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머리 1400여 개 자른 것보다 힘들었던 것

최새롬 2023. 7. 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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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터이고 농사는 모르지만] 살면서 처음 경험해 본 양파 중심적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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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지만 아주 다른 사람들, 농사 짓는 부모님 vs. 마케터 딸이 함께 농사일 하는 이야기. <기자말>

[최새롬 기자]

"양파를 수확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디야~"

본가에서 연락이 왔다. 농사일에야 늘 사람이 없다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수확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몸살이 나셔서 아버지 밖에 일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 사람이 없으니 양파 수확하러 와달라는 충청도식 화법이다. 생각하니 농사일을 제대로 도운 적이 몇 번 없었고, 도와달라는 요청을 들은 적도 드물었다.

부모님은 그동안 "니들은 일 못혀. 어려워서"라며 손사래를 치시기만 하셨다. 가봤자 별 도움이 못 될 것 같다는 짐작은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전화라니. 60대 중반 부모님이 진정으로 나이 드셨다는 증거일까. 그렇게 30대 중반의 장성한 딸들이 오랜만에 충남 당진의 한쪽 밭에 도착했다.

여기가 몇 평일까? 아주 어릴 적부터 봐온 곳이지만 처음 든 의문이었다. 아는 것이 없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이토록 가깝게 밭을 보고 자랐지만 대충도 셈할 수 없는 어른으로 자랐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동안 크기를 궁금해하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작물의 양을 궁금해하지 않은 것은 알 필요가 없던 일이었기 때문일까? 한 번도 알려주신 적 없는 부모님 탓이라고 둘러대 본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 살이도 십 년, 현 직업 마케터인 딸이 숫자를 묻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쉬워 보였다', 듣기만 했을 때는
 
▲ 양파대 자르기 작업 전 마르고 있는 양파 양파대 자르기 작업 전 마르고 있는 양파
ⓒ 최새롬
 
"아부지, 이 땅이 몇 평이나 되나요?"
"위 아래 합쳐서 한 600평 되지?"

나는 '국평(국민평수)' 30평대 아파트가 20개 정도 놓이는 땅을 생각한다. 하지만 30평 아파트를 맨땅에 놓는 것이 쉽지 않아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 여기서 양파가 얼마나 나올까요?"
"그건 담아봐야 알지."

600평의 양파밭에서 기대하는 수확량이 있어야 할 텐데 알려주지 않으신다. 수십 년 밭을 부치며 대략적인 예측은 있을텐데. 양파가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는 농부의 겸허인지, 진정 모른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나저나 집 앞의 땅이 얼마나 되는지도 오늘 안 주제에 실제 수확 물량을 들어봐야 뭐 알려나. 그냥 그럴듯한 숫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궁금해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작년부터 양파심기를 시작하셨다. 올해로 2년 차. 초보 양파 농부이시다. 농사 경력이 40년이 넘지만 여전히 새로운 작물에 도전하고 계셨다. 아직도 초보인 작물이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같은 작물을 짓더라도 해마다 초보의 마음으로 돌아가시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주말의 목표는 양파를 수확해 도매상에 넘기는 일이고, 그러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오늘 안에 양파대를 모두 잘라야 한다. 그렇게 600평 땅에 뿌려진 일꾼은 아버지, 나, 동생 이렇게 셋이 전부다. 나는 아버지가 설명해 주는 일이 일단 '쉬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여기 양파대를 5cm 정도 남기고 자르면 되는겨. 너무 길게도 짧게도 말고"
 
▲ 양파대를 자르는 아버지와 동생 양파대를 자르는 아버지와 동생
ⓒ 최새롬
 
두둑 위에 줄지어 놓인 양파의 대를 5cm 정도 남기고 자르는 일이라니(일정 부분 남기고 잘라야 유통에 좋단다). 그것도 고랑을 옮겨 다니면서 해야 한다니! 나는 농사라고 하면 뭔가 복잡하고, 어렵고, 그럴듯해 보이는 일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농사엔 그런 게 없었다. 알고보니 이 양파대를 자르기까지도 벌써 여러 날이 필요했다.

