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고등학생이 읽으면 좋을 책 '마흔에게'
[송주연 기자]
"엄마, 제대로 공부를 못 하거나 안 하고 있을 때 내가 가치 없게 느껴져."
얼마 전 기말고사를 마친 고1 아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공부 압박을 줄여 주려고 노력했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첫 학기를 보내는 동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해맑게 웃던 어린 시절의 아이가 떠올라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낯설지 않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가 성적비관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는 거였다. 가뜩이나 심란했던 마음이 더 아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살아가게 한다는 게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아이들에게 '공부와 상관없이 너는 가치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게 해줄 수 있을까' 커다란 물음표가 새겨졌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적절한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고, 나는 먹먹한 마음이라도 가라앉히고 싶어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이자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 기시미 이치로 선생이 2018년에 쓴 <마흔에게>라는 책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책은 아들러 심리학을 기반으로 중년 이후의 삶에 대해 쓴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의외로 이 책에서 공부 압박으로 힘든 아이들에게 들려줄 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덧셈 사고로 비교의 늪에서 벗어나라
아마도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공부 압박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비교당하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공부하기보다는 옆자리 친구보다 잘해야 인정받는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늘 스스로를 부족하게 느끼기 쉽다. 내 아이 역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내가 너무 초라하고 엉망인 것 같아. 어쩔 땐 내가 그 아이들의 복제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한국의 많은 아이들은 늘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 속에 지낸다. 이치로 선생이 기반하고 있는 아들러 심리학에 따르자면, 열등감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아들러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낄 때 '우월감'을 추구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타인과 비교함으로써 느끼는 열등감은 나의 부족한 면에 집중하게 하고 스스로를 '못났다' 여기게끔 한다. 또한 '공부를 잘하는 나' '명문대에 입학하는 나'와 같이 사회에서 주입된 '이상적 자기'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아들러가 말하는 '건전한 우월성의 추구'에는 이상적인 모습에서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감점법이 아니라 자신이 쌓아 올린 것을 하나씩 더해가는 가점법으로 평가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43-44쪽)
'비교의 늪'에 빠져있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구절이었다.
▲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마흔에게>(다산초당, 2018) |
ⓒ 다산초당 |
사람은 존재만으로 가치 있다
이후 이치로 선생은 자신의 심장병 투병기를 들려준다. 저술과 강연으로 바쁘게 살던 그는 쉰 살이 되던 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한 달 동안 입원하게 된다. 1년 후엔 인공심폐장치를 다는 대수술까지 받는다. 주변 사람들의 간병을 받으며 지내면서 그는 스스로가 다른 이들에게 폐만 끼치는 무가치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쁨이 되겠구나' (63쪽)
그리고 아들러 심리학에서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공헌감'으로 이를 설명한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혹은 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 타자에게 공헌하고, 도움만 받아도, 아니 도움을 받음으로써 도와주는 사람이 공헌감을 느끼는 것에 공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66쪽)
나는 사진을 찍어 아이에게 보내주었다. 누워만 있어도 남에게 공헌할 수 있는 우리들인데, 공부 좀 안 하거나 못하는 게 무슨 대수겠느냐 말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면 관대해진다
공부 압박에 시달리는 많은 아이들은 오랫동안 '노력해서 이루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주입받고, 부모나 사회가 인정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적인 명예나 부가 보장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인정받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신을 '가치없다' 여기며 가혹하게 대하곤 한다.
이치로 선생은 책의 후반부에서 어른과 아이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다양성 존중'의 태도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을 위해 아들러 심리학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인 '과제의 분리'를 실천해보라고 말한다. 여기서 '과제 분리'란 내가 책임질 것과 타인이 책임질 것을 구분하고, 타인이 책임져야 할 것에는 책임지지 않는 태도다. 이치로 선생은 자녀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품는 것은 '과제 분리'를 하지 못한 태도라고 말한다. '어떤 삶을 살지는' 자녀가 결정하는 것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 역시 어른들의 과제 분리를 못하는 태도에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이렇게 살면 인정해줄게"라는 사회와 어른들의 메시지가 과제 분리를 하지 못한 태도임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내가 원하는 삶'인지를 고민한 후, 그것과 다르다면 과감히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 한국의 많은 청소년들은 '공부'해서 성공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느낌을 받으며 자란다. |
ⓒ 픽사베이 |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누워서만 지낸다면 너는 엄마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아들이 답했다.
"아니지. 절대 아니야. 살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아."
나는 다시 아들에게 말했다.
"공부는 네 자신의 가치와는 상관이 없어. 너 역시 살아 있는 것만으로 엄마에게 기쁨을 주는 공헌을 하는 가치 있는 존재니까."
다행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작년에 돌아가신 증조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증조 외할머니도 그랬어. 그때도 정말 할머니가 누워만 계셔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어."
또다시 학업 스트레스가 닥쳐와도 아이가 이 대화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더 좋은 건 아이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거겠지만.
(덧) 이 책에는 노부모 봉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아이들이 읽기엔 낯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른의 삶을 미리 읽어봄으로써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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