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화려했던 '안양 1번가' 되살릴 방법 [우리 도시 에세이]

이영천 2023. 7. 2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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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 활용해 오감 충만 문화공간으로 되살린다면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화려하던 명성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한 도시를 대표하는 영광스러운 이름, '안양 1번가' 지역의 이야기다. 그 과거 명성에 걸맞게, 이 공간은 수십 년 중심지 역할을 훌륭히 해냈었다.

이곳은 안양 모태다. 경부선 개통과 함께 역이 탄생했고, 과천에 속한 西(서)가 들어간 두 개 면(面)을 합해 '서이면(西二面)'으로 독립한다. 일제 강점기 역을 중심으로 초기 도시화가 이뤄져 1941년 '안양면'이란 이름을 얻는다. 해방 후인 1949년 읍(邑)으로, 1973년 시(市)로 승격하였으니 50년이다. 산업화와 함께 안양천 양쪽에 형성된 너른 공장지대 배후지로 도시가 성장해 왔다.
 
▲ 안양역 앞 안양 1번가를 이루는 역 앞의 모습.
ⓒ 이영천
 
하지만 지금 안양은 1번가를 비롯해 원도심 쇠락으로 고민에 빠져있다. 정량화해 보여줄 수는 없어도, 공간의 매력을 잃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원인은 매우 복합적일 텐데, 그걸 고민하는 사이에도 쇠락은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원도심과 신도시의 차이가 극명하다. 지난 수십 년,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이런 원도심의 쇠락에 고민하는 도시가 부지기수다.

어깨를 부딪는 게 일상이던 거리, 지금은

공간 간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의 결과는, 소비행태 및 구매 능력으로 결정되는 지대(地代)의 차이로 드러난다. 안양 1번가는 어쩌다 매력을 잃고, 신도시에 화려하던 명성을 내주게 되었을까?

한 공간에 입지할 최적 기능을 분석하는 기법인 입지론 관점으로 보면, 1번가는 분명 상업 기능의 공간이다. 계량 수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되, 빠른 속도로 쇠락 중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사람이 적어졌다는 것은 언제부턴가 매력도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안양 1번가-1 보행자 전용도로와 주변 상가의 안양 1번가 내부 공간.
ⓒ 이영천
 
무엇 때문일까. 복잡한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리적 여건은 가로환경이나 건물 밀집도, 노후도, 공원녹지 비율과 대중교통 접근성 등일 것이다. 인문 지리적으론 주변 토지이용과의 상호 연계기능과 인구밀도, 유동 인구 등이 영향을 미치는 인자다. 여기에 코로나19에 따른 소비행태 변화와 구매력 저하, 폐점 등도 살펴야 한다.

안양 1번가는 한때 길을 걸어가면 다른 이와 어깨를 부딪는 게 일상이었다. 좁고 긴 분지에 평면적으로 확산한 안양은, 비교적 균질한 토지이용 밀도를 보이는 도시다. 모든 도시 활동이 안양역으로 모였고, 흩어져 나갔다. 1번가 격자형 가로는 과거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변화의 시작은 인근 신도시 평촌의 등장이다. 1994년 신도시 광역 교통 대책의 하나로 생겨난 과천선(남태령∼금정, 지금의 수도권 전철 4호선)이 신호탄이었다. 인덕원∼평촌∼범계로 이어지는 주변 역들의 등장은, 안양에서 공간 경쟁에 불을 지른 불쏘시개였다.

공간 경쟁의 이유

인근 지역 평촌은 1기 신도시다. 평촌은 1980년대 후반 당시 3저 호황(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이라는 사회·경제적 배경에, 폭등하는 집값을 잡으려는 2백만 호 주택건설계획에 힘 입어 탄생하였다. 즉 주택 공급량을 늘리자는 정책이었다. 그 결과로 고밀도 토지 이용에, 고층 아파트 일색의 신도시가 탄생하였다.

획일화된 토지 이용으로 인해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용도구역 분할이 이뤄졌다. 그래서 주거지역에 상업이나 업무가, 상업지역에 주거가 침범하지 못하는 경직성을 띠게 되었다. 결국 한정된 면적에 희소성을 띠게 된 상업지역은 필연적으로 지대(地代)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신도시의 이런 모순이 원도심과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된 역설을 만들어냈다.

범계역이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먼저 살피는 이유는, 쇠락하는 1번가 문제를 현 범계역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안양역 대도시를 끼고 있는 철도역 답게, 복합 판매시설과 역사(驛舍)가 공종하는 안양역.
ⓒ 이영천
 
이 곳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그리 넓지 않은 상업지역이다. 대신 높은 용적율의 대형 필지로 나뉘었다. 주간선-보조간선-집산도로의 격자형가로망 체계가 공간을 정형화하였고, 곳곳에 넓은 공원 등 쾌적성을 확보했다.
거기에 잇닿아 업무지구가 있다. 주변은 고밀도 아파트다. 이는 주간 이동인구는 물론 야간 인구까지를 담보하게 만든 요인이다. 좁은 상업지역은 밀려드는 유동 인구로 터져 나갈 지경이다. 높은 용적율은 백화점 등 대규모 판매시설을 끌어들였다. 공간은 한껏 새 얼굴로 단장하고 전성기를 구가한다.
 
▲ 1번가 도로 안양역에서 중앙사거리를 잇는 주간선 도로.
ⓒ 이영천
 
반면 1번가는 어떠한가. 경부선 철도와 전통시장이 동·서·남쪽을, 북쪽은 수암천이 막아선 형국이다. 재래시장과 1번가 기능 일부가 중첩하여 공간 차별화에도 명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주변은 저밀도 토지이용이다. 입지론으로 보면, 온갖 제약에 갇혀있음을 알 수 있다.

