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제국의 수도에 강림한 천국,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은 15세기 이전 1000년 동안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였다. 동서 로마로 분열된 지 80년 만인 476년 서로마는 멸망했지만, 그 60여 년 후에 동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 1세가 서로마 지역의 영토를 회복했다. 황제는 『로마법대전』 편찬 등 로마 문화를 집대성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명실상부한 기독교 제국의 수도로 발전시켰다.
그는 땅 위에 없는 천국 같은 공간을 만들어 제국의 중심교회로 삼고자 했다. 537년 축성된 ‘신성한 지혜’ 아야 소피아는 직경 32m, 높이 56m의 돔을 덮은 거대한 공간이다. 이전의 로마 판테온 역시 거대 돔을 얹었으나 그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6m 두꺼운 벽으로 지지한 폐쇄적 공간이었다. 반면 기둥만으로 지지하는 개방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아야 소피아는 혁명적인 구조법을 도입했다. 거대 돔 아래 사방에 펜던티브-삼각형 곡면 벽을 받치고, 이를 또 아치와 반원 돔으로 받치는 구조적 발명이었다. 당대 저명한 물리학자와 수학자에게 설계를 맡겼다니 근대적 구조 설계를 1500년이나 앞서 실현한 것이다.
40개의 천창을 두르고 아치 벽에 벽창을 뚫어서 이 거대한 공간에 자연채광이 가득하게 했다. 돔 천장에 우아하게 장식된 사도와 성인들의 황금색 모자이크들이 쏟아지는 햇빛 속에서 빛나는 모습은 가히 지상에 강림한 천국의 모습이었다. 축성식에 참석한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라고 감격했다.
이스탄불은 지진대로 고대부터 잦은 자연재해를 입었다. 아야 소피아는 특히 실험적 구조 때문에 부분적 붕괴와 변형이 잦았다. 돔을 가볍고 견고하게 하는 대보수도 있었고 외부 여러 곳에 육중한 버팀벽을 추가해 하중을 견디게 했다. 오스만제국 때는 이슬람 모스크가 되었다가 터키공화국 건국 후에는 박물관이 되었다. 최근 이슬람 원리주의로 다시 모스크가 되었으니 아야 소피아는 건축적인 드라마 못지않은 격변의 역사 속에 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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