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꿈 실현하는 ‘그곳’… 美테라파워 SMR 개발 현장 가보니[르포]

김형구 2023. 7. 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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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의 에버렛연구소에서 연구소 직원들이 소듐냉각재 시설의 작동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테라파워

빌 게이츠는 2008년 원전 설계회사 테라파워(TerraPower)를 설립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이자 자선사업가인 그가 왜 에너지 분야, 그것도 반환경적이란 비판을 받는 원전 개발에 투자했을까.

그는 기후위기 극복의 열쇠가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SMR) 개발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기후위기를 낳은 화석연료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신재생에너지도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게 빌 게이츠의 결론이다. 대신 기존 원전보다 발전 용량과 크기를 줄이고 안전성을 높인 SMR이 ‘게임체인저’가 될 거라고 믿고 있다.

2008년 원전 설계 회사 테라파워(TerraPower)를 설립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 중앙포토

지난 14일 기자는 빌 게이츠의 꿈을 현실로 옮기고 있는 테라파워의 심장부, 에버렛연구소(Everett Lab)를 방문했다. 경수나 중수를 냉각재로 쓰는 기존 원자로와 달리 금속 소듐(나트륨)을 쓰는 소듐냉각고속로(Sodium-cooled Fast Reactor·SFR) 등의 생산 설비를 갖춘 곳으로, 연구소가 한국 언론에 공개된 건 이날이 처음이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도심에서 차를 타고 약 30분 만에 도착한 에버렛연구소는 약 6040㎡(1830평) 규모의 격납창고식 건물이었다. 연구소는 이 회사가 자체 개발한 SMR인 나트륨(Natrium) 실험설비,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생산 실험설비, 염소염 용융염원자로(MCFR·용융염을 냉각재로 쓰는 원자로) 실험설비 등의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의 에버렛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용융염 처리 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사진 테라파워

직원 안내에 따라 나트륨 실험설비 시설부터 방문했다. 실험실에 들어서자 높이 6m 가량의 소형 로켓처럼 보이는 소듐냉각재시설이 육중한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원들이 시설 작동 상태를 살펴보며 서로 상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곳은 소듐냉각고속로(SFR)에 용융염 열저장설비(MSS)를 결합한 4세대 SMR 제품인 나트륨 설비 개발을 위한 곳이다.

설비 테스트를 담당하는 연구원은 커다란 분필을 연상케 하는 길이 1.5m의 육각형 패턴 핵연료 집합체를 보여주었다. 그는 “소듐냉각고속로는 핵연료집합체들이 모두 서로 잘 맞도록 완벽한 육각형 패턴을 적용한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연료봉 주위엔 와이어가 감싸고 있었다. 이 와이어는 핵연료가 집합체를 통과할 때 나트륨이 혼합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제프 밀러 테라파워 사업개발 이사는 “나트륨 시스템은 탄소 배출이 거의 없이 안전하고 저렴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고, 설계 변경이 용이해 석탄 화력발전소를 대체하는 다양한 옵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연재해나 전력망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도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345㎿(메가와트) 고속 원자로에 용융염 열저장설비를 결합한 테라파워의 나트륨 설비는 필요한 경우 시스템 출력을 5시간 30분 이상 500㎿까지 높일 수 있다.

테라파워의 SMR엔 미국 정부도 주목하고 있다. 2020년 미 에너지부는 ‘차세대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테라파워의 1단계 실증단지 구축 비용(40억 달러·5조2000억 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약 20억 달러(약 2조6000억 원)를 보조하기로 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도 지난해 8월 2억50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투자해 빌 게이츠와 함께 공동 선도투자자 지위를 확보했다. 345㎿ 규모인 테라파워의 1단계 실증 단지는 현재 미 서부 와이오밍주에 건설 중이다. 2030년 완공되면 약 2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공급하게 된다.

지난 4월엔 SK㈜, SK이노베이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테라파워와 ‘4자 상호 협력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수원이 미국의 4세대 SMR 기업과 맺은 첫 협력 계약이란 점에서 주목받았다. SK㈜ 측은 “국내 원전 업계가 향후 미국 SMR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줌과 동시에 테라파워의 4세대 SMR 기술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에 있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의 에버렛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용융염 처리 과정을 거쳐 하얀 얼음조각처럼 응고된 소듐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테라파워

바로 옆 실험실에서는 엔지니어 숀 아크리가 액체 금속 형태의 소듐 처리 과정을 시연해 보였다. 그가 비이커 안에 담아둔 액체 형태의 소듐은 흡사 수은처럼 반짝였다. 비이커에 있던 이 소듐을 손바닥 넓이의 네모난 금속 용기 위에 붓자 점성이 강한 소듐이 마치 꿀처럼 응고되는 모습을 보였다. 응고를 마친 소듐은 하얀 얼음조각처럼 보였다.

소듐의 녹는 점은 섭씨 98도, 끓는 점은 883도이다. 녹는 점과 끓는 점의 차이가 큰 만큼 온도 조절이 용이하다. 갑자기 기화해 고압 증기가 될 위험이 낮다. 이 때문에 기존 원전처럼 튼튼한 고압 용기에 연료봉·냉각재를 넣을 필요 없이 간단한 장치로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숀 아크리는 설명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악티늄-225의 생산설비 시설. 악티늄-225는 정상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고 암세포만 표적으로 삼아 파괴하는 ‘표적 알파 치료제’의 원료로 사용된다. 국소 범위에 강력한 치료효과를 발휘하고 부작용은 적다.

테라파워는 여느 SMR 기업과 차별화된 영역이 악티늄-225 생산 분야라고 설명했다. SMR 개발과 시스템 구축엔 적지않은 기간이 걸리는 만큼 상용화 속도가 빠르면서 원자로 개발과 비슷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 사업을 전략사업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테라파워는 호주 방사성의약품 개발사 라디오팜 테라노스틱스, 글로벌 제약업체 노바티스 등과 악티늄-225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최근 공정 개선으로 악티늄-225 공급량을 크게 늘릴 수 있어 신약 시장을 선점할 것이란 기대를 키우고 있다. 테라파워 측은 “신약 표적 치료제가 개발되면 DHL이나 페덱스를 통한 배송도 가능하다. 전망이 굉장히 좋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주의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업 테라파워의 에버렛연구소에 있는 염소염 용융염원자로의 안전성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는 테스트 장비. 사진 테라파워


테라파워에선 미래형 SMR로 꼽히는 염소염 용융염원자로(MCFR)의 개발도 한창이었다. 에버렛연구소는 MCFR에 필요한 구성요소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세계 최대 용량(2MW)의 통합효율테스트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용용염 냉각재 활용에 따른 배관 부식 속도 등 안정성에 관련된 데이터, 열교환 시스템의 안정성·효율성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 소형모듈원자로(SMR)

「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발전 용량과 크기를 500메가와트(MW) 이하로 줄인 소형 원전으로,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안전도가 1000배 이상 높다는 장점이 있다. 외부 전원 없이 자연 냉각이 가능하고 외부 배관 노출이 없는 일체형 구조다. 특히 소형ㆍ모듈화를 통해 전력 수요지 부근 설치가 용이한 만큼 중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달성의 유력한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SMR 기술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 세계경제포럼(WEF)은 2040년까지 SMR 시장이 연평균 22%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국가원자력연구원(NNL)은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약 400조~600조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에버렛=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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