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우크라이나 방문의 득실 [신율의 정치 읽기]
우크라 재건·복구 등 경제 돌파구 창출 기회
외교 성과 살리면서 수해 재발 방지 대책 필요
이는 스웨덴 외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스웨덴은 약 200년간 적극적 중립주의 원칙을 지켜왔다. 1994년 나토의 PfP(Partnership for Peace)에 가입했지만, 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 원칙 때문이었다. 핀란드 역시 2차 대전 직후부터 중립을 선언한 국가였다. 핀란드는 지정학적 측면에서 러시아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핀란드가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서방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러시아 입장을 고려한 ‘강요된 중립’일 수 있다. 그런 핀란드가 서방의 대표적인 집단 안보 체제인 나토에 가입했다는 사실, 그리고 200년간 중립을 지켜온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냉전 구도를 능가하는 신(新)냉전이 지구촌을 엄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징되는 신냉전 구도는 구(舊)냉전보다 더욱 확연히 진영을 구분하는 듯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방문을 두고, 국내 정치적으로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비군사적 지원을 통해 국제 사회에 우크라이나 전쟁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대통령이 직접 전쟁터를 방문해 러시아의 적대국을 자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 윤석열 정권의 외교적 접근 방식이 원해서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현재 상황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외교적 방향성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서 볼 수 있듯, 현재의 신냉전 구도에서는 ‘등거리 외교’ 그러니까 이른바 ‘양다리 외교’가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서방 측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현재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AP4(아시아 태평양 4개국·대한민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를 통한 나토와의 협력, 그리고 나토와 한국 간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통한 나토와의 직접적인 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나토는 ‘중국의 군사적 야심 억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우리가 이런 서방 입장을 무시한다면, 대한민국의 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대만에 무력행사를 한다면 이는 한국에 엄청난 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에 무력행사를 감행하면 미국은 이에 대응할 것이다. 이 때 북한이 나설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가다. 누구도 자신 있게 “가능하다”고 답변하기 어렵다. 결국 중국의 군사적 야심 억제는 대한민국 안보와도 직결된다. 이것까지 고려하면, 한미 동맹이라는 양자 간 군사적 동맹 강화는 물론, 다양한 안보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대서양의 안보와 태평양의 안보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한 이유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은 우리가 서방 측을 확실히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우크라이나 방문은 우리 경제의 중요한 돌파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재건과 복구에 나설 경우, 2차 대전 직후 마셜플랜과 비교될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나다. 우크라이나 정부 추산으로 약 7500억달러 규모 재건 사업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가 참여할 명분을 만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과 국가 원수의 방문 등 관계 강화를 위한 외교가 필요하다. 또한, G8이라 불릴 만큼 경제력과 군사력 측면에서 성장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외교 행보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여러모로 필요했다.
이번 방문은 국내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우크라이나 방문은 이념적으로 ‘자유 민주주의’와 관련 있다. 얼마 전 윤 대통령이 언급한 ‘반(反)국가 세력’ 발언과도 관련이 있다. 2030세대와 60대 이상 세대는 이런 윤 대통령의 ‘가치 행보’에 공감할 가능성이 크다. 2030세대와 60대 이상 세대에게,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중요한 공감 포인트기 때문이다. 2030세대와 60대 이상 세대는 공통적으로 반일 정서보다는 반중 정서가 강하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반면 4050세대는 반중 정서보다 반일 정서가 강하고, 북한에 대한 인식도 상대적으로 온정적이다. 때문에 윤석열 정권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4050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어렵지만, 2030세대와 60대 이상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는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정치란 수(數)의 싸움이다. 2030세대와 60대 이상 세대는 전체 유권자의 약 60% 정도를 차지한다. 반면 4050세대는 37.6%다. 이를 감안하면, 윤 대통령의 자유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강조와 친서방 행보는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당연히 이를 통해 정책 추진의 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국내에서 수해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지 말고 국내로 시급히 귀국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대통령이 국내에서 수해 상황 진두지휘를 했으면 더 좋았을 수 있다. 야당으로서 충분히 그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한미 동맹 외 집단 안보 체제의 편입 가능성 확보가 대한민국 안보에 매우 절실하다는 생각을 했을 테다. 우크라이나 재건에 우리나라가 참여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 역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수해에 대한 수습은 장관과 지자체장에게 일단 맡기는 결단을 내렸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산사태 같은 문제는 산림청과 행안부, 국토교통부 등 부처가 따로따로 관리한다. 수해 때문에 급거 총리가 귀국한 이탈리아는 정부 통합기관이 관리한다. 또한, 수해와 관련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과 책임이 크다. 때문에 윤 대통령은 외교와 경제 문제부터 해결하고, 수해 문제는 원격으로 회의를 주재하며 대처 방안을 지시하고 실행은 각 주관 부처 지휘에 맡겼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국민 정서를 고려해 외교적 경제적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설명하고, “원격으로 지휘했음에도 사상자가 많아 송구하다”는 말을 했으면 더욱 좋았을 테다. 그런 메시지 관리가 부실하다. 외교적 성과는 성과대로 살리면서 수해 책임자는 분명히 가리고,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 원수의 당연한 의무이자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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