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지구 1도 올랐는데 매년 물난리…기후변화에 한강도 위험
극한호우 대비책을 찾아서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방류를 결정했다. 수문을 열었다. 1초당 5500t의 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래도 수위가 내려가지 않았다. 198m를 오락가락했다. 사람이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늘에 운명이 맡겨졌다. 다행히 2일에는 비의 양이 줄었고, 3일에는 그쳤다. 댐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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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년 홍수, 소양강댐 붕괴 위기
비 더 내렸다면 수도권 초토화
온난화로 강수 늘고 장마 북상
현재 시설 설계 기준 비현실적
제방 높이고 허술한 곳 보강을
하천 퇴적물 치우는 준설 필수
」
장마 직후 태풍이 덮친 1984년
소양강댐은 사력댐이다. 바위·자갈·흙으로 만들었다. 사력댐은 콘크리트댐보다 월류(越流·물 넘침)에 취약하다. 얼마 못 버티고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 소양강댐 최대 저수량은 29억t. 당시에는 동양 최대의 댐이었다. 소양강댐이 무너졌다면 북한강 주변과 서울에 엄청난 인명·재산 피해가 났을 것이다. 당시 댐에 있던 물이 서울 인도교에 이르기까지 17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계산됐다.
소양강댐과 주변 지역민이 생사의 고비를 넘던 그때 수도권과 강원도에 큰 수해가 났다. 8월 하순의 장마로 연일 비가 내렸고, 28일에 태풍 ‘준’이 상륙했다. 서울·경기도·강원도에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에 300㎜에 육박하는 비가 오는 곳도 있었다. 수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북한이 보낸 구호품을 한국 정부가 받았다. 기록적 홍수였다.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00㎜다. 그런데 장마나 태풍으로 일부 지역에 하루에 200㎜ 넘는 비가 쏟아진다. 시간당 강수량이 50㎜를 넘는 경우도 있다. 최근의 집중호우 때 충북에 이런 지역이 속출했다. 1년 평균 강수량의 절반 정도가 사나흘 간 쏟아지고, 봄과 초여름에는 가뭄이 든다. 물 관리가 몹시 힘든 나라다.
가뭄 뒤에 홍수 오는 극한 환경
지난 22일에 충북 청주시 미호천교 주변을 둘러 봤다. 지난 15일 그곳에서 넘친 물이 인근의 지하차도로 흘러 14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다리 아래에서 보니 그날 아침보다 미호강 물이 7∼8m가량 낮게 흐르고 있었다. 강물이 그렇게까지 불어났다는 게 ‘직관적으로는’ 믿기지 않았다. 평소에는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적게 흐르다가 장마나 태풍이 오면 제방이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수량이 불어나는 한국 하천의 극단성을 그곳에서 다시 목격했다.
한국 하천 제방은 확률적 안전성을 고려해 만든다. 한강의 제방은 과거 200년을 기준으로 삼아 최대가능수위를 계산하고 그 높이에 약간의 여유고(최대 2m)를 두는 게 설계 기준이다. 200년 동안의 관측 기록이 없으므로 수집 가능한 자료를 토대로 통계적 수치를 구한다. 낙동강은 100년이 기준이다. 지방하천은 과거 30∼80년의 통계적 최고 홍수위를 기준으로 제방 높이를 결정한다.
문제는 과거를 준거로 삼아 하천 제방의 높이를 정하는 게 믿을 만하냐는 점이다. 기상 조건이 크게 변했다면 과거의 경험이 도움되지 않을 수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년 전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의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09℃ 올랐다.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뭄·홍수·산불이 빈번해지고 피해 규모도 커진다고 진단한다.
