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비하 발언한 가수, 오히려 대성공한 이유
[이현파 기자]
▲ 모건 월렌의 정규 앨범 'One Thing At A Time' (2023) |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
지금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노래는 무엇일까? 단연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의 'Last Night'다. 이 곡은 올해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총 13주 1위를 차지했다.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신곡 'vampire'가 1위에 오르면서, 독주가 끝나는 듯했지만 바로 다음 주에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어쿠스틱한 기타 리프와 함께 시작되는 이 곡은 전형적인 컨트리 팝처럼 들린다. 가사는 특별하지 않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다. 헤어진 여성을 붙잡으며 미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쿨하지 못한 가사'가 월렌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타고 울려 퍼진다. 유럽, 남미, 아시아 국가에서의 반응은 미미하지만, 이 곡은 올해 미국 최고의 히트곡을 예약한 상황이다.
미국 남부에서 부흥한 컨트리 음악은 흔히 보수적인 백인이 가장 선호하는 음악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보수적인 시장조차 2010년대 이후 변화를 요구받았다. 전 세계를 지배한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물론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마렌 모리스 같은 여성 컨트리 스타가 등장했고, 이들은 LGBTQ 인권 등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흑인 여성인 미키 가이턴 역시 컨트리에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녹여냈다. 퀴어 컨트리 스타인 오어빌 펙의 등장 역시 중요한 순간이다. 래퍼 릴 나스 엑스는 컨트리 랩 'Old Town Road'로 빌보드의 역사를 새로 썼다.
▲ Morgan Wallen - Last Night ⓒ Morgan Wallen |
모건 월렌은 일련의 변화와는 무관한 변화의 흐름과는 조금 다른 곳에 서 있다. 테네시 주 내슈빌 출신의 월렌은 통기타를 치고 야구를 즐기며, 거친 목소리로 노래한다. 어린 시절 랩 음악과 록 음악을 즐겨 들었던 그였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컨트리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레드넥'이라 자처한다. '레드넥'이란 미국 남부 지역의 하층 계급, 우파 백인을 일컫는 표현이다. 육체 노동을 하는 과정에서 목 부분이 빨갛게 변했다는 것이 어원으로, 공화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으로 여겨진다.
'레드넥'은 분명 멸시적 표현이었지만, 월렌은 오히려 'Redneck Love Song'이라는 곡을 만들어 불렀다. 그의 노래에 담긴 모습은 남부 백인 남성 그 자체였다. 체크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트랙터를 타며, 맥주와 위스키를 벗하는 사람의 모습을 노래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언급 역시 자주 했다. 그의 이런 면모는 보수적인 컨트리 팬층의 큰 지지를 받게 된다.
"My tractor's green, my pasture's greener"
(내 트랙터는 초록색, 내 목초지는 더 푸르다네)
"My neck is red, my collar's blue. And I love you"
(내 목은 빨간색, 내 옷 카라는 파란색.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다네)
- 'Redneck Love Song' 중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그는< SNL(Saturday Night Live) >의 게스트로 섭외되었다. 그런데 방송을 앞두고 코로나 방역 지침을 무시하고 파티를 즐기는 그의 사진이 공개되었다 락다운(Lockdown)의 시대, < SNL >은 모건 월렌의 출연을 취소했다. 그러자 모건 월렌은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지지자들의 모습이 위선적이라 비판했다. "축하 파티를 할 수 있다면 콘서트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침도 더했다. 그의 발언은 많은 지지를 받았고, 다시 < SNL >에 출연할 수 있게 되었다.
모건 월렌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위기가 도래했다. 자신의 집에 가다가 흑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N-Word'를 사용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아닌 흑인이 이 단어를 쓰는 것은 매우 민감한 일이다. 사람들은 영상에 드러난 월렌의 모습을 보고, 평소에도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자주 해 왔으리라 짐작했다.
여론의 공세가 쏟아지자, 모건 월렌의 소속사 빅 라우드 레코즈(Big Loud Records)는 그와의 계약을 연기했고,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 등의 스트리밍 플랫폼은 플레이리스트에서 그의 노래를 삭제했다. 그래미 어워드 공연 역시 취소되었다. 모건 월렌은 과거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해 사과한 뒤, 흑인 인권 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 모건 월렌(Morgan Wallen) |
ⓒ 모건 월렌 소셜 미디어 |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의 앨범 < Dangerous : The Double Album >(2021)의 판매량과 음원 판매량이 무서운 속도로 상승했다 '캔슬 컬쳐(논쟁적인 발언이나 행동을 한 유명인을 규탄하고 불매하는 사회적 운동)',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반발심을 갖고 있던 보수 성향의 팬들이 일제히 응원을 보냈다. 이들은 모건 월렌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모건 월렌의 음반을 구매했다. 진보, 민주당 지지자 중심의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모건 월렌이 갖는 상징성은 더욱 커졌다.
그는 지난 3월 새 앨범 < One Thing At A Time >(2023)을 발표했다. 특별한 변화가 담긴 앨범은 아니다. 술과 남녀 관계 등 해오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Last Night'을 포함한 수록곡 36개는 모두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했으며, 지금도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지키고 있다. 기념비적인 흥행은 현재진행형이다. 시저(SZA), 지민, 올리비아 로드리고 같은 경쟁자 사이에서도 'Last Night'의 흥행은 흔들릴 조짐이 없다.
2004년, 록 밴드 그린데이의 빌리 조 암스트롱은 레드넥의 보수성을 비난하며 'American Idiot'을 쓰고 불렀다. 이곡이 실린 동명의 앨범은 이듬해 그래미 어워드를 휩쓸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대선 기간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개탄스러운 집단(basket of deplorable)'이라 일컬었다.
그리고 2023년, 레드넥을 자처하는 사내가 빌보드 차트를 지배하고 있다. 모건 월렌의 음악 자체의 매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지만, 이 기록적인 인기는 월렌에게 지난 수년간 벌어진 일과 떼 놓고 볼 수 없다. 모건 월렌 돌풍은 이 시대의 첨예한 대립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모건 월렌. 그는 이 시대 가장 문제적인 팝스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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