가로망 체계는 위계가 흐트러졌다. 특히 보조간선 기능이 미약해, 주간선도로에 상당량의 부하가 걸린다. 필지 대부분이 긴 세장비의 들쭉날쭉한 부정형이다. 이는 토지이용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공원녹지 비율 또한 형편없는 수준이다. 보행자 전용이긴 하나, 도로 폭이 좁아 위압감마저 든다.

1번가가 홀로 번성할 때는 대체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젠 불과 수 km 거리에 범계역 같은 완벽한 대체 공간이 있다. 광명역과 구로디지털단지 개발 영향도 있다. 안양역은 이렇듯 공간조직구성에 한계를 안고 있어, 경쟁에서 밀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안양 만안-동안은 서로 영향 주고받으며 번성 

한편, 의도했건 아니건 안양시 2개 구(區)는 공간을 두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행정구역도 원도심과 신개발지로 확연하다. 공교롭게도 18세기 후반 정조대왕이 수원 화성으로 행행(行幸: 임금이 궁궐 밖으로 거동함, 임금의 나들이) 하던 두 길로 구(區)가 나뉘었다는 점이다.
 
▲ 안양 1번가-2 내부 가로망이 교차하는 곳의 모습. 곳곳에 공실이 상당하다.
ⓒ 이영천
 
장승배기 넘어 만안교를 지나던 길은 지금의 만안구로, 잇닿는 지역도 안양천을 따라 광명과 구로 등 옛 시가지다. 따라서 공간도 이들 지역이 가진 특성과 동질성을 고 상당 부분 영향을 주고받으며 번성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남태령 넘어 과천, 인덕원을 지나던 길은 동안구다. 각종 행정기관마저 신도시와 함께 동안구로 몰려들었다. 심각한 비대칭이다. 동안구 공간 흐름은 과천을 거쳐 강남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사람과 재화가 이 길을 따라 같이 흐른다. 신개발지 일색이라는 공통점이 인식으로도 이어져, 신도시에 살면서 과천·강남을 동경하는 등 동류의식으로 연결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 지점이 가장 크게 벌어진 틈이라 할 수 있다.
 
▲ 안양 1번가-4 보행자 전용 공간을 지키기 위해 차량 진입 금지시설을 설치한 1번가 내부 모습.
ⓒ 이영천
 
그 결과 당연히 만안구와의 교류는 물론 생활 양태와 공동체 의식 또한 희박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안양의 문제만은 아니다. 쇠락해가는 원도심을 가진 모든 도시가 이에 해당한다. 공간의 물리적 재생과 상호 균형도 중요하지만, 만안과 동안의 상생은 결국 이 지점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본다.

시작은 공동체 인식 회복에 있다. 문제를 함께 인식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실천에서 찾아야 한다. 그 가치가 문화적이건 경제적이건 말이다.

상권 걸림돌? 발상 뒤집어 공간 되살리기

쇠락하고는 있다고 해도 안양의 얼굴인 1번가 명성이 다 휘발한 건 아니다. 다만, 경쟁하는 공간과는 다른 길을 걷는 차별화가 절실해 보인다. 신도시 특성을 무작정 쫓아서는, 빈약한 물리적 토대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명만 밝아져도 공간은 변한다.

신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감성으로 젊은이들 발길을 끌어들이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와 예술 감성이 충만한 공간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그저 음주가무만이 아닌 아닌 오감(五感)이 충만한 문화공간으로 말이다. 오래된 공간에 세련미를 더해보자. 한옥마을인 가회동과 익선동에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듯 말이다.
 
▲ 서이면 사무소 주변에 주차장과 모텔, 소공원 등 상충 기능의 시설 입지로, 역사문화재로서 기능이 미약하다.
ⓒ 이영천
 
표본 하나가 있다. 문화재인 서이면 사무소가 1번가 활성화의 걸림돌이자 상권침체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는 모양이다. 역발상으로 서이면 사무소를 1번가 문화 코어로 키우는 건 어떤가.

광화문이나 숭례문이 문화재 규제 반경을 축소했다면 그 방법을 준용하자. 그래도 걸림돌이라면, 200m 반경 내 토지와 건물을 시(市)가 사들여 활용하는 방안은 어떤가. 문화시설이나 취미·오락·패션의 5차 산업 중심가로, 그도 아니면 철거하여 공원 등으로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안도 있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모일 것이다.

원도심을 살리려 안양시도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안양 6동 옛 농림축산검역본부 땅을 활용해 시청 이전 등이 포함된 복합행정 몰(mall)을 구상 중이다. 업무기능을 안양 1번가 가까이 둠으로써, 원도심을 살려보려는 의도로 읽힌다.
 
▲ 안양 1번가-3 안양의 주간선 도로인 안양로에서 1번가로 통하는 지점에 선 안내판. 가로망 체계가 무너진 현상의 표본.
ⓒ 이영천
 
원도심과 신도시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경쟁은 비단 안양시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신도시를 끼고 있는 도시들 공통의 문제다. 여기엔 인프라 불균형과 노후도 등 표피적인 차이가 있을 뿐인데, 그 기저에는 차별적 의식 또한 짙게 깔려 있다고 본다. 아마 공간의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는 걸 서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공동체 의식과 실천이 우선이다. 물리적 치유에 앞서 이 부분의 회복이 먼저다. 그래야 원도심 또한 자연스럽게 되살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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