2050년엔 지구 온도 3℃ 오를 수도
윤진호 지스트(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는 “공기가 더워지면 머금을 수 있는 수증기가 많아진다. 1℃가 올라가면 포화수증기량이 7% 증가한다. 따라서 강수량이 는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한국의 여름에 생기는 장마전선이 과거보다 위에 형성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게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장마전선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생긴다. 이 고기압이 확장되는 추세를 보여 장마가 우리나라 중부지역과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구 평균 1.09℃가 올랐는데 가뭄·홍수·산불 걱정이 커졌다. IPCC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급격히 줄어들지 않으면 2050년에는 평균 온도 상승이 3℃ 안팎이 된다고 경고한다. 4∼5℃를 예견하는 학자도 있다. 윤진호 교수는 “장마로 집중호우가 계속된 상태에서 곧바로 대규모 태풍이 한반도를 덮치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확률적으로는 빈도가 낮지만, 막상 생기면 큰 피해를 야기하는 ‘블랙 스완(검정 백조)’의 출현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4년보다 더 많은 장맛비와 태풍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물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과 같다.
“하천 제방 설계 기준 올려야”
이런 극한호우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지키는 보호막이 하천 제방이다. 그것이 제구실을 못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청주 지하차도 참사에서 봤다. 이 건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교량 공사를 하며 제방을 허물고 엉성하게 임시 제방을 만들어서 생긴 일이지만, 제방이 멀쩡히 있었어도 비가 계속 내렸다면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재준 금오공대 명예교수는 기후변화를 고려한 하천 제방의 취약성을 연구해왔다. 5년 전 그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한강 상류의 좌안(남쪽), 하류의 좌·우안이 특히 취약하다. 이 명예교수는 “기후변화에 따른 예상 강수량 변화 등을 고려해 제방 안전성 평가 모델을 만들어 보면 가장 치수가 잘된 한강의 제방도 절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한강이 그렇다면 다른 큰 강이나 지방하천은 말할 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제방 설계와 안전도 평가 기준을 올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호우 사태로 전국에서 약 170건의 하천 제방 유실이 보고됐다.
기후변화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홍수를 예고한다. 제방을 높이고 허술한 곳은 보강해야 한다. 동시에 하천 바닥 정비도 필요하다. 하천에 쌓인 퇴적물을 걷어내는 준설은 제방을 높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제방을 튼튼히 하고 강바닥을 치우지 않으면 다가오는 재앙을 막을 수 없다.
■ “지방하천 관리 자치단체에만 맡길 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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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범 서울시립대 교수 인터뷰
홍수·가뭄 대책 전문가인 서승범(사진) 서울시립대 국제과학도시대학원 교수는 “지방하천 중에 주변에 인구와 산업시설이 많은 곳을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 지방하천 관리 책임은 자치단체에 있다. 서 교수는 정부가 발주한 환경변화 대응 물 관리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Q : 기후변화 때문에 홍수 위험이 커졌나.
A : “전 세계에서 홍수 발생 빈도와 규모가 증가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과거에는 100년에 한 번 발생할 만한 규모의 물난리가 향후 10년간 여러 번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분석을 반신반의했는데, 최근의 수재 양상을 보면 기후변화 영향을 의심하기 어렵다.”
Q : 그렇다면 하천 관리의 기준을 바꿔야 하지 않나.
A : “2019년에 개정된 하천 설계 및 관리 기준은 하천 유역의 기반시설과 인구 등을 고려하고 있다. 단순히 하천의 크기(등급)에 따라 일괄적으로 적용되던 기준을 바꿨다. 경제성을 고려한 ‘선택적 방어’ 개념이 포함된 것이다. 하천 규모가 작아도 주변에 산업시설과 인구가 밀집돼 있으면 제방 등의 시설 기준을 달리 정하게 됐다.”
Q : 홍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시급히 할 일은.
A : “모든 하천을 정비하면 좋겠지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므로 현실적이지 않다. 따라서 취약 지점을 파악하고 그곳들을 우선 정비해야 한다. 홍수가 날 경우 어느 정도의 물적·인적 피해가 발생할 것인지를 예측해 정비 대상에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제방 정비 비율이 낮은 지방하천이 특히 문제다.”
Q : 지방하천 관리도 중앙정부가 맡아야 하나.
A : “지방하천의 하천 개수율(제방 정비 완료 비율)은 77.5%에 머물러 있다. 국가하천은 95%다. 요즘 홍수의 대부분이 지방하천에서 발생한다. 지방하천 홍수피해액이 국가하천의 5배를 넘는다. 홍수 위험에 취약한 지방하천의 주요 구간은 중앙정부가 맡아 조속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하천 관리에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를 통합해 지휘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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