점 주변에 김 여사 일가의 땅 29필지(총 3만9394㎡, 1만1937평)가 위치한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지난해 3∼5월 타당성 조사 결과다. 두 민간업체는 강상면 종점을 최적 후보지로 평가했고, 국토부가 이를 수용했다. 업체들이 나서서 설명하고 건설 전문가들이 등장해 토론회를 열고 있지만 수년간 추진되던 노선이 대통령 선거가 있고 나서 김 여사 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변경됐다는 의혹을 막지 못하고 있다.

국정조사를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공개토론을 강조하는 국민의힘 및 원 장관 사이 합의점을 찾긴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과 한 시민단체는 원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까지 했다. 김 여사 일가에 혜택을 주기 위해 고속도로 종점을 갑자기 변경하도록 위법한 지시를 했다는 내용이다. 공소시효가 7년인 혐의라 다음 정권에서라도 수사가 가능하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감사원이 나서도 될 일이다.

「 주민 15년 숙원사업 무산 위기
자료 투명 공개로 의혹 풀어야
지역민 대상 주민투표도 방법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당장 조사나 수사가 본격화하진 않겠지만 2017년 1월 ‘제1차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수립된 과정과 그 이후 전개 과정을 다 들여다봐야 한다. 지도만 봐서는 판단 안 되는 현장 상황이나 생태환경 등을 고려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양평군 내부에서 2018년 국토부의 변경안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강상면을 종점으로 하는 노선도 검토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미 처벌 시한은 지났더라도 지도만 놓고 노선을 그렸거나 각종 논의 과정을 생략 혹은 무시했다면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직권남용이 행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전직 양평군수는 물론 김부겸 전 총리, 유영민 전 청와대 실장의 땅을 거론하며 원안이 민주당 측 인사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업 추진과 관련된 모든 자료와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23일 국토부가 ‘서울~양평고속도로 모든 자료 공개’ 페이지를 개설하고 지난 7년 간의 문서 55건을 공개한 건 적절한 조치로 여겨진다.

의혹 해소와 더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건 양평 주민의 입장이다. ‘정치는 양평 고속도로에서 빠져라’는 플래카드 글처럼 양평 주민 대부분은 고속도로 건설을 원하고 있다. 도로가 건설될 주변 거주민의 피해 여부, 도로 건설에 따른 양평 주민의 편의 증진 효과를 따져야 한다. 추가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선 여야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 양평 사정은 양평 주민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주민공청회와 주민투표를 통해 여론을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지역 SOC(사회기반시설) 사업 관련 군 단위에서 주민투표로 노선을 결정한 사례는 없다(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지만 다른 돌파구가 없다. 비슷한 사례로 2014년 10월 강원도 삼척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가 있다. 당시 반대가 85%로 나타났다. 물론 투표 결과는 구속력이 없었지만 정부는 2019년 최종 철회했다.

일련의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한 제안도 나온다. 김 여사 일가가 소유한 고속도로 후보지 인근 부동산을 스스로 매각하거나 기부하는 방안이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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