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장애인-빈민촌 청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양형석 2023. 7. 2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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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프랑스서 1900만 관객 동원한 <언터처블:1%의 우정>

[양형석 기자]

지난 5월 31일에 개봉한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3>는 개봉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전편 <범죄도시2>와 함께 '쌍천만 영화'에 등극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체감상으로는 <범죄도시3>가 2023년 상반기 내내 극장가를 지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범죄도시3>가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기간은 단 24일에 불과했다. <범죄도시3>는 6월 24일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에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내려왔다.

사실 특정영화의 독점주기가 짧아진 것은 비단 <범죄도시3>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 <명량> 역시 지난 2014년 7월 30일에 개봉해 개봉 25일째가 되던 8월 25일 <해적:바다로 간 산적>에게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내준 후 한 번도 1위를 탈환하지 못했다(물론 <명량>은 1위 자리를 내준 시점에 이미 전국 1500만 관객을 돌파했기 때문에 전혀 아쉬울 게 없었다).

사실 2000년대 이후에는 스크린도 많아지고 그만큼 많은 신작영화가 개봉하면서 특정영화가 한 달 이상 박스오피스를 지배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극장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지난 2011년에 개봉한 프랑스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아래 <언터처블>)은 현지에서 무려 10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역대 프랑스 영화 흥행 2위, 역대 흥행 3위를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언터처블: 1%의 우정>은 익숙한 배우가 출연한 영화가 아님에도 전국 172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프랑스 영화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리자

사실 할리우드 영화와 아시아권 영화에 익숙한 한국관객들에게 유럽영화, 특히 프랑스 영화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 4~6위를 오가는 프랑스 영화는 한국과 비슷한 크기의 시장규모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는 최초로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를 배출한 '영화의 요람'인 데다가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프랑스인들의 영화에 대한 자부심 또한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국내에서 프랑스영화는 '지루한 예술영화'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1960년대에는 프랑스영화가 세계시장을 주름 잡았을 정도로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미남배우 알랭 들롱이 1960년대 프랑스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배우 중 한 명이다. 또한 고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와 고 장피에르 멜빌 감독의 <한밤의 암살자> 등도 현대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필름 누아르의 명작들이다.

1980~1990년대에는 프랑스에서 뤽 베송이라는 걸출한 감독 겸 제작자가 등장했다. 뤽 베송 감독은 막대한 물량을 투입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에 맞서 스타일리시하고 독창적인 색깔의 영화들로 세계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뤽 베송 감독이 1994년에 선보였던 <레옹>은 프랑스 배우 장 르노가 킬러, 영국 배우 게리 올드만이 비리경찰, 미국배우 나탈리 포트만이 순수한 소녀를 연기하며 세계적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한국영화 역시 프랑스에서 점점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와 <박쥐> <헤어질 결심>을 통해 칸 영화제에서 3번이나 수상했고 이창동 감독도 지난 2010년 <시>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며 현지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기생충>은 프랑스에서 180만 관객을 동원했다. 

최근 국내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극장에서 내려가면 곧바로 OTT와 VOD 서비스 같은 '2차 시장'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극장 상영이 종료된 후 2년이 지나야 VOD와 OTT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이는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DVD와 블루레이 등을 통한 2차 판매를 보장해 주기 위한 정책이다. 짧으면 개봉 1~2주 만에 VOD로 내려가는 영화가 즐비한 한국의 영화 제작사들이 부러워할 정책이다. 

4억 달러 흥행에 빛나는 그들의 특별한 우정
 
 외모도, 나이도, 환경도 전혀 다른 필립과 드리스는 많은 일을 함께 하면서 둘도 없는 '절친'이 됐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언터처블>은 '건드릴 수 없는', '손댈 수 없는'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지만 영화 <언터처블>에서는 과거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유례된 '불가촉천민'을 뜻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이는 세네갈에서 입양된 드리스(오마 사이 분)가 처한 불행한 환경과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전신마비의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과 나누는 귀한 우정을 의미한다. 다소 막연하지만 영화를 보면 의미를 알 수 있을 법한 중의적인 제목이다.

<언터처블>은 프랑스에서 지난 2011년 11월에 개봉해 10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무려 19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는 프랑스 인구의 1/3이 감상하며 프랑스 역대 최고 흥행성적을 기록한 2008년작 <알로, 슈티>(2100만)와 개봉 당시 신드롬을 일으켰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에 이은 프랑스 역대 흥행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언터처블>은 국내에서도 172만 관객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사실 <언터처블>의 두 주인공 필립과 드리스는 전혀 다른 상황과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다. 필립은 죽을 때까지 펑펑 써도 남을 만큼 많은 재산을 보유한 부자지만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반면에 드리스는 젊고 건강한 청년이지만 부양할 동생만 6명이나 되는 빈민촌에 사는 아프리카 입양아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되면서 뜻밖의 케미를 발산하고 우정을 나눈다.

사실 <언터처블>은 설정부터 불행한 결말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영화다. 만약 이 영화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됐다면 영화 중반까지 두 사람이 좌충우돌하면서 친해지는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주다가 영화 후반 필립이 큰 병을 앓게 되고 오열하는 드리스 앞에서 숨을 거두는 이야기로 각색됐을 것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언터처블>은 두 사람이 각자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우정을 나누는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됐다.

세계적으로 4억 26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리며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던 <언터처블>은 지난 2019년 <업사이드>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됐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브라이언 크랜스톤을 비롯해 케빈 하트,니콜 키드먼 등이 출연한 <업사이드>는 '원작의 카피'라는 비판 속에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업사이드>는 원작을 잘 몰랐던 북미 관객들의 많은 지지를 받으며 1억25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얼굴만으로 감정연기 보여준 배우
 
 드리스 역의 오마르 사이는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쥬라기 월드> 등 할리우드의 대작영화들에도 많이 출연했다.
ⓒ (주)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언터처블>은 프랑스에서 1900만 관객을 동원한 엄청난 흥행작이지만 사실 프랑스 배우들은 국내 관객들에게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필립 역의 프랑수아 클루제 역시 1980년대 초반부터 활동했던 베테랑 배우임에도 국내 관객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클루제가 소피 마르소와 뱅상 카셀, 줄리 델피, 장 르노처럼 프랑스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했던 프랑스 배우는 아니기 때문이다.

클루제는 <언터처블>에서 상위 1%의 재산을 가진 엄청난 부자지만 패러글라이딩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인해 목 아래가 마비된 필립을 연기했다. 모든 장면을 앉거나 누워서 연기를 하니까 편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얼굴의 움직임만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클루제는 제한된 움직임 속에서 필립의 다양한 감정변화를 잘 표현하면서 2011년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드리스 역의 오마르 사이는 서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코미디언과 영화배우 활동을 병행하다가 <언터처블>의 드리스 역을 통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사이는 2014년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비숍을 연기했고 2015년과 작년에는 <쥬라기 월드>와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도 출연했다. 사이는 최근까지도 영화배우와 애니메이션 성우 등을 넘나들며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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