우선 1. 양파를 캐고, 2. 두둑 위에 가지런히 뉘어 여러 날 말리고, 3. 양파대가 바스락 거리는 지경이 되면 4. 대를 잘라주고 5. 드디어 수확이다. 무게에 따라 상자와 망에 선별해서 담는다.

극효율 추구는 여기선 안 통해

그러나 빠름과 극효율을 추구하는 서울에서 달려온 마케터는 어째서 양파대를 자르는 동시에 상자에 담지 않는지, 양파를 말리는 데 어째서 일주일이나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지금도 바삭하긴 하지만, 하루는 더 말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없을지 머리로 여러 전략을 세웠다. 우선 양파를 한 곳에 모으고, 한 사람은 양파대를 작두로 자르고 한 사람은 선별하고 한 사람은 담는다. 그러나 3명이 양파를 한 곳에 모으는 데만 하루가 걸릴 것이다… 한 곳에 모인 양파는 더 바싹 마르기가 어렵다… 양파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느려 보여도 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말하자면 우리가 양파 대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양파님이 마르고 나서야 양파대를 자르는 것이었다.

그러니 농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보다 작물의 퍼포먼스를 기다리고, 그걸 얼마나 도울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리고 양파가 마르는 일에는 -거대 자본이 없는 한- 햇빛과 바람, 그리고 양파 스스로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쪼그려 앉아 길고 긴 두둑 사이를 오가며, 이미 길게 늘어진 양파를 따라다니며 양파대를 잘랐다.
 
▲ 양파대 자르기 작업을 한 양파 양파대 자르기 작업을 한 양파
ⓒ 최새롬
 
이러한 양파 우선주의는 수확 전까지 지속되어 땅에 누워 있는 양파의 위치를 옮기지 않는다(물론 옮길 수 있는 노동력도 없다). 농사일의 어려움, '땅과 조금이라도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발현된다.

양파는 가지런히 두둑 위에 있지만 두둑이라도 여전히 땅이라, 작업자 역시 땅에 가깝게 있어야만 한다. 허리를 펼 수 없는 사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허리를 펼 수가 없다. 정말이지 양파 중심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양파 수확 '트레이닝'에서 배운 것

게다가 농사용 가위는 거의 손 힘을 단련하는 손목 악력기에 가깝다. 흙과 양파대에도 강하지만 꼭 그만큼 강한 아귀 힘도 필요로 한다. 가위를 쥐고 쭈그려 앉아 7시간을 오가는 양파밭의 트레이닝… 수확도 아니고 수확 전 처리를 위한 여정이 이렇게 어렵다니.

부모님의 양파 수확에 참여하며, 나는 이제야 마트에서 집어드는 동글동글한 양파 뒤에는 매 양파 머리 하나하나를 잡고 잘랐을 농부의 손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것은 낭만적인 은유가 아니다. 아직도 어떤 것은 진실로 누군가의 손을 통해 도착하고 있다. 계산해보니 이날, 한쪽 밭만을 기준으로 우리 셋은 작업하며 약 4333개 정도 양파 머리를 잘랐다(1인 당 약 1430여 개). 
 
▲ 양파대 자르기 작업이 끝난 양파 양파대 자르기 작업이 끝난 양파
ⓒ 최새롬
 
저녁 무렵, 양파 머리를 적당히 자른 뒤 흙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니들은 이 일 못헌다, 어려워서"라던 말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무엇이 진정 어려울까? 일 자체의 힘듦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양파의 가장자리에서 일하는 것이 어려웠다. 양파 중심적인 일은 사람에게는 비효율적이었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무엇보다 시종 양파가 있는 위치로 올 것을 강요했다.

콘텐츠도 사람 중심, 광고도 데이터도 사람 중심. 그렇게 늘 사람을 중심에 두고 빠르게 '효율'만을 추구하는 세계에 있다가, 이번엔 양파만을 좇아 고랑을 따라가야 했다. 양파의 성장은 사람이 아닌 양파가 하는 일, 마르는 것도 양파의 일이다. 농부의 인생에서는 작물이 1순위이다. 이 마음을 진정 아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일은 아니었을까. 

다음날 기상시간은 오전 6시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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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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