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새' 가족... 동물 전문가가 예측한 비극적 광경

박병춘 2023. 7. 22.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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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춘의 산골 통신] 노랑할미새 집짓기부터 포란 및 육추까지, 그 42일간의 이야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병춘 기자]

 .어여쁜 노랑할미새가 둥지 근처에서 경계를 한다.
ⓒ 박병춘
 
#6월 2일

사진을 찍었다. 새만 모아 설명한 전문 서적을 살폈다. 노랑할미새였다. 새는 전후좌우를 살피며 둥지 지을 곳을 계산했다.

그리고 노랑할미새는 저 예쁜 부리로 보드라운 터럭과 마른 잎을 물고 둥지를 틀었다. 그것은 나중에 안 일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6월 24일이었다. 은밀함과 위대함이 융합한 대자연의 숨결이었다.

#6월 24일

'삐빅! 삐비빅!' 새 소리가 들렸다. 집 주변 숲에서 머무는 새라고 여겼다. 어느 날이었다. 신기했다. 우리 집 마당을 떠받치는 석축 사이에서 새 한 마리가 빠져나왔다. 저기에 새집을 지은 건가? 고개를 갸우뚱~
 
 .태양광 흡수판을 지붕삼아 알을 품고 있는 노랑할미새
ⓒ 박병춘
   
 .눈으로 본 건 네 개였다. 메추리알의 3분의 1 크기였다.
ⓒ 박병춘
 
세상에, 태양열 정원등을 지붕 삼아 둥지를 틀었다. 어미가 없는 사이, 둥지를 들여다봤다. 메추리 알의 3분의 1 크기나 될까. 내 새끼손가락 첫마디 정도나 될까. 알 네 개가 뭉클하게 모여 있었다.

식구들에게 당부했다. 절대로 함부로 들여다보면 안 된다고. 내 가슴 높이 새집에서 포란은 계속됐다. 그 뒤로부터 새집 곁을 지나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다. 알을 품다가 혹시라도 어미가 날아가 버리면 저 알은 괜찮을까? 노심초사가 따로 없었다. 스트레스받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더했다.

#6월 26일
 
 "아가들아! 너희들은 엄마 아빠가 지킨다!"
ⓒ 박병춘
 
포란 장면 촬영을 위해 둥지가 보이도록 차를 세웠다. 사람은 경계하고 차는 안심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약 3미터 거리를 두고 차창을 반쯤 열어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엄마 아빠는 교대로 드나들었다. 그리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조금씩 돌면서 알을 품었다. 그 품 아래 알들을 생각했다. 나까지 아늑하고 포근했다.
 
 카메라 셔터음에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는데...
ⓒ 박병춘
 
지구별에 태어날 아가들아. 너희들은 내가 지킨다. 아빠로 보이는 노랑할미새가 나를 노려봤다. 셔터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눈치였다. 그만큼 예민한 가운데 둥지를 지키는 애절함에 미안했다.

#7월 5일

경계는 철저했다. 사람이 나타나면 삐빅! 삐비빅!! 주변을 배회하며 울어댔다. 포란 중에 촬영을 할 때는 카메라를 노려봤다. 나의 렌즈와 노랑할미새 눈빛이 마주쳤다. 갸우뚱~ 고갯짓은 호기심 천국이었다. 다이아몬드도 그렇지는 않으리라. 그 눈은 보석처럼 빛났다.

#7월 6일

고추밭 지지대에 노끈을 묶으러 내려가다가 새집에 곁눈질을 했다. 경악할 일이 발생했다. 있어야 할 어미가 없었다. 경계음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천적 뱀에게 사고라도 당한 걸까. 내가 모르는 천적이 알을 집어삼킨 걸까. 새집을 들여다보았다.
 
 네 마리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다.
ⓒ 박병춘
 
소스라쳐 놀랐다. 알에서 깨어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알은 네 개였는데, 모두 잘 태어났을까? 그렇다고 함부로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위협을 느낀 엄마 아빠가 날아가 버리면 모든 게 내 책임 아니겠는가. 맞다. 카메라! 후다닥 집에 들어가 망원렌즈를 장착했다.
 
 "아가야,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자라거라"
ⓒ 박병춘
 
엄마 아빠가 먹이를 잡으러 간 사이를 틈타 촬영을 시작했다. 삐빅! 예비 셔터 소리를 엄마 소리로 알았을까. 부리를 하늘로 올려 먹이를 애원했다. 세 마리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네 마리였다. 잽싸게 촬영을 마치고 다짐했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않을게! 스트레스받지 않게 조심할게! 주택 단지 식구들도 의지를 모아 접근하지 않았다.

#7월 10일

알에서 갓 깨어난 아가들을 위해 먹잇감은 필수였다. 10분~15분 단위로 알에서 깐 새끼를 키운다는 뜻의 '육추'는 계속되었다. 엄마 아빠는 한 마리의 곤충을 입에 무는 게 아니었다. 동시에 여러 마리를 입에 물고 새끼의 입에 넣어 주었다. 나흘 전에 보았던 새끼들의 몸통이 아니었다. 노려보는 눈이 매서웠고 특히 청각이 예민했다. 카메라 셔터음에 입을 벌렸지만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아닌 줄 알고 이내 입을 닫았다. 그 침묵과 정적에 내 심장도 멎는 듯했다.

