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험 없었다, 아름다움 그 자체" 뉴욕 홀린 한국의 '일무'
"한국 전통춤을 많이 봤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없었다."
22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뉴욕시 링컨센터 데이비드 H.코크 극장에서 만난 엘렌 코다덱씨는 서울시무용단의 창작한국무용 ‘One Dance’(일무·佾舞)의 감상을 묻자 감탄부터 쏟아냈다. 뉴욕 퀸즈에서 비영리 예술센터인 '플러싱타운홀'을 운영하며 최근 몇년간 한국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수차례 선보였다는 그는 "매우 전통적 움직임들인데, 동시에 매우 현대적"이라며 "의상부터 드라마를 갖고 있다.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제1호 국가무형문화재인 '종묘제례악' 의식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공연은 지난 20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면서 말 그대로 성공적인 뉴욕 데뷔를 마쳤다. 국내에서는 앞서 세종문화회관에서 2차례 흥행을 기록했으나, 해외 무대는 이번 뉴욕 무대가 처음이다.
익숙하지 않은 종묘제례악을 과연 뉴요커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당초 우려는 기우로 확인됐다. 사흘간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대다수가 한국인일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인종, 나이, 성별조차 각양각색이었다.
경건한 북소리와 절제된 동작의 1막 '일무 연구'가 시작되자, 링컨센터 내에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했다. 녹색 전통의상 차림의 무용수들이 선보인 2막 '춘앵무'에선 저절로 아름답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뉴욕 공연에서 특별히 간결하게 수정된 3막 '죽무'는 한국무용 특유의 정중동(靜中動) 호흡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마지막 4막 '신일무'에선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춰 힘 있고 강렬한 대형 군무가 펼쳐졌다.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정구호의 미학이 담긴 연출, 정혜진 서울시무용단장, 김성훈, 김재덕의 안무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말 그대로 '전통에서 현대로의 진화'를 완벽히 보여준 것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요커들조차 아름다운 일무에 환호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커튼콜에서 수차례 '브라보'를 외친 30대 제이미 스턴씨는 "그냥 아름답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면서 "마지막 피스(4막 신일무)에서 다인원의 그룹이 선보인 '힘'이 강렬했다.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인 2세로 미국에서만 30년이상 살았다는 현윤정씨는 "뉴욕에서, 그것도 링컨센터에서 이런 한국공연을 보게 됐다는 그 자체가 감동적"이라고 전했다. 그와 동행한 앤드류 스트룹씨는 "멋진 트렌지션, 아름다운 선이 인상적"이라며 "판타스틱"이라고 평가를 남겼다.
이번 공연은 링컨센터가 여름축제인 '서머 포 더 시티'를 통해 올해 한국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코리안 아츠 위크'를 개최하면서 성사됐다. 일무는 이번 프로그램 중 유일한 유료 공연이기도 하다. 링컨센터 담당팀에서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티켓 가격을 최대 190달러로 책정하면서 "충분히 이 정도 가격을 낼 만한 훌륭한 가격"이라고 높게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링컨센터를 찾은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일무가 뉴욕 관객들과 성공적으로 만나면서 우리 순수 전통 예술에 기반한 작품도 세계에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K-콘텐츠의 영역이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무 공연은 지난 한 주간 미국 뉴욕 곳곳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각종 공연, 전시, 이벤트가 집중적으로 개최되는 가운데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머 포 더 시티의 공식 후원사인 SK그룹도 한국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펼쳤다.
이번 코리아 아츠 위크 기간 링컨센터 일대에서는 헤드폰으로 K-팝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춤출 수 있는 '사일런트 디스코', 봉준호 감독의 '괴물' 야외 상영회, 세계적인 플루티스트 재스민 최의 연주와 함께 오케스트라 버전의 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트리뷰트 투 코리아' 등이 진행됐다. 뉴욕한국문화원과 링컨센터 공동 주최의 K-인디 뮤직 나이트에선 안타깝게도 가수 백예린의 공연이 코로나19 확진으로 막판 불발됐으나, 크라잉넛과 세이수미가 열정적인 무대를 펼쳤다.
록펠러센터 지하에는 글로벌 아트 플랫폼 '아비투스 어소시에이트'가 주최한 '디스커버리: 12 컨템포러리 아티스트 프롬 코리아' 기획전을 통해 오는 8월 말까지 12인의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SK그룹의 후원으로 전시되고 있다. 문성식, 박진아 등 주목받는 작가들뿐 아니라, 유명 웹툰 작가 조석, 나윤희, 조현아의 그림과 영화감독 박찬욱의 사진 작품도 볼 수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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