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굿즈] 팔리지 않은 옷으로 지구를 살리는 옷을 만들다
옷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만들어지고, 낡고, 망가지고, 버려진다. 시장에 나와 폐기되기까지 마르고 닳도록 쓰임을 다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낡거나 망가지는 과정 없이 멀쩡한 채 버려지는 옷들도 적잖다. 아무도 찾지 않아서 더 이상 쌓아두지 못하고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옷들. 지구적 기후위기 시대에 패션업계는 이 같은 의류폐기물에 대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일찌감치 의류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색다른 도전을 해 온 기업도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지금보다 높지 않던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코오롱FnC)은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를 론칭했다.
래코드는 코오롱FnC가 운영하는 약 30개 브랜드의 3년차 재고를 재료 삼아 옷을 만드는 브랜드다. ‘옷에서 옷으로’가 모토다. 소각되거나 매립될 위기의 옷이 래코드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에 도달하면 원단이 된다. 재고로 버려질 뻔한 옷이 사람의 손으로 해체되고, 단추나 패치까지 재료로 거듭난다.
래코드 론칭 당시만 해도 패션업계 안팎에서는 단기 이벤트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래코드는 10년이 넘도록 변화하고 성장하며 달려왔다. 래코드 의상은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 9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연설 행사에 입으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론칭 12년차를 맞은 올해 또 다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고, 소비자가 갖고 온 헌옷을 새옷으로 재탄생시키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도 시작했다.
래코드는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는지, 의미 있는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궁금증을 안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래코드 플래그십스토어에서 진행됐다. 박선주 래코드 디자인실장, 남재식 디자이너, 한란·최윤성 마케터가 함께 했다.
‘옷에서 옷으로’는 어떤 과정을 거칠까. “재고들이 모인 세이브플라자에서 재료 선별을 해요. 3년치 재고 중 팔리지 않는 것들을 봅니다. 거기에서 새롭게 디자인을 입힐 수 있는 옷들을 찾아내는 거죠. 소재가 좋고, 흥미롭고, 디테일이 다양한 옷들을 보면서 디자인 방법을 연구해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샘플을 개발하고, 생산으로 연결시킵니다.”(남재식 디자이너)
동선을 짧게 해서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게 래코드 업사이클링 작업의 기본이다. 그래서 래코드 작업 공간인 서울 강남구와 가장 가까운 경기도 안양시 세이브플라자(코오롱FnC 브랜드 이월상품 매장)에서 작업이 시작된다. 대개 브랜드가 상품을 만들어 낼 때 시즌 테마를 정하고 원단을 개발해 디자인을 짜내는데, 재료에서 디자인을 끄집어내야 한다. 꽤나 도전적인 일이다.
재고 의류를 업사이클링하는 브랜드가 없진 않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 산하 브랜드 중에는 유일하다. 업사이클링 제품은 매출을 내기보다 의미를 생산한다는 게 더 중요하다. 수치로 성과를 가름하는 대기업에서 경영진의 의지 없이는 이어오기 힘든 일이었다. 박선주 실장은 “회사가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다. 재고조차 패션기업답게 솔루션을 만들어냈다는 게 매력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실장은 래코드 초창기부터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약 10년간 래코드의 히스토리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물었다. “디자이너에게 다양한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졌어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미부여뿐 아니라요. 업사이클링 작업은 패션뿐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의 영역에서 펼쳐지고 있거든요. 굵직한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해서 성과를 낸 게,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작업을 함께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래코드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아워레이보’, 업사이클링 가구를 만드는 ‘카르텔’, 건축가 나가사키 조,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 우한나, 연진영, 홍영인, 문승지, 임태희 등과 10주년 전시 협업을 진행했다. 나이키, 한섬, 라코스테 등 동종업계의 다른 브랜드와도 함께하면서 업사이클링의 매력을 알렸다. BTS, 배우 문소리 등이 사랑하는 브랜드로도 이름을 알렸다.
래코드의 성장 배경에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도 주효했다. 소비자와 접점을 꾸준히 만들었던 한란 마케터의 이야기는 이렇다. “2014년 정도만 해도 업사이클링 개념이 대중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않았어요. ‘왜 헌옷을 파느냐’ ‘헌옷으로 뭘 하려고 하느냐’ 묻는 분들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50~60대까지 열린 마음을 가진 걸 목격해요. 스스로 ‘래코드 키즈’라고 하시며 래코드를 사랑해주시는 손님도 있었어요. 이 분은 지금 텍스타일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시고요.”
소비자 인식 변화는 매출 신장의 신호로도 볼 수 있다. “3년 전인가 나이키와 협업할 때가 기억에 남아요. 나이키 고위 관계자들이 이태원을 다니다가 래코드 매장에서 제품을 봤는데, 마음에 드신 거죠. 길거리 캐스팅(?)으로 협업이 성사됐어요. 작업을 시작하려니 재료의 양이 너무 많은 거예요. 업사이클링은 대량생산이 쉽지 않은데 물량이 엄청났죠. 과연 이게 잘 팔릴까 싶었는데 빠르게 완판되는 걸 보면서 뿌듯했습니다.”(남재식 디자이너)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고 있는 이들에게 래코드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옷이 재고가 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그런 문제는 우리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모든 패션기업들에게 주어진 숙제예요. 래코드는 그 문제를 풀어가고 있어요. ‘디스 이즈 낫 저스트 패션(This is not just fashion)’이 저희 슬로건이에요. 패션 너머의 일을 하고 있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박선주 실장)
“‘옷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가장 잘 하는 브랜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체와 제조를 기반으로, 새로운 생명을 가진 제품을 탄생시키는 작업을 가장 잘 하는 브랜드라는 자부심이 있어요.”(최윤성 마케터)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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