아뿔싸! 분명 네 마리였는데, 내 눈엔 세 마리로 보였다.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도태되었거나 성숙하지 못해 다른 길을 걸었을까. 어미가 먹이를 물고 둥지로 들어오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밥 달라고 울부짖는 건강한 새끼 뒤로 나약해 보이는 새끼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장엄한 순간이었던지!
 
 "우리 아가 응아도 아주 잘하네~"
ⓒ 박병춘
 
더 놀란 건 새끼가 자신의 응아를 어미에게 전하는 장면이었다. 어미가 먹이를 준 후 잠시 기다리면 새끼가 엉덩이를 돌려 어미의 부리에 하이얀 응아를 전달했다. 어미는 그걸 콕 찍어 물고 둥지 밖 어딘가로 처리했으리라. 엄마 아빠와 새끼들의 본능적인 행위 예술에 감탄했다.
 
 "아가들아, 조금만 기다려~"
ⓒ 박병춘
   
 "쉬잇! 엄마 아빠가 숨 죽이고 있으래!!"
ⓒ 박병춘
 
밭에 오갈 때마다 엄마 아빠가 전깃줄에 앉아 '삑! 삐빅! 찍! 찌직!' 요란한 경고음을 낸다. 그 소리는 분명 '아가들아, 적들이 나타났다. 절대 밥 달라고 소리 지르지 말고 몸 숙이고 조용히 있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는 지극정성으로 새끼를 길렀다.
 
 석축 중앙, 태양열 정원등 아래에 둥지가 있다.
ⓒ 박병춘
 
노랑할미새에게 좋은 소식이 생겼다. 중요한 약속이 겹쳐 4박 5일 여정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산골을 나서며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새끼를 양육할 수 있도록 엄마 아빠를 향해 격하게 응원했다.

'노랑할미새야, 더 이상 쫄지 말고 신나게 키우렴!'

#7월 14일

4박 5일 여정을 마치고 산골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마 천적 뱀에게 습격당하지는 않았겠지. 새끼들이 많이 자랐을 텐데 장마철 비바람 정도는 이겨냈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차 안에서 둥지를 바라보았다.
 
 빈집만 덩그러니 남았다. 안타까움 뿐이다.
ⓒ 박병춘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둥지의 지붕 역할을 했던 태양광 정원등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기대했던 새끼들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경계음도 들리지 않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차에서 내려 둥지를 살폈다. 온 가족이 어디론가 떠나버린 채 폐허처럼 변한 둥지 앞에서 망연자실, 할 말을 잃었다.

#7월 15일~20일

그 어린 생명들이 엄마 아빠를 따라 어디론가 무사히 떠났을까. 천적을 피해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온몸의 감각이 노랑할미새 둥지로 향했다. 아스팔트나 험난한 지형을 슬기롭게 가로지르는 오리 가족이 생각났다. 그 오리보다 더 뭉클하게 어디선가 육추를 마치고 훨훨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다. 며칠이 지났지만 노랑할미새는 주변에서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전문가의 견해가 필요했다. TV 프로그램에 야생동물 전문가로 활약 중인 박병권 도시생태 연구소 소장과 전화 연결을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노랑할미새가 석축 바위 사이에 둥지를 틀었고, 알을 품었으며, 새끼가 나왔습니다. 육추 진행 후 8일 만에 둥지 주변의 태양열 정원등이 떨어졌고, 엄마 아빠와 새끼 네 마리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이 노랑할미새는 어떻게 된 걸까요?"

엄마 아빠가 새끼들을 잘 이동시켜 어디선가 잘 키우고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장마가 이어지면서 석축의 돌 표면이 흐르는 빗물에 장시간 젖어 태양 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감소하면, 돌 표면의 온도가 낮아지고 노랑할미새 둥지의 온도는 상대적으로 높게 감지될 수 있습니다. 파충류인 뱀은 열 감지 능력이 탁월해서 생물이 기거한다는 좋은 표적을 얻게 됩니다.

아마 벽 타기를 잘하는 누룩뱀이나 유혈목이 등의 습격으로 새끼들이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끼들이 몸부림치고 뱀은 긴 몸으로 새끼들을 휘감게 되지요. 그러면서 태양광 정원등이 추락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생태적 일상이에요. 자연의 섭리입니다. 마음은 아프겠지만 자연의 먹이 사슬이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살벌했을 과정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태양열 정원등을 석축 사이에 올려놓았던 게 화근이었을까? 둥지를 들여다보고, 사진 촬영을 한 것이 노랑할미새에게 악영향을 준 건 아닐까 미안했다. 그저 자연의 일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나서 죄의식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건강하게 잘 키워서 멋지게 이소하기를 응원했는데,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깝다.

42일 동안 둥지 주변에서 뱀을 본 적은 없지만 혹시라도 누룩뱀을 보면 때려잡아야 하나, 그대로 두어야 하나 고민이다. 현지인들은 집 주변 뱀을 그대로 두면 다시 오게 되니 죽인다 하고, 나는 원래 뱀 땅에 뱀이 주인이었으니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한다.

노랑할미새야, 너는 뱀을 볼 때마다 쪼아 죽이고 싶겠구나. 용기가 날지 모르지만 이제 나도 죽이고 싶다. 아무튼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해발 700미터, 산골살이가 만만하진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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