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키워놓고 왜 떠났을까…'배민' 만들고 전설 된 그의 메일엔 [비크닉]

정세희 2023. 7. 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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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 따윈 없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
최근 배달의민족 창업자 김봉진 의장이 회사를 떠나면서 사내 e메일을 통해 남긴 말입니다. 이 말은 회사 빌딩에 적혀있는 슬로건 중 하나라고 하는데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마지막까지 재치있는 명언을 남기는 게 브랜딩의 대가답다. 그런데 배민은 어떻게 되는 거지… 회사를 나가선 무엇을 한다는 걸까.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했고요.

김 의장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배민을 만들었는지 따라가 보면 그 속내를 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브랜드와 함께 떠나는 설레는 여정 비크닉, 이번 주엔 배민 공화국을 만든 김봉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경영하는 디자이너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립자. 사진 중앙일보

흙수저 출신 창업 신화, 스타트업의 전설…김봉진 의장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습니다. 그중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쓰던 말은 ‘경영하는 디자이너’입니다. 그저 디자이너를 전공한 경영자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 단어에 경영철학이 숨겨져 있습니다.

배민은 사업 초기부터 소비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브랜딩에 힘썼는데요. 사용자 경험(UX)과 사용자 환경(UI)을 최대한 직관적으로 만들었고, 특유의 글씨체를 통해 개성을 드러냈어요.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삶의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어요.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아니라 배달 앱을 창업했느냐고요? 사실 과거에 인테리어 가구 사업을 했지만 실패를 했습니다. 색다른 디자인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사는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모두 날려버렸죠. 그때 생각했대요.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경영을 잘해야겠구나.

배민은 이 가구 사업을 접고 지인들끼리 모여 만든 회사에서 프로젝트 성으로 시작한 거였습니다. 2010년 아이폰이 막 알려질 때였는데, ‘첨단 IT 시대에 왜 음식 전단지는 손수 돌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음식점 배달 전화번호를 디지털로 옮기는 앱을 만든 거죠.


배민다움의 탄생: 타깃을 좁혀라


2013년 배달의민족 앱 모습. 사진 배달의민족 회사 소개서

그냥 재밌어서 만든 이 어플은 출시 이틀 만에 당시 경쟁자였던 배달통을 꺾고 1등을 합니다. 당장 개발자들 사이에서부터 소문이 자자했대요. 뭔가 독특한 게 나타났다고요.

신기한 게 초창기 배민 앱을 보면 지금과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삐뚤삐뚤한 글씨도, 짜장면 배달 철가방을 든 캐릭터도 익숙하죠. 13년간 자기만의 색깔을 지켜온 겁니다. 바로 이 배민다움이 배달의민족 성공의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그 전략이 궁금하시죠?

사업 초기 그는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서비스를 실패한 것이라는 철학을 갖고, 타깃을 계속 좁혀 나갔습니다. 브랜드 마케팅에서 타깃 설정은 중요하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그의 타깃론은 조금 달라요. 시장을 얼마나 좁히냐면 1등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샴푸 시장에서 1위 하기가 힘들잖아요. 점점 구체화 시키는 겁니다. 비듬 시장으로, 그것도 어려우면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그것도 1등이 어려울 것 같으면 고등학생으로 더 좁히죠. 서울지역 2학년 남자 고등학생 중 가계소득 상위 20% 이상 가구는 확실히 잡겠다! 이렇게요. 그래야 조직에 자신감을 주고 타깃을 휘어잡을 수 있다고요.

배민이 배달음식은 누가 시키는가 살펴보니 회사에서는 막내, 친구들 사이에선 만만한 친구가 하더래요. 김 의장은 그들의 첫 타깃을 20대, 홍대 문화에 익숙한, 성격은 친근하고 만만한, 무한도전에 나올법한 등으로 페르소나를 만들었습니다.


풋! 웃기거나, 아~ 감동적이거나

그들에게 먹히는 건 바로 B급감성이다! 생각한 그는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일관성 있게 보여줬습니다. 그가 지난 10여년 간 가장 공들인 것이기도 합니다.

배달의민족 잡지 광고 사례. 사진 우아한형제들


배달의민족 TV광고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편. 사진 우아한형제들

배민 잡지 광고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여러 고심 끝에 하얀 백지 위에 ‘잘 먹고 한 디자인이 때깔도 좋다’ 텍스트만 한 줄을 넣었대요. 이걸 본 잡지사에서 전화가 왔죠. ‘이거 최종 파일 맞아요?’ 하고요. 잡지 광고는 지금까지도 배민다움을 보여주는 하나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중들에게 배민을 본격적으로 알린 건 TV 광고였습니다. 배우 류승룡이 출연한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CF로 대박을 냈죠. 사실 이 CF는 광고대행사가 본 PT 때 발표하지 않은 쿠키 영상의 일부였는데, 김 의장이 ‘이게 더 재밌는데?’라며 선택한 거라고 합니다.

이후에도 배민은 배민 신춘문예,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등 유쾌한 브랜드 마케팅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의장이 마케팅할 때 고수하는 원칙이 있대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거나 아~하고 감동을 주거나 둘 중 하나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요.

내부 구성원들에게도 배민다움을 심었어요. 예를 들면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 우아한형제들 내부 규율 같은 건데요. 9시와 9시 1분은 다르다, 쓰레기는 먼저 보는 사람이 줍는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내용이 많아 화제가 됐죠.

그는 지난해 사내 유튜브를 통해 “다른 회사의 사내 비전이나 목표를 보면 ‘세계 1등 기업이 되자’처럼 추상적인 경우가 많지만,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썼다”면서 “논란도 있는 것을 알지만 문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좋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배민만의 문화라고 자부한다”고 밝혔어요.

물론 배민의 눈부신 성공에는 명과 암이 있어요.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할 때는 우리가 게르만 민족이냐는 비판도 나왔죠. 배달비 인상 주범이라는 비난도요.


그가 남기고 간 것

김 의장이 회사를 떠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어요. 업계에선 회사가 그만큼 안정화됐다는 점을 꼽고 있어요.

하지만 13년 동안 탄탄하게 만들어온 브랜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고요. 지난해 배민은 4년 만에 흑자전환을 했는데, 영업적으로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한듯합니다.

앞으로 그는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것이라고 해요. 그가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을 보면 스타트업 양성에 힘을 쏟을 것 같기도 하고요.

김봉진 의장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니 결국 브랜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다움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배민다움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은 창립자가 사라져도, 회사가 바뀌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요.

비단 브랜드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나답게 사는 것은 중요해졌잖아요. 나만의 행복을 느끼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그는 너무 좋은 롤모델인 것 같습니다.

그가 한 강의에서 남긴 말을 공유하며 마칠게요. “경쟁자를 의식하고 견제하다 보면 결국 다 비슷해져요. 내 안에서 찾은 이야기에 집중해보세요. 그래야 차별화가 가능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어요. ”

정세희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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